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 왕이불
트럭 짐칸에서 소똥 냄새가 났다. 아니, 이건 필시 소똥과 돼지 똥이 3대 7 비율로 황금 밸런스를 이룬, 내 고귀한 후각을 파괴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생화학 무기가 분명했다.
구불구불한 낭성면 산길을 오를 때마다 177센티미터에 50킬로그램도 안 되는 내 얄팍한 육신은, 트럭 바닥에 뒹구는 농약통과 함께 이리저리 패대기 쳐졌다. 엉덩이뼈가 트럭 철판에 부딪힐 때마다 그 진동이 척추를 타고 골까지 흔들렸지만, 나는 끝까지 백화점 VIP 라운지에서나 지을 법한 우아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전남도지사의 늦둥이 외아들이자, 목포대학 교수의 뼈아픈 수치. 전남 최대의 건어물 회사 CEO의 귀하디 귀한 손자. 그게 바로 나, 연지형이다.
물론 직업은 없다. 서울의 유명한 사립고 졸업 후, 홍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공학도도 아니고 예술가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의 나. 전라도 사투리도 흐려지고 스스로도 정체성이 모호한 상태라 그냥 돈 많은 백수로 살고 있다. 할아버지가 200억 매출 기업의 대표이고, 아버지가 도지사인데 내가 왜 굳이 남의 밑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돈을 벌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집안의 권력과 재력을 물려받아 그저 우아하게 숨만 쉬며 공기 청정기처럼 살아가는 것이 나의 원대한 장래 희망이었다.
하지만 나의 훌륭한 부모님은 내 숭고한 백수 라이프를 '구제 불능의 호로자식'으로 규정했다. 특히 목포대학에서 지성인들을 가르치시는 어머니는 내 캐리어에서 이탈리아제 맞춤 정장과 한정판 스니커즈를 몽땅 빼앗아 버리셨다. 사람 하나 만들어 보겠다며 연고도
없는 충청도의 깡촌, 이 눅눅한 ‘산그늘 마을’로 나를 강제로 유배 보낸 것이다.
어머니는 내게 단 한마디의 따뜻한 작별 인사도 없이, 그저 파리에서 공수해 온 내 소중한 기초 화장품 세트가 든 파우치 하나만 던져주고는 시골 길가에서 매몰차게 차 문을 닫아버리셨다.
"어이! 짐칸에 아직 살아 있냐! 앉아있으라니까 왜 자꾸 서있어!"
운전석 창문을 통해 트럭 주인의 걸걸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아버지가 도대체 어디서 섭외했는지 모를 이 무식한 시골 노인은, 엄마가 내려준 어딘지 모를 시골길에서부터 충청북도 보은과 청주의 경계인 낭성까지 오는 내내 내게 반말을 찍찍 해대고 있었다.
"일부러 서 있는 게 아니라, 트럭 서스펜션이 쓰레기라 제가 강제로 공중부양을 하고 있는 거거든요? 이 차, 척추 상해보험은 제대로 들어놨습니까? 제 뼈에 금이라도 가면 아저씨는 평생 전라남도 땅엔 발도 못 붙이게 해 드릴 건데요."
나는 먼지투성이가 된 프랑스산 명품 추리닝 바지를 툭툭 털며 대꾸했다. 하지만 트럭 주인은 콧방귀도 뀌지 않고 브레이크를 거칠게 밟았다.
"우와악!"
급정거와 함께 짐칸 문이 덜컥 열렸고, 산그늘 마을의 매서운 똥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내 멱살을 잡아챘다.
정확히는 48.5킬로그램의 가성비 최악인 내 몸뚱이는 저항 한 번 못하고 허공을 가르며 트럭 밖으로 날아갔다. 이름 그대로, 한 마리의 종이 연이 되어 비상하는
순간이었다.
쿵, 퍼억!
내가 내동댕이쳐진 곳은 하필 마을 노인들이 모인 평상 앞 흙바닥이었다. 엉덩이부터 떨어지는 바람에 꼬리뼈가 산산조각이 나는 줄 알았으나 생각보다 푹신했다.
코앞에 흙 묻은 고무신 세 켤레가 나란히 보였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들과 낫을 든 험악한 인상의 중년 사내가 마치 외계인을 보듯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이 이장 저 , 저 뼈다귀는 뭐여? 하늘에서 떨어졌나?"
"어디서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가 날아왔구먼. 쯧쯧."
보통의 예의 바른 청년이라면 얼른 일어나 90도로 인사를 했겠지만, 나는 연지형이다. 나는 엉덩이를 깐 채로 흙바닥에 주저앉아 턱을 치켜들었다.
