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게 살기의 어려움
얼마 전에는 찢어진 나이키 보메로 17을 주웠다. 오른쪽만 앞코가 마모되고 터지고 옆도 찢어진 것을 보면 축구를 했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공 차는 일을 평생 단 한 번도 좋아한 역사가 없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거나 이 신발의 주인은 신발이 터지는 것도 모를 정도로, 혹은 터지든 말든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공 차기를 좋아했던 듯하다. 워낙 흔히 있는 일이라 자연 현상의 일종으로 생각해도 될 법한데, 축구를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질기고 튼튼하고 가벼운 신발이 만들어지고 잘 알려지면 축구로 명을 달리하는 신발은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 아쉽다.
아무튼 터진 것 외에는 대체로 멀쩡했고 밑창의 마모도 심하지 않았다. 요즘은 나도 시간과 기력이 없어서 대공사가 필요한 신발은 고칠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이만하면 고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하여 열심히 세척하고 말린 이 신발을 날 잡고 바느질했다. 바느질 실력이 빼어난 사람들은 니트 짜듯 새로 직조를 하거나 수를 놓는 기술을 보이곤 하는데, 나는 가정 시간에 배운 대로 박음질이나 겨우 할 줄 하는 수준에 불과한 터라 꿰맨 티가 안 나게 하거나 멋지게 티를 낼 순 없었다. 그냥 되는 대로 꿰매었다. 신발 바깥에서 바늘을 찔러 바깥으로 바로 뺄 수 있는 부분은 그렇게 했고, 그게 도저히 안 된다 싶은 부분은 바깥에서 바늘을 찌른 다음 신발 안에 손을 집어넣어 바늘을 잡고 어림잡아 다시 바깥으로 뺐다. 바늘 끝이 어딜 향하나 보이지도 않고 손의 움직임도 한정적인 상황에서 바느질 하기란 상당히 번거롭고 시간도 걸렸으나 몇 센티 되지 않으니 금방 끝났다.
그 뒤에는 간소한 작업으로 수선을 마무리했다. 앞코가 마모되어 코팅이 벗겨지고 안쪽의 흰 중창 색이 드러나 마커로 간단히 도색했고, 살짝 벌어질듯말듯한 중창 테두리는 접착제를 발랐다. 붙이려 해서 붙을 면적이 아니라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는 정도로만 처리한 것이다. 밑창은 중족골 부분 마모가 다소 진행되어있기에 커터칼로 골을 새로 팠다. 마모되어 평평해진 바닥으로 물을 밟으면 수막현상으로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단 수선이 끝나긴 했으나 수선을 마치고 나니 근본적인 문제가 남았다. 나는 운동화를 265에서 270을 신는데, 이녀석은 275였던 것이다. 작은 것보다 낫지만 크다고 좋을 건 아니라 깔창만 모아둔 상자에서 아주 얇은 깔창을 하나 더 꺼내어 깔았다. 발꿈치가 고정되도록 발꿈치용 쿠션도 부착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발꿈치에 접착한 물건이 오래 그자리에 있어주지 않는 법이라 바느질을 해야하고, 그 골치아픈 작업을 또 하긴 지쳐서 수선을 최종 완료했다.
다 고친 보메로 17은 신고 달려보니 푹신하면서 통통 튀는 느낌이 썩 마음에 드는 러닝화였다. 그 특성 탓에 호카의 클리프톤9처럼 신고 장거리를 걸어다니자면 발바닥이 심하게 아플 게 뻔하지만 짧은 거리를 다니거나 러닝하기에는 적합하다.
그리하여 새롭지만 낡고 심지어 꿰맨 자국이 있는 신발을 신는 기분은…… 달리기 좋은 신발이 생겨 좋긴 하지만 순수하게 좋지는 않다. 티나지 않게, 보기 좋게 고치지 못한 탓이다. 아무리 낡은 물건을 여럿 고쳐 쓰는 나라도 망가진 티가 나는 신발을 신고 다니자면 영 눈치가 보인다. 가족이 낡은 신발을 좀 버리라고 비난할 것 같기도 하고 주변에선 남루한 사람으로 볼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신발을 버리라는 소리를 듣는 건 신발이 이미 많기 때문이고, 남루함이란 노후가 수습되지 않은 모습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떳떳하지 못한 것은 대놓고 자랑할 만큼 완성도가 높지 않은 탓이 아닐까 싶다. 낡았어도 아름다운 것, 혹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것이 인생의 추구미라 어쩔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최대한 티가 나지 않거나 모양 좋은 수선 방법을 나름대로 갈고 닦고 있긴 하나…… 복잡하고 놀라운 기술로 보이면 누가 따라할 엄두를 내기 힘들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니 누구나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신발이나 의류를 수선할 수 있는 환경이나 수선 도구가 갖춰지면 좋겠다고 소망은 하는데, 그게 가능할 날은 아무래도 근시일내에 오지 않을 모양이다.
*추신
저도 번역과 수필로 참여한 과학소설작가연대*일본SF작가협회의 문집이 펀딩중입니다. 기라성같은 작가님들의 작품 사이에 저는 우울감을 다루며 글쓰는 방식에 대해 썼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https://www.aladin.co.kr/m/bookfund/view.aspx?pid=2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