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일회용 우산의 쓸모

-쓰레기를 발목에 차고 달리기까지

by이건해



누구나 별로 비싸지도 않은 물건을 잘 궁리해서 직접 만들었는데 품질이 다소 조잡해보이면 ‘그냥 하나 사고 말지’라는 말을 듣곤 한다. 아니면 듣지 않아도 누군가 그런 말을 할 거라고 짐작하고 움츠러들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결국 창의력과 도전 정신, 그리고 절약과 환경 보호 정신이 짓밟히고 슬롯가 무너지고 기후는 나날이 엉망이 되는 것이다…….


다만 나는 누가 뭐라 하거나말거나 뭘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면 내 마음대로 해오길 일삼아왔고, 근래에는 간이 스패츠를 만들어 쓰게 되었다. 스패츠란 일상생활과는 별 관련이 없고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한테 잘 알려진 물건인데, 발목에 감아서 등산화 안쪽으로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곤 하지만 미드컷 이상의 등산화를 신고, 비오는 날 나돌아다니거나 눈밭을 헤치고 다니지 않는 이상 쓸 일은 거의 생기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스패츠를 등산 배낭에 넣고 다니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눈이 녹은 뒤 땅이 마르지 않아 진창이 된 길을 걸어본 뒤였다. 진흙이 튀어서 바짓단이 완전히 엉망진창이 된 탓이다. 진흙을 먹은 바지는 보기에도 흉하고 식당에 들어갈 때도 눈치가 보이는데다 세탁기에 바로 넣을 수 없는 터라 애벌빨래를 해야 했다. 박박 솔질을 하는 내내 스패츠를 해야 했다고 진심으로 후회했다.


그리하여 스패츠를 긴 것 짧은 것 모두 중고로 구하긴 했으나, 쓸 일이 일 년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한 것을 지고 다니는 것도 좀 손해보는 심정이었다. 이미 손상된 무릎을 생각하면 10그램이라도 줄여야 하니까……. 그래서 고민 끝에 저지른 게 버려진 우산의 천을 잘라서 스패츠를 만드는 것이었다. 어째서인지 우산은 매주 분리배출일에 쉬지 않고 버려지니까 무한 공급되는 자원이나 다름없다.


나는 여러 우산을 탐색하다 편의점에서 파는 일회용 우산을 택해 천, 정확히는 비닐을 뜯어왔다. 천으로 된 우산은 사실 방수가 아니라 발수 원단이므로 물기가 오래 묻어있으면 물기가 안으로 스미기에 목적에 완전히 부합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 다음에는 스패츠를 펼쳐 그 크기에 가깝게 잘랐고, 적절한 위치에 체결용 벨크로를 붙였다. 순간접착제 계통이 붙지 않는 재질이라 양면 테이프가 이미 붙어있는 벨크로를 사용했다. 테이프도 잘 안 붙으면 바느질을 좀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견고하게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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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배낭에 늘상 넣고 다녀도 하등의 부담이 없는 수준의 간이 스패츠를 완성했으나…… 정작 이것을 제대로 쓸 일은 해가 지나 이번 장마철이 되어서야 생겼다. 그것도 등산이 아니라 저녁 운동을 갈 때.


저녁 운동을 무슨 첩첩산중으로 가는 것도 아닌데 스패츠가 왜 필요한가…… 이것도 설명이 필요하다. 나도 번거로운 건 질색이라 굳이 스패츠까지 하면서 운동을 하러 가긴 싫다. 그러나 반백수 실내 생활자에게 운동이란 고래가 호흡하러 나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건너뛸 수 없다. 덤으로 충분히 열량을 소모하려면 러닝이 가장 효율적인데, 집에 있는 샌들을 신어보니 쿠션이 부족해서 발바닥도 아프고 무릎도 걱정되었다. 그렇다고 목이 긴 등산화를 신자니 이건 무거워서 부담스러웠다. 쿠션이 아주 뛰어난 샌들이나 고어텍스 러닝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널려 있는 신발 놔두고 어찌 또 신발을 사겠는가. 나는 운동화 중에서 천이 적고 가죽이 많은 신발에 최대한 발수 처리를 해서 활용해보기로 했으나…… 발수도 비가 적당히 와야 튕겨내는 것이지 무한정 쏟아지는 걸 막는 마법의 방패가 아니라 발이 다 젖는 비극을 맛보고 말았다. 그리하여 신발을 빨아서 말리면서 고어텍스라는 게 없던 시절에 사람들이 가죽 신발을 방수처리한 고전적 방법을 알아보다 결국 포기했다. 가장 완전하다는 실리콘 코팅을 해버리면 신발이 공기도 안 통하는 장화가 되고 마는 탓이다.


그리하여 중고장터 탐색 끝에 고어텍스 러닝화를 또 하나 사고 말았다. 방수도 되고 투습도 되고 모양도 무난하고 가볍다. 속이 다 시원하다. 그런데 아뿔싸, 이것도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신고 나가보니 발목으로 물이 타고 들어오는 걸 막아주진 못했다. 결국 나는 또 이를 갈며 신발을 빨아야 했고…… 그제야 배낭에 처박아둔 간이 스패츠를 떠올렸다.


고어텍스 러닝화 위에 간이 스패츠를 착용하고, 그 위에 긴바지를 입고 다녀본 결과는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물이 줄줄 흐르는 걸 일단 긴바지가 막고, 젖은 바지가 양말과 신발 발목에 닿는 걸 차단하니 신발 안이 젖지 않는다. 쾌적하고 무릎 걱정도 없다. 그리하여 버려진 우산을 재단해 만든 간이 스패츠는 마침내 완벽히 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빗속에서도 오래 뛰는 러너들은 무슨 짓을 하든 발이 젖는 걸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일반 러닝화를 신고 뛰고 세탁하는 쪽을 택하니까 누구나 이런 걸 만들어 써야 한다고 주장하진 못하겠지만, 어쨌거나 우산 원단을 재활용하는 사람들도 손대지 않는 일회용 우산에서도 쓸모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건 나름대로 희망적이다. 어쩌면 무엇을 해도 빈손이 되는 내 인생에도 적당한 쓸모가 있지 않을까?


*추신

제10회 온라인카지노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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