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린 날개를 가지고 있어. 어린 날개는 태어나 퍼덕일 준비를 스스로 마치지만, 그보다 더 어린 뿌리에 내린 날개는 그 준비까지 시간이 좀 걸려. 아파야 할 시간이 필요하거든. 어지러워야 하고, 메스꺼워야 하고, 발진이 돋아야 하고, 근육이 경직되어야 할 시간 말이야. 아픔 뒤에 오는 잔상이 성장통이라면, 결국 아픔 뒤에 날개가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태어남은 고통을 필히 포함하는, 고통이란 전체의 어느 한 부분은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는 아픔이, 나만 아는 아픔이, 아무도 몰라주는 아픔이 가장 고통스럽다는 걸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래도 이 고통이 나와 내 날개를 찾아주었다는 건, 참 다행이야. 나만 아는 고통 뒤에, 나만 아는 세계에 들어간 거지. 앓고 나면 보이는 세계는 입구와 출구의 구분이 없어. 날개를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평생을 날아다녀야 하는 건 아니듯이, 언제든지 그 세계는 다시 닫힐 수도, 다시 열릴수도 있어. 언제 또다시 그 세계에서 튕겨나갈지 몰라. 당장 내일일지도 모르지. 그치만 앓아야 보이는 세계가 있다는 것, 아픔 뒤에 오는 잔상이 성장통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세계의 바깥에서도 더 이상 두렵지가 않은 거야. 어린 날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먼저 자라고 우리는 대개, 가장 오래 앓은 뒤에야 비로소 그것을 발견하게 되거든.
한 번 자신의 날개를 발견한 사람은, 다시 추락하더라도 결국 그 날개의 감각을 기억하게 되니까.
솟아오르는 물줄기 사이로 보이는 좁은 길에는 두리번거리며 쓰레기를 줍는 행복한 표정의 한 남자와, 햇빛을 맞으며 하천을 향한 채로 멍하니 서 있는 이름 모를 새의 뒷모습이 보인다. 우연이 만들어낸 이 파라다이스를 눈에 담고 있자니, 잠자코 있던 어린 날개의 끝이 바람에 스미듯 미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