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참는 연습

by대건

인간관계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주제지만, 동시에 가장 어렵고 복잡한 과제이기도 하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진심을 담아 사람을 대하면 언젠가는 통하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갈등이 생겨도 마음을 열고 대화하면 해결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믿음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오해가 생기며, 감정이 엇갈리는 순간들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무력함을 느꼈다.


특히 온라인 게임이라는 공간은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무대였다. 조직 속에서 역할은 명확하지만, 감정은 명확하지 않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 메시지의 말투조차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누군가는 섭섭함을 느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스스로 상처받는다. 그런 상황을 반복하며 나는 종종 "왜 이렇게까지 어렵지?"라는 질문을 되뇌곤 했다.


그러던 중 다시 펼쳐 든 바카라이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고전이라 부르는 이 바카라을 예전에 한 번 읽은 적은 있었지만, 그땐 그저 당연한 말들의 나열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실제 인간관계의 좌절과 마찰을 경험한 후 다시 읽은 이 바카라은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카네기는 인간관계의 기본 원칙을 말한다. 진심 어린 관심을 보일 것, 상대를 존중할 것, 비난보다는 이해하려 노력할 것, 그리고 자신의 잘못은 솔직히 인정할 것. 말은 쉽다. 그런데 실천은 어려웠다.


무엇보다 나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감하게 되었다. 감정이 상해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는 건,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억울함과 반박 욕구를 억누르는 일이다. 특히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때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니 카네기가 말하는 '경청'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는 수양에 가까웠다.


바카라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조차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다소 극단적으로 느껴졌지만, 곱씹을수록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도, 사기, 폭력 등 슬롯적 규범을 위반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나는 불가피한 선택을 했을 뿐이야", "그 사람이 먼저 잘못했잖아", "슬롯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그들은 자신이 타인을 얼마나 해쳤는지보다,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지를 먼저 말한다.


우리 대부분은 범죄자가 아니지만, 이 극단적인 예시는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갈등이 생겼을 때 내 감정을 먼저 챙기고, 내 입장을 우선시하며, 상대방의 입장은 종종 뒷전으로 밀려난다. 나 역시 온라인 게임에서의 수많은 마찰 속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해왔다. 스스로 옳다고 믿고 내린 결정에 대해 누군가 불만을 표시했을 때, 나는 그 불만을 억지 주장으로 여겼다. 내 논리, 내 경험, 내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나는 틀리지 않았으니 상대방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늘 갈등을 심화시켰고, 관계를 단절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나는 억지로라도 상대방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억울하고, 화가 나고, 내 입장을 먼저 말하고 싶을 때조차 참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그건 좀 억지인데'라는 생각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렇게 경청하는 척이라도 해보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상대방은 "내 얘기를 들어줬다"고 느끼는 순간 감정을 가라앉히고, 나의 입장을 들어보려는 자세로 돌아섰다. 처음에는 억지로 시작했지만, 그 순간이 반복되자 나도 점점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억지로 듣는 경청이 결국은 진짜 이해로 이어지는 지점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순간순간 하고 싶은 말이 떠올라도 곧바로 뱉지 않고, 한 박자 참았다가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카네기가 이 말을 그대로 한 것은 아니지만, 좋은 경청자가 되라던 그의 조언과 논쟁을 피하라던 조언을 실천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다른 태도였다. 이 원칙은 나의 인간관계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바꾸기 시작했다. 카네기가 말한 대로, 상대방에게 진심 어린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상대방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관계의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이 사람은 내 편일 수도 있겠다"는 감정은 방어를 내려놓게 만들고,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다.


나는 그동안 자신을 꽤 배려 깊은 사람이라 여겼지만, 『인간관계론』을 통해 내 태도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듯하면서도 결국은 내 관점에서 판단하고, 내 감정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 일 처리 방식을 두고 나와 계속 부딪히던 동료가 있었다. 예전 같으면 그 사람의 지적을 방어부터 하고 봤을 텐데, 이번에는 끝까지 이유를 들어보았다. 놀랍게도 그 사람이 짜증이 나서가 아니라, 예전에 비슷한 실수로 곤란을 겪었던 경험 때문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유를 알고 나니 더 이상 그 사람의 태도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협업이 훨씬 수월해졌다. 성격이 까다롭다고 평가받던 사람과도, 일단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면 관계는 의외로 쉽게 풀렸다. 관계는 결국 신뢰의 문제이고, 그 신뢰는 관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네기의 가르침은 단순한 인간관계의 팁을 넘어, 사람을 대하는 철학을 알려준다. 칭찬을 아끼지 말 것, 불필요한 비난을 줄일 것, 상대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것. 이런 태도는 상대방뿐 아니라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말이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당장 반박하지 않는다. 억지로라도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안에 담긴 맥락을 이해해보려 노력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대화는 더 넓어지고, 관계는 더 깊어진다.


『인간관계론』은 내게 말해준다. "인생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관심이 있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 때 세상도 내게 마음을 연다. 관심은 도덕적 선택이기 이전에, 인생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한 전략이다. 그 전략을 통해 나는 조금씩 더 나은 동료, 더 따뜻한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요즘은 그렇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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