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식물
꽃송이가 하나 활짝 열렸다. 동백나무줄기에. 먼 남쪽 어느 마을이나, 동백섬에 핀 꽃이 아니다. 우리 집 세탁실에서다. 보름 전 수업 소재로 사용하고 남은 동백나무 가지를 물통에 꽂아 놓았는데. 만개한 꽃봉오리를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얼마나 고운가! 더구나 세탁실 그 서늘한 공간, 햇빛이 없는 북향의 그 척박한 곳에서 꽃을 피우다니.
꽃 시장에서 구입한 동백나무 가지를 꽃장식을 위해 오아시스에 꽂으면 꽃망울이 조금 열릴 때쯤 아쉽게 떨어진다. 작품을 두는 실내공간이 대부분 건조하고 온도가 높아 꽃송이가 커지기도 전에 꽃받침이 먼저 상한다. 느리게 피는 꽃을 계속 받쳐줄 만큼 충분한 시간이 허락지 않는다.
절화를 오래 보관하려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식물들은 온도가 적당하지 않아도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면 적응하며 견딘다. 하지만 온도가 변하는 환경은 자극이 되어 에너지를 소모하고 식물이 빠른 속도로 시들게 한다. 이런 생화의 생육조건 때문에 꽃집에서 볼 수 있는 꽃 냉장고는 생화들의 안전한 안식처이다. 1월의 세탁실은 꽃 냉장고 역할을 하였다. 온도가 안정되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있어 자신만의 속도로 호흡을 할 수 있었다. 어렵게 꽃이 핀 동백나무 가지는 탐스럽게 피어올랐다.
아파트 세탁실에서 태어난 동백꽃 사진을 찍었다. 거실로 가져다 놓고 싶었지만 그러면 얼마 못 가 떨어져 버릴 수 있어 그대로 두었다. 식구들을 세탁실에서 꽃구경을 하였다. 집안일을 하며 들어설 때마다 눈길을 잡으며 가장 어두운 공간을 환하게 하고 있었다.
주말이 지나 수업이 시작되었다. 준비물을 챙겨 복지관으로 출발하려다 다시 집으로 갔다. 혼자 있을 동백꽃이 안타까워 물통에 담긴 동백나무 꽃을 챙겨서 나왔다. 2주 전 원예 수업에서 소나무와 동백나무, 백합을 이용해 새해 꽃 장식을 하였다. 어르신들이 만든 꽃바구니에는 소나무 줄기의 힘찬 기운과 백합의 향기에 밀려 동백나무 가지의 꽃봉오리는 시들어 가고 있었다. 같은 날 꽃 시장에서 온 꽃봉오리인데 피지도 못하고 떠나는 것도 있고 무심하게 피어 사람 마음을 두드리기도 한다. 운전 중에 뒷자리에서 앞으로 쏠려 운전석 앞 쪽으로 삐죽이 얼굴을 내미고 있어 친근했다.
화요일은 도서관으로, 수요일은 복지관으로, 목요일은 주간보호 센터로, 수업 가는 곳마다 동백꽃이 함께 하였다. 어르신들은 “에구머니나” 하시며 이미자의 동백꽃노래도 부르셨다. 가까이에서 봐서 좋다고 살며시 쓰다듬어 보기도 하였다.
이동하면서 차가 흔들릴 때마다 떨어져 버리면 어쩌나 노심초사하였다. 물통을 차에서 내릴 때마다 위태롭게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동백꽃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삼일에 걸친 순회공연을 하고 매끄러웠던 꽃잎은 가장자리에 검은 얼룩이 여기저기에 생겼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더 강인했다. 그 후 1주일이 지나도록 세탁실에서 잘 지냈다.
동백나무는 두 번 꽃을 피운다고 한다. 나무에서 한 번, 땅에 떨어져서 한 번. 자기를 키워 준 나무에 시드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동백꽃은 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땅을 붉게 물들이며 떠날 준비를 한다. 동백꽃에 향이 나지 않지만 꽃이 떠나는 모습으로 우리는 동백의 향을 느낀다.
세탁실에서 핀 동백꽃도 어느 때 툭 하고 떨어질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떨어진 동백꽃을 나지막한 물그릇 위에 띄워 놓으려 한다. 동백섬에서 만난 꽃처럼 두 번째 꽃을 피우기 위해. 그날이 오면 크게 박수를 쳐 주리라. 홀로지만 친구들처럼 오십팔 명의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