"어르신들, 남의 불행을 보고 그렇게 함부로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 뭐 이따위 동네가 다 있어요? 땅바닥에 흙이 너무 많잖아요. 우리 아빠가 전남도지산데, 내가 당장 여기 도지사한테 민원 넣어서 마을 바닥 싹 다 대리석으로 깔아버리라고 할 겁니다."
노인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누군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의 담뱃재가 내 어깨 위로 툭 떨어졌다. 개념이라고는 태어날 때부터 탑재하지 않은 스물여덟 살 금수저의 등장에, 평화롭던 충청도 산골 마을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 정적을 깬 것은 낫을 들고 서 있던 중년 사내, 곽두팔 이장이었다.
"야, 이 싸가지 없는 종잇장아! 시골에 흙이 많지! 확! 그라고 계속 누워 있으면 내가 삽으로 퍼버릴겨. 당장 안 일어나냐? 내 밭에 뿌릴 거름 위에 자빠져 있으면 어떡해!"
그의 호통에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바람 한 점에도 휘청이는 몸이었지만, 내 눈은 매의 눈처럼 날카롭게 마을 어르신이 이장이라 부른 중년 남성의 얼굴을 향했다. 정확히는, 논둑의 가뭄보다 더 심각하게 쩍쩍 갈라진 그의 입술이었다.
"이장님, 잠깐만요. 입 열지 마세요."
나는 주머니에서 번쩍이는 은색 케이스의 최고급 명품 립밤을 꺼냈다. 백화점 1층에서 곽두팔 이장의 담배 한 보루 값보다 비싸게 주고 산, 나의 생명수와도 같은 물건이다.
"뭐? 이게 뭐여? 딱풀이여?"
"말하지 마시라니까요. 각질 날려요. 이장님 지금 입술 상태가 거의 가뭄 재난 구역 수준이거든요. 제 고귀한 시신경이 오염되고 있으니까 일단 응급처치부터 하죠. 자, 해보세요. 우- "
'우'
나는 지저분한 흙이 묻은 이장님의 멱살을 가냘픈 두 손가락으로 살짝 거머쥐고, 다짜고짜 그의 입술에 립밤을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읍! 읍으읍! 이 미친놈이 지금 뭐 하는 거여!"
"가만히 좀 있으래도요! 이거 알프스 청정 지역 빙하수로 만든 거예요. 이장님 평생 연봉으로도 이 향기 못 사니까 조용히 음미나 하세요. 자, 아랫입술도 듬뿍."
이장님의 거친 입술 위로 미끄덩하고 번들거리는 핑크빛 광택이 덮였다. 평상에 앉아 있던 노인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평생 소주와 흙먼지만 묻히고 살던 이장의 입술이, 논 둔덕에 앉은 청개구리의 등짝보다 더 촉촉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하, 이제 좀 살겠네. 자, 다음은 손."
나는 이번에는 가방에서 스위스산 고농축 핸드크림을 짜냈다. 그리고는 거름을 만져 시커먼 이장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건 또 뭐여! 냄새가 왜 이래!"
"시어버터 25퍼센트 함유된 핸드크림이에요. 이장님 손등이 지금 멧돼지 가죽 같아서 도저히 그냥 못 보겠거든요. 전남도지사 아들이 직접 서비스해 드리는 거니까 영광으로 아세요."
나는 투박한 손마디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마사지했다. 소똥 냄새와 흙내음이 진동하던 평상 주변으로 갑자기 우아한 장미 정원에서 풍길 듯한 향기가 퍼져 나갔다. 이장님은 내려뒀던 낫을 다시 손에 든 채로 멍하니 자신의 번들거리는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이장님, 농사짓는다고 손을 이렇게 방치하는 건 미학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에요. 앞으로 제가 보일 때마다 보습 상태 검사할 거니까 립밤 잘 바르고 계세요. 아시겠어요?"
나는 립밤 뚜껑을 '딱' 소리 나게 닫으며 생긋 웃었다. 이장님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지만, 입술만큼은 지독하게 촉촉하고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 저... 뼈다귀 같은 새끼가...!"
이장님이 뒤늦게 욕을 내뱉으려 했지만, 매끄럽게 코팅된 입술 덕분에 발음이 자꾸 헛돌았다. 나는 그 틈을 타 가벼운 몸놀림으로 바람을 타고 사뿐히 뒤로 물러났다.
안하무인 금수저에 바람 불면 연처럼 날아가는 종이 인형. 이 말도 안 되는 부조화의 결정체, 엉덩이엔 거름이 가득 묻어 걸음마다 구린내를 풍기는 연지형의 산그늘 마을 점령기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