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살려놓은 맥락 부족 호러
‘홈캠’은 제게는 ‘스카이 캐슬’로 익숙한 윤세아 주연의 한국 호러입니다. 홈캠이라, 제목만 들으면 어떤 이야기일지 대강 떠오르죠? 아무도 없어야 할 집에 설치해둔 카메라에 보여선 안 될 게 보인다……. 인간의 눈에 안 보이는 게 거울이나 카메라 따위를 거치면 보인다는 방식은 우리가 느낄 수 없는 존재가 있음을 보여줘 공포감을 주기 딱 좋으므로 대단히 오래된 전통입니다. 이 계통에서 ‘홈캠’을 활용하여 유명해진 작품으론 역시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제일이겠죠. 어둡고 화질이 나쁠수록 더 무서우니 연출면에서도 가성비 최고입니다.
홈캠도 시작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보험 조사원 성희는 딸 지우와 둘이 아파트로 이사합니다. 남편과 이혼했고, 지우는 어딘가가 아파서 집에서만 지냅니다. 걱정이 많아 보이는 성희는 집안 모든 곳에 홈캠을 설치하고 가사도우미를 고용합니다. 그 와중에 느닷없이 찾아온 청년은 집 앞에 소금을 뿌리는 성희를 보고 굵은 소금을 쓰라고 참견하며 아랫집이라 인사차 왔다고 수상한 낌새를 보입니다. 여기까진 청년이 나쁜 놈이라 해코지를 하는 모습을 홈캠으로 확인하는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정석적이죠.
그런데 성희가 고용한 베트남 출신의 가사도우미가 이상한 모습을 보입니다. 동생이 병원에 있다는 그녀는 과도하게 화려한 복장에, 아이 방에 엎드려 바닥을 두드리는가하면 아이에게 립스틱을 주기도 하고, 그녀가 있을 때 집안에 정체 불명의 여인이 오가는게 보이기도 합니다. 아이는 공포영화에 나오면 늘 그럴 수밖에 없듯 이상한 그림을 그리고 오밤중에 돌아다닙니다. 이걸 보면 가사도우미가 동생을 구하기 위해 악령을 떠넘기는 등의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와중에 성희는 복직하자마자 자살 사건을 검토하는데, 영화 시작 때 자살하는 영상이 나온 여인의 건입니다. 그녀는 이상한 소릴 중얼대고 벽에 머리를 연신 박은 뒤에 투신자살한 것으로 보이는데, 자살자의 모친은 자살이 아니라며 따져댑니다. 자살자가 남긴 편지를 보면 알듯말듯한 상황. 성희는 자살자가 베트남 여행에서 뭔지 모를 암각문 앞에서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 조사를 이어가지만 자살자의 모친은 오래지 않아 딸의 집에서 성경바카라 바카라자를 뒤집어쓴 형상의 시체로 발견됩니다. 이걸 보면 베트남에서 악령이 붙어서 왔고, 이게 성희에게 넘어온 것 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가사도우미가 연관된 얘기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어둠, 흰 원피스, 풀어헤친 머리 삼종세트면 중간은 가지만....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바람을 피워 이혼한 전남편이 찾아와서 아이를 볼 권리가 있다며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죠. 의심스러운 적대적 인물이 좀 많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튼 홈캠으로 이상한 현상이 너무 자주 보이자 성희는 도우미가 동생을 데려왔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해고하고, 도우미는 오래지 않아 동생의 병원에서 자살해버립니다. 이쯤되면 도우미가 강령술 같은 나쁜 짓을 하다 실패해서 죽은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자꾸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아랫집도 놔둘 수 없어서 성희는 항의하러 갔다가 그집 청년이 무당이란 걸 알게 됩니다. 무당은 성희가 조사중인 자살 사건에서 발견한 사진 속의 문구가 악귀를 부르는 주문이고 악귀가 지우의 몸을 빼앗으려 한다며 굿을 하지만, 영화에서 굿이 보통 그렇듯이 잠깐 안도감만 주고 공포스러운 상황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새로 고용한 도우미 할머니도 초월적 존재에 살해당하고, 무당까지 악귀의 공격으로 죽고 맙니다. 성희는 당연히 경찰 조사를 받는데, 이때 충격적인 반전이 드러납니다. 10여년 전 성희는 어째선지 지우를 태우고 남편이 바람피우는 현장을 확인하러 갔고, 그때 사고로 지우만 크게 다쳤는데, 이 날 이후로 성희는 지우를 계속 어린아이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홈캠에서 보인 의문의 여성이 진짜 지우였고, 어린 지우의 모습은 착각이었습니다.
