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애틋하게

소박한 초능력

bymaggie chae

마음도 조금은 눈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아팠으면 다음에는 알아서 조심할 법도 한데, 좋은 것을 만나면 여전히 먼저 움직인다. 아름다운 장면 앞에서는 함께 보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고, 다정한 말 한마디에 오래 닫아둔 곳을 슬쩍 열어준다. 나는 뒤늦게 따라가며 걱정한다. 또 이래도 괜찮을까.


상처를 겪고 나면 마음을 아끼는 법부터 배우게 된다. 너무 기대하지 않기. 먼저 다가가지 않기. 오래갈 것처럼 좋아하지 않기. 조심해야 할 것이 늘어날수록 어른이 되어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아낀 마음을 어디에 쓰려고 했을까.


아무도 떠나지 않고, 어떤 기대도 어긋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기다렸던 걸까. 그날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을 거라고.


끝이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좋아했던 마음까지 잘못이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조금 덜 진심이었다면 덜 아팠을 거라는 계산도 했다. 이미 지나간 시간 앞에서는 누구나 제법 현명해진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는 자꾸 계산에서 빠뜨리면서.


나는 그 기쁨까지 지우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하루가 조금 달라졌던 일. 무언가를 좋아해서 평소보다 멀리 걸었던 일. 마음을 쓴 만큼 내 삶에도 생겨났던 작은 자리들. 사라진 뒤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잃을 것이 있었다는 건, 한때 내게 소중한 것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상처받은 뒤의 애틋함에는 조금의 배짱이 필요하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채로 좋아한다고 말하는 배짱. 내 하루가 엉망인 날에도 누군가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배짱. 지난 상처가 앞으로 만나게 될 모든 것의 첫인상을 대신 쓰도록 두지 않는 마음.

.. ‘함부로’라는 말을 애틋함 곁에 놓고 싶은 이유다.


늘 조심하라는 말을 듣던 마음에, 이번에는 조금 다른 허락을 주고 싶다. 좋아하는 것을 들키고, 반가우면 반가운 만큼 웃고, 보고 싶은 마음을 굳이 무심한 문장으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고.


절망을 겪고도 다정함이 남아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지쳤던 마음에 아직 누군가를 걱정할 자리가 있고, 내일을 조금 기대하는 구석이 있다는 것.


내게 소박한 초능력이 있다면 그런 것이면 좋겠다.
아팠던 일을 없던 일로 만들지는 못해도, 그 마음으로 다시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는 힘.


이제 마음이 먼저 움직이면 끝이 어떨지부터 묻지는 않으려 한다. 아직 오지도 않은 슬픔 때문에, 지금 좋은 것까지 조금만 좋아하고 싶지는 않다.


좋은 것은 좋다고,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보고 싶다고. 나중에 후회할까 봐 삼켜둔 말들을 조금은 꺼내며 살고 싶다. 아껴둔다고 마음이 다 무사했던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 다시 한번, 함부로 애틋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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