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by마엘
얼마 전부터 원고가 갑자기 멈췄다. 거의 나가지 않는 것에 가까웠다. 왜 그럴까? 써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세계관, 설정, 자료조사 ‘오컬트’라는 새로운 장르에 진입 문제라고 난 생각했다. 익숙하지 않은 장르였고, 생각보다 공부할 것도 많았다. 그래서 설정을 계속 고쳤고, 세계관을 다시 읽었고, 사료와 메모들을 정리했다. 계속해서 쓰려고 했지만, 쓸 수 없었다. 단 한 줄도 나아갈 수 없었다.

거의 마지막 장을 남겨두고..
무당을 만나야 하는가? 아니면, 내가 정말 몰라서 안 나오는 걸까?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오늘 약 4만 자에 가까운 원고를 써 내려간 후에 난 알게 되었다.
장르의 문제도, 세계관 설정에 문제도 아니었다는 걸.

늘 이제는 잘 보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났고, 계절이 지났고, 이제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흔들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미 보냈는데, 왜 아직도 이럴까?

왜 어떤 문장 앞에서 멈추고, 왜 어떤 계절이 오면 다시 생각나고, 왜 다 지나간 일 같은데도 가끔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질까? 나는 그걸 보내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구름의 아이』를 쓰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이야기가 되기 전, 시간은 늘 비슷하다. 차 안에 앉아 있거나, 작업실 바카라상 앞에 있거나, 사람들로 가득 찬 카페 한쪽에 앉아 있거나, 장소는 달라져도 늘 공기는 비슷하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를 혼자 붙들고 있는 시간,
어디로 가야 할지 알 것 같다가도, 다시 길을 잃는 시간.

그래서 이야기가 되기 전의 시간은 늘 조금 외롭다.

오늘 마지막 장을 쓰다 말고, 한참 화면을 바라봤다. 순간 화면의 글씨들이 커지고 작아지길 반복했다. 눈을 몇번 깜빡 거렸다. 눈 속에 더 커다란 눈을 숨기려고.. 그리고 난 보냈다. 그 시간과 그때 그 이야기들을 그렇게 4만 자의 보내짐이 완성되었다. 오늘 원고를 마치며, 잘 보낸다는 것은 잊는 것도 기억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다.


잘 기억하는 것은,

필요할 때 꺼내볼 수 있는 것.
그리고 꺼내보아도 예전처럼 아프지 않은 것

마치 오래된 사진 한 장처럼, 한때는 바라보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어느 날에는 조용히 웃으며 넘길 때, 잘 보낸다는 것은 그런 일인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나는 류가 운을 보내지 못해서 멈춘 게 아니라,
내가 아직 보내지 못한 무언가가 있어서 멈춘 것이라는 걸.

그리고 오늘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보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보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