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래시:상어의 습격 후기

-B급 상어 재난물에서 찾는 장인정신

by이건해



스래시:상어의 습격은 어느모로 보나 저렴한 ‘상어물’입니다. ‘상어물’이라니 대체 그게 뭐냐고 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B급 호러영화판에서 상어물은 상당히 유명한 메이저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네이도 탓에 거주지에 상어가 쏟아져내려 난장판이 된다는 ‘샤크네이도’ 시리즈가 유명하죠. 콘셉트만 들어봐도 즉물적 코믹 호러라는 짐작이 갈 텐데, OTT 시대가 열린 뒤 누구나 체감할 수 있듯이 집중해서 봐야 하는 명작, 수작보다 대충 틀어놓고 보든말든 아무렴 어떠랴 싶은 영화가 사랑받는 상황도 적지 않은 터라 이런 영화도 상당히 시장성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스래시 역시 장르문법을 충실히 지켜 평온한 마을에 전대미문의 허리케인이 몰아닥치고, 그탓에 식인상어떼가 마을 깊은 곳까지 들어온다는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해변이나 상어와는 무관한 대도시에서 살자니 아무래도 좀비가 더 현실감 있지 않나 싶지만, 적어도 샤크네이도처럼 상어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사람이 그걸 전기톱으로 썰어버리는 얘기는 아니니까 그럴듯한 설정이긴 합니다.


이야기는 이런 재난물이 흔히 그렇듯 여러 그룹의 고군분투를 번갈아 다룹니다. 일단 만삭인데도 빗속에서 출근했다는 리사와 불안장애를 가진 소녀 다코타가 있습니다. 마을이 완전히 물바다가 되면서 리사는 차에 갇힌 채 나무에 끼어 오도가도 못하고 익사할 지경이 됩니다.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절단기를 가져가서 구하려 하지만 상어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들을 죽이죠. 다코타는 집 2층에서 이 상황을 알지만, 평소에도 집 밖에 나가길 꺼리는터라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임신부를 버리면 이야기가 안되겠죠? 이를 악물고 나가서 구출합니다. 그리고 이런 위기가 닥치는 영화에서 만삭의 임신부가 나와서 출산을 하지 않으면 ‘체홉의 총’ 이론에 위배되겠죠? 당장 진통이 시작됩니다.


한편 한 집안의 의붓 아이들로 설정된 론, 윌, 디 삼남매는 마을 인근 호수에서 잠수도 하고 수영도 하고 재미나게 노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그룹에도 갈등 요소는 있습니다. 양부모가 이들을 학대하고 있다는 것이죠. 폭행이 아닌 재정적 학대입니다. 아이들을 빌미로 지원금을 받지만 지하의 창고에 먹을 것을 숨겨두고 애들은 형편없는 밥을 주는 식으로 학대합니다. 이런 가정이 나오면 친부모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이들을 구하며 재결합하는 게 흔한 패턴인데, 친부모는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들끼리 살아남아야 합니다. 관객은 양부모의 처참한 파멸을 기대하게 됩니다.


세 번째 그룹은 다코타의 삼촌인 해양학자 데일과 그의 팀입니다. 이들은 마을의 위기를 감지하고 구출하러 가는데, 대사로 위기감을 조성하는 것 말고는 후반이 될 때까지 극의 진행에 영향을 주지 않는 편입니다.


이 인물들을 돌아가며 보여주는 전개는 대단히 특별할 것 없이 돌아갑니다. 다코타는 리사의 출산을 대비하다 2층까지 침수될 위기에 처하자 보트를 구해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상어가 득시글대는 물속을 지나야 하죠. 상어를 피하기 위해 그녀는 진동하는 물건들을 물에 띄우는 지혜를 발휘합니다. 그러나 리사를 바로 구해내지는 못하고, 리사는 출산 직전에 침수되는 집에서 벗어나 물속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물론 피냄새를 맡은 상어가 가만히 있을 턱이 없는지라 리사는 출산 직후에 나무토막으로 상어를 물리치고, 다코타와 데일이 차례로 그녀를 도와 구출합니다.


