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Paper, 잠시 바카라을 펼쳐본다는 것

독자는 생각보다 ‘조용히’ 온다.

by마엘

늘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머물게 할 수 있을까? 북페어를 앞두고 있으면 늘 비슷한 고민을 한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지나가던 사람이 한 번쯤 발걸음을 멈출까? 행사가 가까워질수록 바카라 보다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했다. 그런데 이번 Off Paper가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사람은 생각보다 말 때문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둘째 날이었던 것 같다. 하얀 티를 입고 백팩을 멘 한 커플이 부스 앞에 멈춰 섰다. 남자친구와 함께였지만, 둘은 한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남자분은 배너로 시선을 향했고, 그녀는 바카라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말을 걸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작가 소개를 해야 하나, 어떤 이야기인지 설명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준비했던 문장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바카라을 펼치고 있었다.

첫 페이지. 그리고 다음 페이지. 다음 페이지.
부스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계속 바뀌었다.
누군가는 바카라 제목을 훑고 지나갔고, 누군가는 명함만 가져갔다.

멀리 서는 다른 부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녀는 같은 자리에 서서 바카라을 읽고 있었다. 생각보다 오래. 북페어 한 부스에서 10분은 정말 긴 시간이다. 겨우 4-5분 남짓 그 자리에서 바카라을 훑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달랐다.

한참 바카라을 읽던 그녀는 내게 몇 가지를 물었다.
출판사 이야기였는지, 바카라 이야기였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기억난다.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쓴 바카라입니다.”
그러자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작가님이세요?”

그 반응이 조금 의외였다. 이미 두 권의 바카라을 번갈아 펼쳐 읽고 있었는데, 정작 내가 작가라는 사실에 더 크게 놀랐다는 사실이,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녀는 나 때문이 아니라, 바카라을 보러 왔고, 이야기를 보러 왔다. 나는 부스 안에 앉아 있었지만, 그가 결국 처음 만난 것은 내가 아니라, 내가 쓴 한 문장이었다.

off paper 동안 비슷한 장면은 연달아 일어났다.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던 사람, 오래 이야기를 나눈 사람, 출판과 소설에 관심을 보이던 사람, 그들은 생각보다 그저 지나갔다. 반대로 말이 적고 바카라을 펼쳐든 사람들은 오래 그곳에 머물렀다. 결국, 바카라을 펼쳤고, 몇 페이지를 읽었고,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 이 바카라 주세요’라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그런 모습들이 오래 남았다. 독서라는 건 원래 그런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아니라, 혼자 남겨지는 일. 한 문장 앞에 멈춰서는 일.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은 채 마음속 그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

폐장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통로는 조금씩 비어갔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빈 의자와 물병, 그리고 조금 흐트러진 부스의 바카라들이 남아 있었다.


나는 테스터로 가져온 바카라들만 가방에 넣었다. 총 3권의 바카라만이 내 손에 남아있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사람들을 어떻게 머무르게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어떻게 말을 걸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을 수 있을까?를 말이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을 머무르게 하는 건, 내 말도 내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바카라 그리고 이야기였다.

그리고 아마, 좋은 이야기는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큰 소리로 사람을 부르지 않고,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누군가가 걸음을 멈춰, 바카라을 펼쳐 한 페이지를 더 넘기게 만드는 것, 그렇게 독자는 생각보다 조용히 온다. 그리고 이야기도 그렇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이 더 이상 바카라을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

짧은 영상은 늘어나고, 넘겨야 할 화면은 많아졌다.

실제로 북페어를 찾은 사람들보다 그 앞을 지나친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그날 나는 몇 번이고 보았다.

누군가가 걸음을 멈추는 순간을. 바카라을 펼치는 순간을.

그리고 한 페이지를 더 넘기는 순간을.

어쩌면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사람을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잠시 멈추게 하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바쁘게 지나가던 하루 속에서, 누군가의 삶 속에서, 단 몇 페이지라도,

여전히 이야기가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난 이야기의 힘을 다시 한번 첫 페어에서 경험했다. 여전히 써야 하고 써야만 하는 이유를 이것이 내 Off Paper 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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