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과 운명이 나를 조롱한다 해도
내 방의 에어컨 날개가 부러진 것은 작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제대로 청소해본 적이 없는 에어컨을 스스로 청소해보겠다고 나선 탓이다. 필터와 날개를 분리하고, 나사를 숨긴 커버를 내리고, 나사를 풀고, 에어컨 전면 틀 전체를 뜯고, 팬을 고정한 나사를 또 풀고…… 기타 등등 지독한 과정을 거쳐 에어컨 청소에 성공하긴 했다. 고압세척기도 컴프레셔도 없어서 냉각핀까지 깨끗하게 청소할 순 없었지만 청소까지는 대체로 성공한 편이다. 그나저나 누구나 지적하는 얘기지만, 에어컨이라는 물건은 구조가 단순한 것에 비해 분해조립이 지나치게 어렵다. 습기가 차도록 만들어진 물건인데 청소는 어렵다니, 설계자가 곰팡이의 편인가 싶다.
아무튼 사고는 조립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에어컨 날개 끝부분, 날개를 움직이는 모터의 축과 날개를 연결하는 축이 부러진 것이다. 플라스틱 날개를 억지로 휘어서 꽂는 이상한 구조인데다 내가 서두른 탓에 일어난 일인데, 부러진 것 자체보다 부러진 부분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부러진 건 어떻게든 붙이면 붙지만 없는 부분을 만들어내는 건 어렵다. 나는 일이 성가시게 되었다고 혀를 차며, 다음부터는 반드시 전문업자를 불러서 청소하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나는 사라진 부분을 복원해보면서 비로소 이 상황이 얼마나 고약한가 깨닫게 되었다. 대충 퍼티 같은 것으로 모양을 만들면 될 줄았는데, 그 ‘모양을 만든다’는 게 지독하게 어려웠던 것이다. 힘을 받는 부분이라 단단해야 하는데, 축이 5밀리도 되지 않고 바깥 테두리는 기껏해야 8밀리 정도라 여유있게 모양을 만들 수도 없고 적당한 재료를 찾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원형이 아니라 힘을 받도록 끝이 일자로 생긴 축이 향한 각도를 맞추지 않으면 날개가 제대로 닫히지 않거나 너무 일찍 닫혀 모터에 과부하를 주므로 고도의 어림짐작을 해야 했는데, 이 역시 난감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작년 여름 내내 오만가지 실험을 해보다 포기했다. 사실 날개따위 냉방 성능과 별 상관이 없으니 그냥 쓰면 되는 일이었다. 결국 쓰고 나면 테이프를 붙여서 닫아두는 것으로 여름을 보내고 말았다. 눈가리고 아웅이지만 시간 대비 효과를 생각하면 대충 현명한 방법이었다.
그러다 올해에 들어서 다시 수리에 도전했다. 일단 몇 시간을 들이느니 교체할 수 있으면 교체하는 게 낫겠단 생각에 공식 as 창구로 문의했다. 그러나 해당 제품의 부품도 대체품도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규격화해서 여러 제품에 돌려 쓸 만한 부속인데 왜 어디에도 없단 말인가……. 호환성의 추구가 산업적 효율성에 대해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 깨닫고 다시 손을 쓸 수 밖에 없었다.
밑창 수선용 접착제, pvc 화장실 깔개의 일부, 글루건을 시험해본 결과 접착제는 고정도 약하고 분해하면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문제가 있었고, 깔개의 원통에 순간접착제와 베이킹소다의 혼합물을 채워 굳히고 다시 깎는다는 방법은 로터리툴까지 동원해서 온갖 고생을 했으나 각도도 맞추기 어렵고 강도가 역시나 부족했다. 글루건은 물렁한 것은 둘째치고 마찰력이 강해서 테두리가 매끄럽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 며칠을 씨름하다보니 정말이지 지긋지긋해졌다. 대체 왜 이 별반 쓸모도 없는 기능을 복원하자고 개고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부러진 부속은 왜 운명의 농간처럼 사라져서 나를 이 무용한 고난과 절망에 몰아넣었단 말인가. 마음같아선 여름 내내 그냥 날개를 떼어내고 쓰다가 더 쓸일이 없으면 닫아서 붙일까 싶었으나 미관상 아름답지 않아 마지막으로 새로운 소재를 써보기로 했다.
(사소하고 하찮아보이는 것이 유일한 경우가 있다)
그 소재란 바로 나무였다. 단단하고 깎으면 깎이니까 더할나위 없는 소재가 아닌가. 다만 처음부터 깎기가 번거로운게 흠이라, 나는 연필을 잘라서 줄을 갖고 갈고 또 갈고, 그야말로 탈옥을 꿈꾸는 죄수처럼 줄질을 하고 축에 맞나 대보길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만든 나무 축을 금속 축에 끼워보고, 끼운 상태에서 날개를 갖다붙이는 방법으로 각도를 맞춘 끝에 빌어먹을 놈의 에어컨 날개는 1년만에 제 기능을 되찾게 되었다.
그렇게 이 쓸모없는 과업을 마무리하자니, 사소해 보이는 부분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새삼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하찮아도 유일한 것은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으니 소중히 여겨야만 하는 것이다. 나 자신도 하찮은 한편으로 그 정도의 가치는 있길 바랄 따름인데…… 이 적당한 마무리에 끔찍한 여담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얼마전에는 이놈의 에어컨이 배수가 되질 않아 또 뜯어내고 절연테이프를 감아 직경을 맞춘 빨대를 내부 배수구에 꽂고 자전거 펌프로 바람을 불어 막힌 것을 뚫어야만 했는데, 이렇게 분해조립을 하다 보니 ‘부러져서 사라졌던 축의 일부’가 어디선가 툭 떨어졌다. 이쯤되면 에어컨이 나를 조롱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긴 건 나라고 생각하련다.
*추신
제10회 온라인카지노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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