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종필이 딸이잖아

내 이름보다 아빠 이름이 먼저 도착하던 마을

by마엘

경로당 앞을 지나다 보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중 처음 보는 어른이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이, 종필이 딸이잖아?”

“네.”

나는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빠 이름은 안종필.

그래서 나는 종필이 딸이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그게 이상한 호칭도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도 누구네 아들, 누구네 딸로 불렸다. 이름을 모르면 부모 이름을 불렀고, 부모 이름도 모르면 사는 집을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누구인지 대충 통했다. 그래도 어릴 때는 조금 정 없다고 생각했다.

내 이름도 있는데, 왜 내 이름은 기억하지 못할까.

나는 다희인데. 어른들은 나를 알아보면서도 정작 내 이름은 잘 몰랐다. 더 이상한 건 이름은 몰라도 내가 한 일은 전부 알았다는 것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잘못한 일도 온 마을에 금세 퍼졌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무서워했던 아랫집 할아버지에게는 유난히 빨리 들어갔다.

“너희, 이리 와봐.”

할아버지가 부르면 심장이 먼저 내려앉았다. 정확히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많았을 것이다. 잘못은 대부분 잊어버렸는데, 어른들이 하던 말은 아직 남아 있다.

“할머니한테 잘해야지.”

“그렇게 하면 안 돼.”

나는 그냥 “네” 했다. 나도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그 말을 해주는 사람은 많았지만, 내가 왜 그랬는지 묻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내가 속상했는지, 억울했는지, 무슨 마음으로 그런 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무언가를 설명하기도 전에 꾸중이 먼저 왔다. 그럴 때면 온 마을 앞에 벌거벗겨진 것 같았다. 내가 어디에 갔는지,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까지 사람들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숨길 곳이 없었다. 부담스럽기도 했고, 거추장스럽기도 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다쳤을 때도 소식은 똑같이 빨랐다.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교통사고가 났을 때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병원으로 찾아왔다. 한꺼번에 몰려올 때도 있었고, 늦게 소식을 들은 사람은 한 명씩 다녀갔다. 직접 오지 못하면 안부 전화라도 했다.

“아이고, 괜찮냐.”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내게 건넸다. 봉투 같은 건 없었다. 지폐를 그대로 내 손에 쥐여주었다.

“뭐 사 먹어.”

나는 감사히 받았다. 그리고 빨리 나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혼낼 때도 가장 빨랐고, 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는 것도 가장 빨랐던 사람들.

그 관심이 늘 고마웠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부담스러웠고, 어떤 날에는 지긋지긋했다. 그렇다고 싫었다고만 말할 수도 없다. 그 관심 때문에 내가 혼자가 아니었던 날도 분명히 있었으니까.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내 안부는 기억했다. 나를 조금도 숨겨주지 않던 사람들이 내가 보이지 않으면 가장 먼저 찾았다. 지금 누군가 나를 다시 ‘종필이 딸’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아마 돌아볼 것이다.

“네, 맞아요.”

어릴 때는 조금 정 없게 들렸던 그 말이, 지금은 이상하게 정겹다. 가끔 집에 가면, 그렇게 불러주시는 어르신분들이 여전히 계시다.

“종필이 딸. 맞지?”라고..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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