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순간이 완벽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삶의 많은 부분이 완벽하다고 느끼며 살아온 지도 벌써 5년 정도가 되어간다. 내 나이 마흔다섯이니, 40년 가까이 이 길 저 길을 헤매온 셈이다. 시골에 온 지도 10년이 되었으니, 이곳에서 나만의 기반을 만드는 데에도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남들 기준에는 못 미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지금의 삶을 만드는 데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온 지금,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내 삶의 많은 순간들이 완벽하다고.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도, 아침 산바카라도,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도, 퇴근 후의 저녁도, 다시 잠드는 순간도 나는 아이들이 있어서 완벽하다. 아이들은 나를 사랑한다. 그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 내 삶을 완벽하게 만들어 준다.
주변에서 자꾸 누군가를 소개해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내 삶에 누군가를 들여놓는 것이 두렵다. 동물들의 사랑에 비해 인간의 사랑은 너무나 불안정하고 변덕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 그저 변하지 않는 아이들의 사랑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내 마음은 정상적인 걸까?
그렇다면 정상적인 삶이란 남들처런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나는 이제 그렇게 살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조차 망설여진다. 애초에 상대를 내 삶에 들여놓을 생각이 없는데 만남을 시작하는 것은 상대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누군가를 삶에 포함시킬지 말지는 내가 미리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운명의 상대가 나타난다면 어떤 결심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고. 그 말도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단 만나 보고 생각하지’라고 가볍게 넘기기에는 내가 가진 삶의 조건이 너무 특수하다. 누군가 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은 단순히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의 삶을 사랑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두고 싶지는 않다. 만약 누군가가 내 삶에 들어올 자리가 있다면, 그것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충분한 삶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니 일반적인 조건으로 맞춘 만남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혼자 살아도 괜찮고, 누군가를 만나도 괜찮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아이들과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겐 지금의 이 삶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