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살 이모가 나를 여든 살 같다고 했다.
최근 『구름의 아이』를 쓰면서 시골 생활을 다룬 영상을 많이 찾아보았다. 오래된 집을 고치고, 텃밭에서 채소를 따고, 장작을 패고, 계절에 맞춰 음식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 귀농과 귀촌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시골의 풍경은 고요했고, 부지런했으며, 때로는 낭만적이었다. 그것도 분명 누군가가 선택하고 살아가는 오늘의 삶이다. 그런데 영상을 보면 볼수록 자꾸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시골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들깨 도리깨질을 해봤다.
마당에 파란 방수포를 깔고,
그 위에 마른 들깨를 펼쳐놓은 뒤 도리깨로 내리쳤다.
논두렁에서는 메뚜기와 방아깨비, 여치를 잡았다.
비닐봉지에 담아 온 메뚜기는 할머니가 튀겨주었다.
바삭하고 고소했다.
봄이면 장화를 신고 할머니를 따라 기둥골로 고사리를 따러 갔다.
산딸기와 머루, 다래를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닭이 늘 있던 자리에 알을 낳지 않으면
지푸라기를 하나씩 들춰가며 달걀을 찾았다.
그때는 누구나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적어도 시골에 사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일을 겪는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예순 살인 이모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모는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더니 웃으며 말했다.
“너랑 이야기하면
여든 살 할머니랑 이야기하는 것 같아.”
나도 따라 웃었지만,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나는 1995년에 태어났다.
나는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고령 박 씨 집성촌에서 자랐다.
그리고 백암에 있는 순흥 안 씨 선영을 명절마다 찾았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데,
내가 겪은 일들은 벌써 지금의 시골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풍경이 되어 있었다.
장소가 시골이라고 해서 삶까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휴대전화로 장을 보고, 자동차로 이동하고, 아이들은 정해진 공간에서 정해진 놀이를 한다.
몸이 향한 곳은 시골이어도 삶의 방식은 현대 슬롯와 이어져 있다.
낡은 집이나 논밭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집 대문은 걸어 잠그는 물건이 아니었다.
누군가 문을 열며 “누구 있냐?”라고 물으면 할머니는 어디에서든 “있지요—” 하고 대답했다.
할머니가 일을 나가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나는 다른 집에서 밥을 먹었다.
그 집에서 잠이 들면 할머니가 나를 데리러 왔다.
“가자. 집 가자.”
내가 무엇을 잘못하면 하루 만에 온 마을이 알았다.
다음 날 밖에 나가면 마주치는 어른마다 한 마디씩 했다.
정말 쪽팔렸다. 하지만 내가 다치거나 병원에 입원하면 그 사람들이 가장 먼저 달려왔다.
내가 고등학교에 간다는 소식을 들은 어른은 내 손에 돈을 쥐여주었다.
“이걸로 교복 사.”
집성촌에서는 비밀도 빨리 퍼졌지만 걱정도 빨리 도착했다.
할머니가 새벽부터 하루를 지켰고, 누군가는 밥 한 숟갈을 더 놓았다. 누군가는 잠든 아이에게 이불을 덮었고, 누군가는 병원으로 찾아왔다. 누군가는 용돈을 주었고, 누군가는 자기 아이처럼 나를 혼냈다.
마을이 부모님의 빈자리를 온전히 대신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빈자리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니까.
다만 그 빈자리가 나를 전부 삼키지 않도록 여러 사람이 조금씩 내 곁을 지켜주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마을을 떠나 정말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정이 없다고 느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삶을 바라왔으면서,
막상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에 서자 마음 한쪽이 허전했다.
어쩌면 내가 그리워한 것은 시골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주고받았던 정이 고팠는지도 모른다.
요즘 마을에 갈 때마다 어르신들이 한 분씩 보이지 않는다.
늘 같은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사람의 온기가 빠져나간 집은 조용히 문을 닫는다.
나를 “종필이 딸”이라고 불러주는 목소리도 점점 줄어든다.
그때는 특별한 줄 몰랐던 일들이 지금은 조금 특별한 경험이 되어버렸다. 다시 만나기 어려운 풍경이 되었다는 사실이 가끔 가슴 아프다.
그 시절은 작품을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보고 듣고 살아낸 기억들은 내 안에 남았다.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이 되었고, 이야기를 바라보는 눈이 되었다.
그 기억이 있었기에 『구름의 아이』를 쓸 수 있었고,
지금의 글에도 조금 더 많은 빛과 냄새와 목소리를 담을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그 시절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린 내가 보고 듣고 겪은 만큼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그 기억만이라도 꺼내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의 정과 이야기,
때마다 오가던 음식과 마음을.
귀농도 귀촌도 아니었던 삶.
지금은 조금 특별해져 버린,
'95년생 종필이 딸의 시골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