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식물
날씨가 쌀쌀해졌다. 찬바람이 피부에 닿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분이 있다. 겨울바람을 막으며 꽃을 피워낸 어르신. 핀 꽃 보다 더 활짝 웃으며 나를 향하던 그 미소가 떠오른다. 무슨 이유가 있더라도 자신의 방법으로 살아가며 오늘을 기뻐하는 모습은 오랜 시간 잔상으로 남아 메아리로 울린다.
신도시 복지관에서 슬롯교육 프로그램으로 플라워 클래스 수업을 하게 되었다. 새로 지은 복지관은 깨끗한 공간에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커피 기계까지 갖춰 카페 같았다. 커피 향이 스미는 강의실에서 꽃을 만지는 일은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모두에게 특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수업을 위해 복지관에 들어서고 나올 때마다 화려한 꽃을 보며 관심을 보이는 어르신들이 마음에 걸렸다.
복지관은 국민임대주택 아파트 단지와 붙어 있어 어르신들의 점심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였다. 담당 복지사에게 어르신들을 위한 원예치료 수업을 제안하였다. 얼마 있지 않아 우울척도 검사를 실시하여 우울감이 높은 어르신과 수업을 시작하였다. 원예치료 수업은 식물로 된 결과물을 가지고 갈 수 있어 좋아하셨다. 추위와 더위, 지루함을 피해 복지관에 자주 오는 어르신들은 수업에 결석 한 사람 이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빈자리에 대신 참여 하기 위해서다. 어르신들의 열성 덕분에 여러 해 수업을 이어갔다.
한겨울인 1월, 수업 끝내고 짐을 옮기고 있는데 쉼터에 어르신들이 앉아계셨다. 낯익은 어머님이 다가왔다. 집에 꼭 같이 가보자고 여러 번 이야기하던 어머니이다. 이유는 수업에서 만든 화분에서 겨울인데 꽃이 피었다고 보여주고 싶다하시며. 강사로서 반가운 소식이지만 남의 집을 가는 것은 삼가야 할 일이다. 하지만 여러 차례 가자고 했고 일주일에 한 번 오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에 무거웠다. 집이 복지관 옆 동 1층이라는 말에 어머님을 따라나섰다.
복지관과 이어진 동이라 몇 걸음 가지 않아 어르신 댁이었다. 집에 들어서니 혼자 사시기에 딱 좋은 공간에 소박한 살림살이가 정갈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어머님은 베란다로 곧바로 잰걸음으로 가서 꽃이 피어있는 화분을 보여 주었다. 1년 전 같이 수업해서 만든 칼랑코에 화분이었다. 해가 제일 잘 드는 곳에 자리 잡았고 찬 바람 못 들어했는데 꽃이 피었다고 하였다. 혹시나 내가 빨리 가버릴까 싶은 마음인지 들뜬 목소리로 바삐 말하셨다. 한겨울 따뜻한 베란다 햇볕에 잘 크고 있는 칼랑코에 화분은 어르신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잘 크고 있었다. 나에게 꼭 보여 주고 싶었을 마음이 별모양 꽃 위에 고스란히 모여있었다. “금손이시네요. 잘 키우셨어요.” 하며 최고의 표현을 찾아 전했다. 어르신 핸드폰으로 식물 사진도 찍어 보여드렸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베란다를 살펴보는데 새시 아래 창이 열린 채 비닐로 바람을 막고 있었다. 아래위로 나눠 닫을 수 있는 베란다 새시의 위는 닫혀있는데 아래는 열려 있는 것이다. 어르신께 왜 창을 열고 비닐을 붙여 놓았냐고 물었더니 거기에 창문이 있냐고 되물으셨다. 언제인가 열린 낯선 창을 닫는다는 생각보다 비닐 여러 겹으로 겨울바람을 막으셨던 것이다. 수업에 오시는 어르신들께 새 아파트에 살아 좋으시겠다 했을 때 이사하면서 같이 따라온 이렇게 큰 바퀴벌레가 돌아다닌다고 주먹을 쥐어 보이셨던 것이 생각났다.
무심히 참고 지낸 어르신과 이런 환경에서도 꽃을 피운 화분이 닮아 있었다. 비록 비닐로 막았지만 베란다는 따뜻했고 해가 잘 들어 꽃눈과 꽃망울이 터졌나 보다. 칼랑코에는 해가 짧아지면 꽃이 피는 단일식물이지만 다육식물이라 추위에 약하다. 15℃~25℃에서 잘 자라고 최소 10℃ 이상 온도에서 햇빛을 잘 받으면 일 년 내내 꽃을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열린 창을 비닐로 막으며 베란다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게 분명하다. 열린 창을 당겨 보았다. 오랜 시간 고정되어 있어 뻑뻑하지만 움직였다. 테이프를 겹겹이 붙여 놓은 비닐은 생각보다 두껍고 단단했다. 놀라시는 어머니께 수고 많으셨다 안아드리고 복지관 선생님과 같이 다시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한 겨울에 핀 꽃이 오랫동안 열려있던 창문을 닫게 하였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우주를 만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새 아파트 베란다에 비닐로 겹겹이 막아놓은 열린 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이 핀 칼랑코에 화분은 어르신 우주의 모습이다. 찬 바람을 막으며 화분에 물 주고 눈 맞추며 온기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과 낮을 지냈을까. 거기에 발맞추어 핀 작은 별 모양 꽃은 얼마나 좋았을까. 새로운 우주의 잔상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작은 일이라도 허투루 하지 말라는 외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