-영원한 기계는 없다지만
IT기기라는 게 10년쯤 전부터 이미 대단히 특별한 기능을 원하지 않는 한 적당히 만족하고 쓸 만한 수준이 되었는데, 그런 현실과 별개로 시류는 기기를 계속 쓰도록 놔두질 않는다. 물론 적당한 시기마다 교체하면 그런 압박에 시달릴 것까진 없으나, 귀찮기도 하고 재정적 근심을 떨칠 수 없어 각종 기기의 교체를 자꾸 미루다 보니 이제는 그런 것들이 누적되어 슬슬 목이 조여오는 기분이다. 하나씩 보자면 바로 이런것들이다.
1.스마트폰
갤럭시 S20+에 상당히 만족해서 망원 카메라에 문제가 생긴 상태로도 계속 쓰려던 물건을 자전거 타다 떨어뜨린 이후로 화면에 이상이 생겨 S23+로 변경했다. 그렇게 기변을 한지 딱 1년이 되었다. 그런데 몇 세대나 윗 기종을 샀는데도 매우 신통치 않은 것이, 램이 12기가에서 8기가로 떨어진 탓이다. 왜 몇 년이나 나중에 나온 물건이 더 스펙이 나쁜 것일까……. 처음에는 프로세서의 성능은 좋아졌으니까 그 정도는 커버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커버가 되긴 개뿔, 지도로 경로 안내를 켜고 뭘 하다 보면 램이 부족해서 십중팔구 안내가 꺼진다. 등산을 하며 경로 기록도 하고 사진도 찍다 보면 어느샌가 경로 기록은 튕겨버린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리저리 쓰다보니 꺼지면 안되는 앱은 최근 앱 열어두기로 고정하고 팝업으로 띄우면 그럭저럭 버틴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측정 및 기록용 기기가 불안정하면 당연히 퇴출 대상이다. 사진가가 가끔 사진 저장이 안 되는 카메라를 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상위 기종을 중고로 알아보고 있지만 이만저만 피곤하지 않다. 특히 피곤한 점은 기록용 스마트폰을 따로 들고 다니면 해결할 수 있는데 굳이 돈을 쓰려는 게 아닌가 하는 자기 의심이다. 삼성이 램 절감을 안했으면 좋았으련만. 아니, 따지고 보면 주머니 간수를 제대로 못한 내 잘못이려나…….
2.프린터
한때 프린터를 무지막지하게 쓰다가 사용량이 줄어 오락가락하는 프린터를 버리고 정품잉크를 오래 쓴다는 hp프린터를 샀는데, 광고에 적힌 인쇄 가능량은 아주 잉크가 적게 드는 인쇄물을 기준으로 적어둔 것이라 컬러 몇 장 뽑자마자 잉크가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무한 잉크 키트를 사서 쓰게 되었는데…… 잉크가 막힐 때마다 이리저리 어르고달래며 쓰는 것도 한계에 부딪혔다. 헤드가 아예 고장난 것이다. 며칠 내내 살려보려고 발악했지만 잘 되지도 않았고 그 모든 시도가 내 삶을 저해하는 듯해서 결국 포기했다. 영원히 쓸 수야 없겠지만 사흘에 한 번씩 인쇄하며 수명을 연장해보려 한 노력이 허사가 된 듯해 슬프다.
3.맥북
2015년판 맥북 프로를 여지껏 쓰고 있으니 오래 쓴 것은 맞지만, 그다지 불편을 느끼진 못하고 있다. 영상편집처럼 고성능 기기가 필요한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영상을 4k로 보거나 게임을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 역시 영원히 쓸 수는 없다는 걸 최근에 실감했으니, 바로 악덕한 마이크로소프트 때문이다. 잘 쓰던 엣지 브라우저가 느닷없이 실행되지 않아서 알아보니 자동 업데이트가 되었는데 업데이트 된 버전을 이 맥북 버전이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지원하지 않는 버전으로 냅다 업데이트를 시켜버리는 심보는 대체 무슨 심보란 말인가……. 그리하여 이전 버전을 다시 받고 업데이트를 막아보기도 했지만 도통 막히지 않고 다시 업데이트 되어 결국 엣지를 포기했다. 브라우저만 문제가 아니라 구글 드라이브도 이제 지원을 안 할 거라는 메시지를 자꾸만 띄운다. 10년 전 기기를 지금껏 지원한 것도 대단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심정적으론 받아들일 수가 없다. 되는 대로 그냥 좀 알아서 쓰게 해주면 좋으련만.
(기기를 잘 관리하는 것과 it기기 수명은 큰 관련이 없게 되었다)
4.아이패드
아이패드 프로 11을 잠잘 때 빼고 항상 쓰는 수준인데,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도 배터리 방전이 빨라졌다. 영상을 틀어놓고 잠깐 보다 보면 순식간에 경고가 뜬다. 비용을 들여 배터리를 교체하자니 슬슬 지원 종료를 걱정해야 할 시점이다. 이 정도로도 딱히 불편하지 않은데 어쨌거나 새 제품은 계속 나오고 옛 기기는 밀려나서 하나씩 기능을 잃게 되는 구조라 알아서 손보며 더 쓸 방도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안드로이드는 어떻게든 운영체제를 갈아끼워 내멋대로 쓰기가 용이하지만 아이패드는 그럴 수 없으니, 기기를 바꾸거나, 아니면 앱들이 하나씩 실행되지 않는 걸 지켜보면서 쓰는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기기들이 이렇게 세월의 흐름에 떠밀려 망가지거나 망가지지 않았는데도 쓸 수 없게 되는 것을 보자면, 그리고 내게 청구서를 들이미는 것을 보자면 여간 슬프고 괴롭지 않다. 노화로 망가지는 것은 나의 정신과 육체만이 아닌 것이다. 기계들은 인체에 비해 쉽게 고치고 교환해서 쓸 수 있으니 수명이 길기를 기대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아마 근미래에도 신체 일부를 기껏 기계로 교체했더니만 지원이 끊기거나 부품이 떨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겠지. 나 원 참, 내 물건을 내가 원하는 만큼 쓴다는 단순한 일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어려워진 것일까?
*추신
제10회 온라인카지노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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