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안 드는 걸 마음에 들게
러닝화로 나온 언더아머의 호버 인피니트를 중고로 사서 몇 년 째 신고 있다. 사놓고 보니 러닝화 치고 단단한 편이라 러닝이 아니라 일상용으로 신어오긴 했으나 접지력도 여타 러닝화보다 준수하고 밑창의 면적도 제법 넓으며 신발 혀와 뒤축의 쿠션도 아주 넉넉해서 오래 걷기에도 적당하지 싶다. 앞코에 단단한 플라스틱 가드까지 붙어있는 것을 보면 산을 다니거나 테니스, 축구처럼 격한 운동을 하기에도 적당해 보인다. 맥스쿠션이 대세인 요즘 러닝화와 비교했을 때 단단해서 그렇지 다용도로 쓰기 좋은 신발인 셈이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하다못해 옷이라도 덜 추하게 갖춰 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 신발은 점점 ‘남에게 보일 신발’의 목록에서는 빠지게 되었으니, 그 이유는 바로 중창의 색깔이었다. 나름대로 두툼하면서도 멋스럽게 투박한 형상을 가진 중창만 흰색이라 옷과 색을 맞추기가 영 시원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만 것이다. 물론 바지와 색깔을 맞춰야만 보기에 좋다는 패션의 절대적 규칙 같은 게 있지도 않고 적당히 날렵함과 뭉툭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신발은 검은 바탕에 흰 색이든 흰 바탕에 검은색이든 아무데나 잘 어울리기 마련이고, 실상 잘 생각해보면 나도 어지간히 튀는 경우가 아니면 남의 신발이 옷과 잘 어울리나 안 어울리나 눈여겨보지도 않는 터라 남도 내 신발의 조화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패션이란 남이야 뭐라 하건 ‘자기 쪼대로’입는 것이라는 격언을 돌이켜보며 이 신발과 여러 바지를 맞춰보아도 도통 시원치가 않았다. 신발 끈을 흰색으로 바꿔보면 색의 균형이 좀 맞지 않을까 싶어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어떻게 신어도 운동하러 가는 복장이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고 둥둥 뜨는 듯했다. ‘자기 쪼’에도 맞지 않는 셈이다. 중창만 검은색이었다면 튀지 않고 무난했을 텐데 어째서 언더아머는 신발을 낳고 검은 중창은 낳지 않았단 말인가…….
결국 나는 이 신발을 써먹을 길은 뒷산 다닐 때 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대충 신다가 기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지금 기부할까 말까 고민해야 할 순간이 되자 시도해볼 게 하나 남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색이 마음에 안들면 칠하면 되는 게 아닐까, 하고.
물론 신발의 중창을 직접 색칠한다는 게 그리 권장되는 일은 아니다. 압축되고 구겨지고 잘 긁히는 부분이라 무슨 짓을 해도 색이 벗겨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재료를 쓰면 도색이 더 오래 잘 남는다는 얘기는 있으나, 도색면이 긁혀서 떨어져나가고 본래의 색이 나오는 건 막을 방법이 없다. 막 신어도 중창이 계속 검으려면 원래 그 색이어야 한다. 인간이 외양을 분칠하고 꾸밀 순 있어도 그게 영원히 유지될 순 없어 본성이 나오기 마련인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분칠을 쉽고 간단히 할 수 있다면 자주 해줘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안 해보는 것보다는 나은 시도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비싸고 오래 간다는 도료 대신 싸구려 마커를 써서 중창을 칠했다. 특별히 고급스럽고 오묘한 색을 원하는 게 아니라 검기만 하면 그만이니 막 써도 되는 재료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는 직구로 산 투명색 중창 보호 마커로 한 층을 덧칠했는데, 아마 아크릴 계통의 도료가 아닌가 싶다. 하여간 직구 제품은 늘 성분을 알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하여 대충 적당히 도색하고 코팅한 이 운동화는 대강 봐줄만한 물건이 되었다. 광이 지나치게 번들거리는 게 거슬리는 감이 있지만 지나가는 사람마다 ‘저 사람 신발 중창만 빤닥거리는 꼴 좀 보라지!’ 하고 손가락질하거나 식당에서 내쫓을리는 없으니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 밑창 부분에 드러난 중창은 칠해봐야 바로 벗겨질 게 뻔해 칠을 안 했더니 걸을 때마다 도드라지지만, 이것도 원래 그런 모양인 척 하지 못할 것도 없다.
건조까지 끝난 뒤 색깔이 바뀐 신발을 바지와 맞춰보니 과연 기대한 대로 잘 어울린다. 전에는 희게 도드라진 중창이 너무 스포티하고 투박한 느낌을 줘서 운동복이 아닌 어떤 바지에 신어도 ‘맨날 신던 신발 대충 편하게 신고 나온’ 느낌을 줬는데, 이제 검은 색 계통의 바지와 색상이 잘 이어져서 거슬리지도 않고 다리가 더 긴 듯한 착시 효과를 준다. 이만하면 대단히 준수한 신발이다.
그리하여 안고 가기로 확정된 신발이 또 하나 늘었다. 이제 검은색의 멋진 운동화를 구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호버 인피니트를 놔두고 어떻게 잘 써먹을까 아니면 처분하는 게 나을까 하는 고민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대신에 시간이 지나며 도색면이 까지고 흰색이 드러나면 다시 보수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으나 대수로운 수준은 아니다. 무력하게 살아가는 슬픔과 보람이 없는 우울감도 분칠하고 땜질하며 사는 것에 비교하면 이 정도쯤이야 재미난 일이 아니겠는가.
(신품 옷과 신발을 사지 않은지 조만간 600일이 된다)
*추신
제10회 온라인카지노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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