성희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반전이 드러난 한편, 전남편은 성희가 없는 사이 지우를 찾아가지만 악귀에 빙의된 지우의 공격으로 빈사상태가 되고, 집에 도착한 성희는 상황을 파악하고 전남편을 확인사살합니다. 그 다음 악귀를 없애기 위해 소환 주문을 외워 자기 몸으로 부르고 자살합니다. 그리하여 너도나도 죽고 지우만 남는다는 것이 홈캠의 줄거리입니다.
전반적으로 그럴듯하게, 혹은 통속적으로 시작하지만 추리물처럼 여러 요소 중 원인이 뭔가 찾아가는 게 콘셉트 자체는 좋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게 악귀를 불렀나? 저게 무슨 짓을 하나? 생각을 바꿔가며 따라가게 되는 효과도 있었죠. 다만 수상한 요소가 너무 많아서 난잡한 감이 있었고, 후보가 하나 줄 때마다 마무리가 덜 되어 뭔소린가 싶었습니다. 특히 전반부에서 가장 무게있게 다뤄진 용의자인 베트남 가사도우미가 자살했다는 건 대단한 위기감을 조성하는 전개였으나, 그냥 위기감만 만들고 딱히 스토리상 맥락은 없이 던져졌습니다.
이런 문제가 다른 요소에서도 거의 공통되게 나타났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인 자살 사건도 베트남 악귀라는 핵심 소재면서 그게 어떻게 붙었고 사람을 죽였는지, 왜 어떻게 지우에게 옮겨갔는지 설명이 없어 따로 노는 것에 가깝습니다. 홈캠 설치 후 지우가 무서운 그림을 그리고 칼로 찍어대는 등 이상 행태를 보이지만 식상하기만 한게 아니라 전후로 아무 맥락도 없습니다. 악귀의 모습인지 아니면 사실 10대 후반인 지우가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증상을 보인 것인지 알 수도 없고, 그냥 무서운 장면의 역할 외에 기능이 없어 보입니다.
무당도 위기감을 조성하고 성희가 돌아다니며 이 수 저 수 써보는 동기를 주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있으나 없으나 인과적으로는 역할이 없는 듯합니다. 전남편의 난입도 의심의 씨앗은 되지만 안 나왔어도 이야기에 별 지장은 없었을 듯합니다. 두 번째 도우미인 할머니의 등장과 죽음도 홈캠을 통해 기이한 죽음 장면을 보여주고 경찰의 등장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는 있으나 악귀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죽인 것인지 의문입니다.
그 와중에 지우가 사실 십대 후반인데 주인공 성희가 아이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반전은 윤세아 배우의 열연으로 충격과 박진감을 주었으나, 돌이켜보면 이 사실을 암시하는 부분은 첫 번째 도우미가 립스틱을 준 것 말고 찾기 힘들었습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은 점이 더 많았죠. 십대 후반의 청소년이 학교도 안 가고 집에 있고 도우미를 불러다 돌봐주는 상황인데 몇 살인지 무슨 병인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없고, 경찰 얘기로는 지우가 주민등록이 안 된 사람이라고 하는데 대체 어디서 낳은 것이며, 20년 가까이 병원 한 번 안 간 것인지, 전남편은 그걸 왜 신고도 안 하고 방치한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홈캠은 여러 공포 영화의 소재를 가져와서 연결해두었지만 인과관계로 잘 얽히지는 못한 작품으로 보였습니다. 의외성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베트남 여행 후 자살한 자살자를 조사하다 옮겨온 악귀를 쫓으려 고군분투하지만 주인공의 정신적 문제와 과잉 보호 때문에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였으면 말끔하고 적절히 무서운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그저그런 작품으로 내버리기엔 주인공 윤세아 배우의 연기가 돋보이기도 했고요.
*추신
제10회 온라인카지노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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