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코반
초등학생 그룹 과외를 하러 가던 진남이네 집. 과외 사이 쉬는 시간에 우리들은 중학생인 진규 형 방으로 모였다. 컴퓨터로 게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의 풍경은 조금 이상했다. 틀림없이 게임이 켜져 있기는 했지만, 아무도 키보드를 건드리지 않았다. 다들 연습장과 펜을 들고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그때 화면에 떠 있던 게임은 소코반이었다.
소코반은 창고지기가 박스를 정리하는 게임이다. 정해진 위치로 밀기 이해서는 머리를 써야 했다. 초반은 다 같이 화면을 노려보다가 누군가 방법을 찾으면 외쳤고, 진규형이 그대로 움직여서 스테이지를 클리어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풀이 방법이 어려워졌다. 결국 우리는 그 자리에서 푸는 것을 포기했다. 화면을 그대로 그려간 뒤, 과외가 끝나고 집에 가서 연구해 오기로 한 것이다. 과외 수업에서 주는 숙제도, 학교 숙제도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소코반이 무엇보다 중요한 숙제였다.
처음에는 집에서만 고민하던 문제가 갈수록 머리를 침범했다. 과외 시간에도 구석에서 소코반 문제를 풀었고,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풀지 못한 문제가 아른 거린 탓에 다시 불을 켜기도 했다. 소코반 중독은 점점 심해졌고 등하교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문제를 풀었다. 이 단순한 게임이 왜 이리 재미있는 것인지. 문제를 만든 사람은 천재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한 번은 진남이네 어머니가 컴퓨터 방에 들어오셨다. 쉬는 시간에는 게임을 하느라 시끄러워야 하는데, 다 같이 방에 들어가서 조용하니 이상하셨나 보다. 우리 모두가 연습장에 펜을 들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가셨다. 공부하는 것으로 오해하셨던 걸까? 그날 과외 시간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과일과 간식이 올라왔다. 어른들은 조용히 하는 게임은 게임인지 모르는 걸까?
그룹 과외 멤버들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어머니 친구 아들이라서 이전부터 보던 진남이만 그나마 가까운 사이였다. 하지만 소코반 문제를 풀고 서로 상의하면서 우리는 점점 친해져 가게 되었다. 함께 머리를 쓰고 고민하면서, 그리고 각자의 풀이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세계가 멸망하는 것도 아니고, 가녀린 공주가 납치되어 가서 구출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창고를 정리하기 위해서 우리는 힘을 합쳤던 것이다.
요즘도 종종 소코반의 원형을 활용한 게임을 마주한다. 과거에는 그렇게 열심히 문제를 풀었지만, 그때의 재미가 현세대에는 와닿지 못한다. 수업 중에 ‘퍼즐 게임의 레벨 디자인’을 이야기하면서 언급했다. 요즘은 최대한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어렵게 하면 바로 그만둘 수 있다고. 본인이 직접 풀어낼 수 있게 잘 유도해줘야 한다고. 조금만 어려워도 너무나 쉽게 공략과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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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즈의 30가지 메모리 -1988
소코반. PC. 스펙트럼 홀로바이트.
1982년에 첫 작품이 나온 이후 다양한 기종으로 이식이 되다가 1988년에 이르러서야 IBM PC 버전이 등장했습니다. 소코반이라는 제목은 ‘창고지기’라는 뜻의 일본어로 상자를 미는 형식의 퍼즐 게임입니다. 다양한 게임의 원형이 되기도 했고 수많은 작품 속에 미니 게임으로 등장하기도 하지요. 게임을 전혀 안 하는 분들이라고 해도 규칙을 들으면 연상되는 콘텐츠가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