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에 불과한 시간. 열렬히 파고들만 한 가치가 있는 시간. 나의 과거는 대충 이럴 때가 있었다. 기억만으로, 경험만으로, 상상만으로, 이토록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시간. 그러나 건강한 것들이 지독하게 필요했다. 때론 새해에게 사과를 건네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연한 잉크에 나를 담가보기도 했다. 꿈만 같은 시간들을 맛보았었기에. 쓰고, 버리고, 포기해야 할 것들을 알았다. 한때 믿었었기에. 생각이 많아지는 날엔 바다를 보러 가고 싶었다. 흘러가고 싶었다. 그런대로 살아지고, 그런대로 놔두어지고 싶었다. 어떤 세기의 파도가 마음을 달래줄지 알 수 없는 날이겠지만, 그저 바라볼 파도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머리 꼭대기에 늘 하늘을 두고서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완벽하게 가벼운 자연을, 나는 질투했다. 나의 도피를 되려 내가 모른 체 하고 있었다.
나와 영영 함께 갈 것 같은 페이지는 욕심을 내서라도 꽁꽁 숨겨두었다. 어떤 페이지는 두 장이 넘어가는 나의 허술한 글감이 되기도 했다. 미처 소리 내지 못한 마음이 들켜버릴 때도 있었다. 나는 그 머쓱함이 늘 새로웠다. 온몸으로 느끼고 품어야 했다. 머쓱함에 내 몸이 갇혀 비로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당혹스러운 충격을, 그때의 나는 꼭 맛보아야 했다. 그러다 보면 망설임이 제 발로 도망을 가는 때가 찾아올까 해서. 몰두의 힘이 얼마나 센지를 알게 될까 해서. 근사한 걸 하지 않아도 그 순간에 몰두할 수 있는 힘. 외의 것은 과감히 버려낼 수 있는 털털함.
그래서 나는 처음을 추구한다. 변화의 유혹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처음이지만 끊임없이 상상하고, 그려보고, 써보면 그것이 방향을 잡아주는 일이 되리란 걸 이제는 안다. 태도는 의지로 바꿔나갈 수 있다는 말을 믿어보려 한다. 당장 지금도 가능한 것. 너무나 쉬운 그것을 한번 꽉 잡아보려 한다.
지나치게 진심을 내보이는 것. 나의 지나친 흥분이, 마음껏 들켜도 좋은 것. 이젠 그것이 나의 오랜 숙제이다. 나는 나와, 무엇도 감추지 않는 사이가 되고 싶기에. 나의 지금은 대충 이렇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