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그 말을 믿어보고 싶었다

by대건

나를 설명하는 말을, 나를 알아가는 질문으로 바꾸는 일

“너는 공부가 어울리는 사람인가 봐. 지금 하는 공부 계속 해봐.”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에게 내가 건넨 말이다. 친구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넣고 사주를 들여다보니, 공부를 오래 붙잡을 수 있는 성향이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나는 그 말을 응원 삼아 전했다.


그 말이 친구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 해석만으로 시험에 합격할 사람인지 알 수도 없다. 다만 공부하는 사람에게 “너는 공부와 맞는 사람”이라는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생각해볼 만했다.


바카라상 앞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모르는 문제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의심도 만난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맞지 않는 길을 괜히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느 순간 재능이 없다는 판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누군가 건넨 말 한마디가 오늘 바카라을 덮는 시간을 조금 늦춰줄 수는 있지 않을까.


요즘 내가 사주를 들여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나를 너무 일찍 단정한 것은 아닌지, 다른 설명은 없는지 궁금해서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내 사주에는 편인이 세 개 있다고 한다. 내가 접한 풀이에서는 편인을 호기심, 탐구, 혼자 생각을 깊이 이어가는 성향과 연결했다. 글을 쓰는 일도 잘 맞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디까지나 사주 안에서의 해석이지만, 그 말을 듣고 돌아보게 된 내 모습은 있었다.


나는 하나를 알면 다음 것이 궁금해진다. 어떤 말의 뜻을 알게 되면 그 말이 생긴 이유를 묻고, 당연하다는 설명을 들으면 왜 당연한지 다시 묻는다. 그러다 보면 알아야 할 것보다 궁금한 것이 더 많아진다.


때로는 이런 내가 피곤했다. 남들은 별생각 없이 넘어가는 일을 혼자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시간에 당장 도움이 되는 일이나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같은 모습을 탐구하는 성향이라고 부르니 조금 다르게 보였다. 질문이 많다는 것이 글을 쓰는 데 쓸모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주를 본 뒤 갑자기 호기심이 생긴 것은 아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그전부터 있었다. 달라진 것은 이미 가지고 있던 내 모습을 대하는 태도였다. 자꾸 고쳐야 할 버릇처럼 여기던 것을 한번 써볼 만한 성향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새로운 재능보다, 이미 하고 있던 일을 너무 쉽게 깎아내리지 않을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경험을 생각할 때 참고할 만한 심리학 개념이 자기효능감이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는 어떤 행동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시도와 노력, 어려움 앞에서의 지속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직접 해낸 경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격려와 설득도 그 믿음을 형성하는 정보가 될 수 있다.


다만 자기효능감은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막연한 기분과는 다르다. “오늘 정한 분량을 공부할 수 있다”, “막히더라도 글 한 편을 끝까지 써볼 수 있다”처럼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믿음에 가깝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주 풀이를 듣고 용기를 얻었다는 경험도 이해해볼 수 있다. 어떤 말이 자신을 보는 시각을 바꾸고, 그 변화가 작은 시도로 이어졌을 가능성이다. 그렇다고 자기효능감 이론이 사주의 정확성이나 효과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힘이 되었다는 것과 정확하게 맞혔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친구가 내 말을 듣고 공부를 더 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사주가 적성을 알아냈다고 할 수는 없다. 가까운 사람이 자신의 노력을 지지해준 것이 고마웠을 수도 있다. 이미 해오던 공부를 계속할 이유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격려가 실제 힘을 가지려면 그다음 경험이 필요하다. 바카라을 펼치고, 모르던 문제를 이해하고, 어제보다 조금 더 해보는 일이다. 처음에는 남의 말을 빌려 시작했더라도, 나중에는 자신이 해낸 일을 근거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내가 건넨 말이 언제나 응원이 된 것은 아니다.


한 군대 선배에게 사람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좋은 뜻으로 했지만, 선배의 반응은 내가 기대한 것과 달랐다.


처음에는 영업이 잘되지 않아 그런 말을 듣기 불편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추측이었다. 실제 실적이 어땠는지, 무엇이 불편했는지 충분히 알지 못했다. 사주 자체가 못마땅했을 수도 있고, 내가 자신을 해석하는 태도가 불편했을 수도 있다.


