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작은 내가 세상을 사는 법

by손서영

나는 간이 작다. 평소와 조금 다른 일이 생기면 머리속에서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 줄줄이 일어난다. 누가 큰소리를 내면 겁부터 나고, 뭔가 잘못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런 일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는다. 한마디로 세상살이에 적합한 간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내가 슬롯에서 한 역할을 수행하며 버젓이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나에게 끊임없는 용기와 격려를 아낌없이 보내준다.


아픈 동물이 오면 무섭다. 혹시 내가 놓치는 게 있을까 봐 무섭고, 치료가 잘되지 않을까 봐 무섭고, 수술을 해야 하면 더 무섭다. 운이 나쁘면 아무리 애를 써도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 수의사라는 직업은 겁보인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직업인 것이다.

동물 보호소 일만 해도 그렇다. 나는 간이 작아서 리더의 기질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대학 때부터 유기동물, 실험동물 등 동물 문제에만 직면하면 매번 총대를 매고 선봉에 선다. 지금도 보호소 일에 관련 되서는 사람을 만나고 문제를 제시하고 답변을 요구하는 행동들을 벌벌 떨면서 해내고 있다.


보호소에 봉사는 매번 가기 싫지만 같이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용기내서 다녀온다. 나에겐 보물같은 사람들이다.



무서운데도 진료실로 들어가고, 겁이 나면서도 수술을 집도하고, 한없이 무른 속으로 힘내서 동물의 권리를 주장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처음에는 동물만 없었어도... 좀 더 편안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상상을 많이 했었다. 동물때문에 못 본 척 지나칠 수 있는 일들을 자꾸 들이받아야 하는 삶이 힘들었다.


소쩍새가 병원에 왔다. 아직 너무 어려서 날지 못하는 소쩍새의 등장에 병원 전체가 술렁였지만 다행히 야생동물구조팀에 잘 전달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니었다. “나는 진짜 간이 작아서 세상살이가 다 무서운 사람인데, 그나마 동물 일이니까 용기 내서 하는 거야. 동물 아니었음 세상에서 제 구실하기 힘들었을 지도 몰라.” 내가 지인에게 한 말이다. “동물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오면 너는 그 작은 간을 들고 또 나가는거지.” 지인의 말이 우스워서 한참을 웃었다.

동물이 없었다면 덜 무서웠을 지는 모른다. 하지만 덜 무서운 대신 나는 훨씬 많은 일에서 울러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동물은 자꾸 힘든 일을 만들어내는 존재인 동시에, 겁 많은 나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존재였던 셈이다.


병원 주차장이 부족해서 병원 앞쪽 둔턱을 무너뜨리고 확장하려 했지만 애들 비밀 통로가 있는 관계로 무산됐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용감해진 적이 별로 없다. 여전히 무섭고, 여전히 걱정하고, 일이 생기면 가능하면 이불 속으로 도망가고 싶다. 그때 동물을 본다. 아픈 동물은 내가 치료해줘야 하고, 학대 받는 동물은 내가 도와줘야 한다. 그러면 또 떨면서 작은 간을 들고 나가는 것이다.


용감한 사람은 무섭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나는 평생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겁이 없어져야만 앞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간이 작으면 작은 대로 들고 가면 된다.


오늘도 평화로운 우리 집. 나의 작은 간이 모아온 내 보석들이다.


내일도 무서운 일이 생기면, 나는 아마 또 심장이 뛰고, 가능하다면 누가 대신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정말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결국 작은 간을 챙겨들고 나갈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대체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니 앞으로도 아마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간은 여전히 작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