한편 삼남매는 아이들을 대충 버리고 도망치려는 양부모의 재정적 학대를 알아내고 이들에게 저항한 끝에 그들이 천벌을 받듯 죽는 것을 지켜본 뒤 상어와 싸우게 됩니다. 싸움은 마치 집안에서 벌이는 용암 피하기 게임처럼 시작되지만, 결국에는 침수된 지하에서 고기와 폭약을 꺼내와서 일종의 기뢰를 만들고, 이것으로 상어를 처치하는 데에 성공합니다. 그뒤엔 양부모가 도망에 쓰려 했던 차를 타고 진짜 집을 찾아 떠나며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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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호랑이에 물려가고 미국에선 상어에 물려간다-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이미지)


콘셉트와 줄거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스래시는 딱히 명작도 수작도 아닙니다. 기대할 걸 기대해야죠. 그러나 막나가는 B급의 코미디 액션일 게 뻔하다는 예상과는 거리가 멀어 긍정적인 충격을 주었습니다. 산부가 출산 직후에 나뭇조각으로 탯줄을 끊고 상어를 두들겨 팬다는 식의, 과장이 너무 심하다 싶은 부분이 있긴 하지만, 호로록 완성한 각본은 아닌 듯했습니다. 특히 많은 소재와 인물의 앞뒤를 잘 맞춘 게 보였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리사는 빗속에서 출근하며 어머니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어머니는 언니처럼 수중 분만을 하라고 제안하고 리사는 편안한 침대에서 엄선한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낳을 거라고 답합니다. 이 이야기는 리사가 침대에서 음악을 들으며 산통을 겪기 시작하지만 물속에 뛰어들어 수중분만을 하는 것으로 돌아옵니다.


다코타는 약병을 비춰주어 공황장애를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삼촌과의 통화로 이야기의 포석을 둡니다. 삼촌은 다코타의 어머니가 죽은 건 안타깝지만 집안에만 머물러선 상처가 낫지 않는다고 하고, 다코타는 보호자 노릇이 서툴다고 웃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코타가 집을 나서서 리사를 구출하고 리사의 아이까지 안아드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죽음으로 인한 슬픔의 껍질에서 벗어나 바깥에서 생명을 구한다는 이야기는 물론 뻔하지만 나무랄 것 없는 고전입니다. 마지막으로 데일이 돌아와 이들을 보호한다는 것도 준수한 완결인데, 데일의 이야기도 앞뒤를 맞춰두긴 했습니다. 어릴 때 하마의 공격을 당할 뻔했을 때 황소상어가 와서 하마를 공격한 덕에 살아남은 뒤로 상어를 연구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마지막에 가서 리사를 공격하려는 황소상어를 백상아리가 잡아먹는 모습을 목도하는 것이죠. 이건 다른 얘기에 비해 매끄럽진 않았지만 이런 조율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감탄할 만했습니다. 안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삼남매 이야기는 거의 집안에서만 벌어지는 작은 연극 같은 규모였지만 이들의 이야기도 여러모로 조율이 되어 있었습니다. 호수에서 놀때 론이 잠수를 길게 해서 디를 걱정시키는 장면은 상어가 나오는 장르 특성상 긴장감을 자아내는 동시에 후반 활약의 포석이 되었죠. 그리고 개학이 싫지만 학교 가면 밥은 먹는다는 대화도 학대라는 상황을 잘 끌어냈습니다. 이들이 출입금지구역이던 지하에 잠수해서 자기들이 먹지 못했던 고기를 꺼내와서 미끼로 쓰고, 상어를 불러들이기 위해 절대 들어가지 않으려 했던 물에 들어가 소란을 피우는 것, 양부모가 자신들을 버리고 가려 할 때 쓰려던 차를 타고 자유를 찾아 떠나며 끝나는 것도 극복과 성장의 이야기로 말끔해 보였습니다. 이것들 모두 세련되었다고 할 만큼 멋진 장치들은 아니지만, 장르 특성상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도 이 요소들의 앞뒤를 전부 정교하게 맞춰뒀다는 건 찬사를 보낼 만합니다. 저라면 넉넉한 시간을 갖고 소설을 쓴대도 이렇게까지 조율을 해낼 자신이 없어요.


그리고 이런 ‘떡밥 회수’의 기술을 뺀 나머지 부분도 썩 괜찮습니다. 특출나게 눈길을 사로잡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구도와 화면의 때깔도 준수하고, 특수효과도 그닥 거슬리는 부분이 없으며, 긴장감도 적절히 유지됩니다. 인터넷의 평은 좋지 않지만 이만하면 상어계의 보석이고, 흉칙한 작품이 넘쳐나는 재난물 중에서도 썩 훌륭하다 할 만합니다. 쉐프가 만든 불량식품 같은 느낌이랄까요. 창작자로서, 장르와 소재가 저렴해도 신경쓰면 그만큼 뭐가 달라도 다를 수 있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상어보다 더 참신하고 과감한 소재를 사용했으면 더 좋았겠습니다만......


*추신

제10회 온라인카지노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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