돌아보니 나는 선배가 그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보다, 내가 좋은 말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더 마음을 두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당신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잘 맞는다”고 말하는 것은 가능성을 짚어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며 지쳐 있는 사람에게는 계속 버텨보라는 요구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렇게 잘 맞는다면서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자바카라을 더할 가능성도 있다.


말하는 사람이 격려라고 생각했다고 해서 듣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격려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일을 계기로 사주를 이야기할 때 먼저 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이 사람이 어떤 성향인가에 앞서, 지금 어떤 상황에 있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를 들어야 했다.


한편, 듣기 좋은 해석에 마음이 움직일수록 내 쪽에서도 조심할 부분이 있다.


심리학에는 바넘 효과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다. 여러 사람에게 두루 적용될 만한 설명을 자신에게 특별히 들어맞는 분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버트럼 포러의 유명한 실험에서는 학생들에게 같은 성격 설명을 주었는데도, 학생들은 대체로 그것을 자신에 대한 정확한 설명으로 평가했다.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지만, 때로는 혼자 있고 싶어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내 마음을 알아본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혼자 쉬고 싶은 마음을 함께 가진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내가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는 풀이에 고개를 끄덕인 순간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설명이 내게만 해당하는가. 나와 다른 사람에게 해줘도 비슷한 반응이 나오지는 않을까.


사주를 보고 실제 경험을 떠올렸다는 사실만으로 그 해석의 정확성을 확인했다고 할 수는 없다. 어떤 말이든 내 삶에서 비슷한 장면을 찾아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한계를 알면서도 사주를 볼 이유가 있을까.


내가 찾은 방법은 해석을 질문으로 바꿔보는 것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결론에서 잠시 멈추고, 정말 그런지 살펴볼 일을 정해보는 것이다.


가령 글쓰기가 어울린다는 말을 들었다면, 곧바로 작가가 될 운명이라고 믿을 필요는 없다. 대신 한 달 동안 짧은 글을 일주일에 한 편씩 써볼 수 있다. 소재를 찾는 일이 즐거운지, 초고를 고치는 과정은 견딜 만한지, 반응이 적어도 다음 글을 쓰고 싶은지 지켜보는 것이다.


이때 “좋아하는가”, “지금 잘하는가”, “생활 속에서 계속할 수 있는가”는 나누어 물어볼 만하다. 좋아하지만 아직 서툴 수 있고, 잘하지만 오래 하고 싶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고 싶어도 지금은 시간과 체력이 부족할 수 있다.


이 차이를 건너뛰면 모든 어려움을 적성 탓으로 돌리기 쉽다. 글이 안 써지는 날에 필요한 것이 재능에 대한 판정인지, 조용히 앉아 있을 한 시간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반대되는 경험도 함께 남겨두면 좋겠다. 탐구를 좋아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면, 궁금해하면서도 금세 덮어버린 주제는 무엇이었는지 돌아보는 것이다. 나는 모든 공부를 좋아하는가, 관심 있는 것만 오래 붙잡는가. 질문하는 일을 좋아하는가, 답을 찾느라 수고하는 과정까지 좋아하는가.


질문이 구체적일수록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조금 더 선명해진다.


다만 이런 시도로 확인하는 것은 내 흥미와 행동이다. 사주라는 체계 전체가 맞는지를 검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정도 구분은 해두어야 좋은 경험 하나를 이유로 다른 해석까지 모두 믿게 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사주에 기대지 않고도 이런 질문은 할 수 있다. 독서나 대화, 상담과 직접적인 경험도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누구나 사주를 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처럼 어떤 해석을 듣고 자신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라면, 그 관심을 실제 삶으로 이어가볼 수는 있겠다. 무엇이 맞았는지를 세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래서 무엇을 해볼 것인지 묻는 것이다.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설명해준 말은 반가웠다. 그러나 그 말이 없어진다고 내가 써온 글까지 없어지지는 않는다. 좋지 않은 풀이를 듣더라도 이미 쌓아온 경험을 거기에 맞춰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 내가 글을 계속 쓸 수 있는지는 태어난 시간보다, 쓰고 고치며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게 사주를 보는 이유가 있다면, 나도 몰랐던 운명을 알아내서가 아니다. 무심히 넘겼던 내 모습에 질문을 붙이고, 아직 해보지 않은 일에 작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대건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무엇이든 자주 생각하고 곱씹으면, 그것이 마음의 성향이 될것이다"

789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5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0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8화나만 아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