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짜 귀찮아."
한동안 아침에 눈을 뜨면 거의 습관처럼 이 말부터 나왔다. 특별히 힘든 일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입에서 먼저 튀어나왔다. 일어나기도 귀찮고, 씻기도 귀찮고, 일을 시작하는 것도 귀찮았다. 그렇게 한마디 내뱉고 나면 신기하게도 모든 것이 조금 더 귀찮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말 한마디 때문에 인생이 망가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힘든 현실은 힘든 현실이고, 피곤하면 피곤한 것이다.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몇 번 말한다고 문제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나를 성장시키는 92가지 언어습관』이라는 바카라을 계기로, 이 말버릇을 조금 의심해보게 됐다. 현실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그 현실을 대하는 태도에는 영향을 주고 있는 것 아닐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결국 내 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는 꽤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누군가 "넌 왜 그것도 못하냐"고 하면 기분이 상하고,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에도 별것 아닌 위로를 받는다.
그런데 정작 하루 동안 내가 나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귀찮다." "죽겠다." "하기 싫다." "왜 나만 이래."
생각해보니 이런 말을 꽤 자주 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들은 것도 아니다. 내가 나에게 하루 종일 들려주고 있던 말이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실험해보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귀찮다" 대신 그냥 "일어나자"라고 말해보는 것부터.
거창한 다짐은 하지 않았다. "오늘은 최고의 하루가 될 거야" 같은 말은 오히려 어색했다. 대신 해야 할 일을 아주 단순하게 입 밖으로 꺼냈다.
"일어나자."
"씻자."
"일단 해보자."
별것 아닌 변화였다. 그런데 적어도 첫 행동을 미루는 시간은 조금 줄어들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현실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다. 긍정적인 말을 반복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이야기를 믿지는 않는다.
일이 힘들면 힘든 것이고, 돈이 부족하면 부족한 것이고,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 역시 따로 풀어야 한다. 아픈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라고 말한다고 병이 낫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힘든 상황에서 "힘들다"고 말하는 것 자체를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힘들다고 인정해야 다음 행동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말이 상태를 설명하는 말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는 말인지였다.
"오늘은 정말 피곤하다"와 "귀찮으니까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다르다. 나는 후자를 꽤 많이 쓰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바꿔야 했던 것은 긍정과 부정이 아니라, 나 자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말버릇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불 하나를 정리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바카라을 읽은 뒤 아침에 한 가지 행동을 더 시작했다. 일어나면 이불을 정리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고, 방이 갑자기 멋져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불을 정리하고 나면 다시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조금 줄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이제 하루를 시작한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다음부터는 말과 행동을 붙여보기 시작했다.
"일어나자." 그리고 일어났다. "정리하자." 그리고 이불을 정리했다. "오늘 할 것부터 하자." 그리고 바카라상 앞에 앉았다.
생각해보면 중요한 것은 말 자체보다 그 뒤에 따라오는 작은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말이 삶을 바꾼 것이 아니라, 말이 행동을 시작하는 신호가 된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건넨 말도 결국 돌아왔다
말버릇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도 조금 달라졌다.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순간에도, 일부러라도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보려고 했다.
처음에는 상대를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말을 하고 나면 내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짜증을 내고 돌아서는 것과 고맙다는 말을 하고 돌아서는 것은, 같은 하루를 보내면서도 마음에 남는 감정이 달랐다.
물론 상대가 항상 좋은 반응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웃는다고 상대도 웃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래도 한 가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 어떤 말을 남기고 돌아설 것인가. 그 선택만큼은 상대가 아니라 온전히 내 몫이었다.
말은 삶을 바꾸는 마법이 아니었다
예전의 나라면 이 경험을 이렇게 결론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긍정적인 말을 하면 인생이 긍정적으로 변한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말보다 현실인 경우가 훨씬 많다. 말버릇 하나 고쳤다고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며, 사람 사이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말은 무시하기 어려웠다. 내가 세상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말 속에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조금씩 들어 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귀찮다"고 말하면 모든 행동에서 귀찮은 이유부터 찾게 된다. "일단 해보자"고 말하면 적어도 시작할 이유 하나는 생긴다. 그 정도의 차이다.
하지만 하루는 거창한 결심보다 그런 작은 차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
이 경험으로 내 인생이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귀찮은 날이 있고, 하기 싫은 일이 있고, 아침에 조금 더 자고 싶은 날도 있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다시 말한다. "아, 귀찮아." 그러면 예전과 조금 다른 말을 하나 덧붙인다. "그래도 일단 하자."
어쩌면 여기서 얻은 것은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방법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내 감정을 억지로 좋은 쪽으로 돌리는 법도 아니다. 그저 내가 나 자신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는 습관이었다.
우리는 하루 동안 수많은 사람의 말을 듣는다. 하지만 어쩌면 가장 오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듣는 목소리는 자기 자신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목소리가 나를 계속 주저앉히고 있지는 않은지, 가끔은 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