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난민이 온라인카지노에 와서 난동을 부리는 중입니다

온라인카지노 버전 제목: 방황 끝에 비로소 마주하는 나의 날것들

by마봉

한국 블로그 서비스의 조상님, 이글루스(Egloos)

다른 글에서도 얘기한 적 있지만 나는 한국 블로그의 조상님 격인 이글루스에서 오랫동안 서식했다. 이글루스가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2003년에 가입해서 2023년에 백업 다운로드까지 받고 집을 철거했으니 거의 이글루스 20년 역사와 함께 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실 나도 중반쯤인 2013년 무렵부터 글을 거의 올리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때 이미 이글루스는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글루스의 역사는 이렇다.


2003.06.23 이글루스 정식 오픈

2006 SK 커뮤니케이션즈 인수

2013 줌인터넷으로 운영 주체 변경

2023.03.13 종료 발표

2023.06.16 서비스 종료

2023.12.18 백업 종료


이글루스 전성기 때에는 IT, 역사, 밀리터리, 애니, SF, 철도 등 덕후들이 많은 플랫폼답게 재미있는 글이 엄청 많았다. 댓글 토론도 엄청 활발했다. 그리고 모든 레이아웃이 풀옵션인 블로그와 달리 이글루스는 html 좀 알면 글 접기/펴기라든가 화면에 눈 내리게 하기, 음악 플레이어 달기 등등 잔잔바리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해서 재미도 쏠쏠했다. 약간 개인 홈페이지와 블로그의 중간쯤 되었던 것 같다.


라떼는 말이야... 이글루스가 진짜 잘 나갔어...

아무튼 내가 이놈의 입만 열면 라떼를 마시는 습관이 또 나왔는데...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정말 안 망할 것 같이 와글와글하던 커뮤니티나 플랫폼에 어느 순간 쇠락의 기운이 조금씩 보이더니 나중에는 망해가는 상점가의 모양새를 띠며 점점 죽어가는 것을 내가 몇 년에 걸쳐 보아 왔기 때문이다.


일단 2010년 전후로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와 발맞춰 SNS(페이스북, 트위터, 그리고 조금 더 나중엔 인스타그램)가 급성장했다. 스마트폰과 SNS의 확산으로 사람들은 긴 글에서 점점 SNS로 이동했다. 이 무렵 이글루스는 주인이 SK에서 줌인터넷(알툴즈나 곰플레이어 같은 거 설치하면 나도 모르게 ZUM을 인터넷 기본 검색엔진으로 설정하고 툴바까지 야무지게 깔아놔서 지우느라 개짜증나게 하던 바로 그 줌)으로 바뀌었는데, 그들도 나름 이글루스를 살려 보려고 노력했겠지만 딱 이때 가장 중요한 것, "모바일 환경 구현"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올라오는 글들이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업뎃 없는 이글루가 점점 늘어났다. 나는 그래도 2013 무렵까지는 출장이나 여행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을 올리며 나름 끝까지 붙어 있어보려 했지만, 결국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계정을 파면서 내 집도 거미줄이 쳐지기 시작했다. 가끔 생각나서 돌아가본 이글루스에는... 내 집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휑했다. 이글루스 홈은 황량했고 몇 년이 지나고 들어가 봐도 점점 더 썰렁해지기만 했다. 이웃 맺은 사람들도 모두 사라지고, 오랜만이라며 글 한두 개를 올려봐도 읽으러 오는 사람도 댓글을 다는 사람도 없었다. 반면에 연락처 기반인 페북이나 관심사 기반의 트위터는 언제 가도 활발하게 글이 올라왔다. SNS는 순식간에 일상생활을 지배했다. 어딜 가나 김밥 한 줄을 먹어도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는 중독자들이 깔려 있었다.


한국 인터넷 세상의 흐름은 대략 이렇게 된다.

2003~2007: 블로그 전성기. 이글루스, 네이버 블로그, 싸이월드, 티스토리(2006년 말)

2008~2012: 트위터 + 페이스북 시대. "오늘 뭐 먹었음" 같은 실시간 글, RT 문화, 해시태그, 정치·슬롯 이슈도 트위터에서 많이 퍼짐

2013~2016: 인스타 시대 시작(한국 기준). 사진 중심. 감성 맛집, 여행, 카페 사진

2018 이후 유튜브, 틱톡, 숏폼


이글루스의 재기 시도와 깨진 유리창 이론

이렇게 모바일을 중심으로 인터넷 세상이 천지개벽하게 바뀌는 동안 이글루스는 늦어도 한참 늦은 2017년 무렵 앱을 출시한다. 이때도 네이버 블로그나 티스토리는 여전히 잘 살아 있었으니 잘만 하면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글루스에는 이미 사람이 없었다.


커뮤니티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한 번 우르르 떠나는 흐름이 만들어지면 돌이키기 어렵다. 게다가 이글루스가 더 이상 본진이 아니게 된 사람들조차 그동안 올린 글들이 아까워서 앱이 출시되었다는 소문을 듣자 반가워하며 앱을 설치해 봤는데 여기에서 더 문제가 생겼다. 앱이 정말 차라리 출시를 안 하느니만 못할 정도로 형편없었다는 것. 앱은 로그인만 해도 툭 꺼졌고, 앱스토어에는 불안정해서 쓸 수가 없다는 리뷰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불평들이 올라와도 이글루스 앱은 고쳐지지 않았다.


범죄학 이론으로 출발한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은 도시계획이나 재개발에서도 많이 인용되는데, 온라인 커뮤니티나 플랫폼에도 응용할 수 있다. 사람은 생각보다 주변 환경이 주는 신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깨진 유리창이 방치된 마을을 보면 "여긴 관리 안 되는 곳인가 보다"하며 쓰레기도 함부로 버리게 되듯이, 앱이 로그인조차 안된다고 계속 제보를 하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면 사람들은 "이제 여긴 관리 안 하나보다"하며 점점 안 들어오게 된다.


글쓰기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스팸이 늘어나는데 방치하거나 무성의한 AI 글이 늘어나는데도 아무런 큐레이션이 없거나, 댓글 매크로가 돌아다니는데도 조치가 없으면 사람들은 "아 여긴 이제 관리 안 하나보다"하며 점점 정을 떼고 떠나게 된다. 하물며 어서 오세요 몸만 오세요 지금 들어오시는 입주민들에게 배콰점 상품권 증정! 하며 호객행위를 하는 새로운 마을이 있다면, 그리고 원래 알던 이웃들이 하나둘씩 거기 가서 자리를 잡는다면, 나도 왠지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오라고 할 때 얼른 가야 할 것 같아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온라인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글루스

그렇게 해서 이글루스는 줌인터넷이 인수한 지 10년 만인 2023년에 공식적으로 서비스를 종료한다. 하지만 공식 종료 시기가 2023년이었을 뿐, 이미 그보다 한참 전부터 죽은 플랫폼이나 마찬가지였다. PC 통신의 막내 주자였던 유니텔의 공식 서비스 종료가 2022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때 유니텔이 서비스 종료를 고했을 때 사람들이 놀랐던 것은 유니텔이 사라진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헉 그거 아직 있었어?"였으니 말이다.


백업된 내 글의 날짜를 보면 2003년에서 2016년까지 있으니(막판엔 일 년에 글 한두 개 올리는 정도였지만) 어쨌든 나도 13년 동안 이글루스와 함께해 온 셈이다. 벌크 백업이라 그리운 이웃들의 댓글들은 백업되지 않았지만, 글과 사진들은 html 형식으로 그대로 박제되어 소중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온라인카지노에 들어오자마자 올려놓은 나니아 연대기, 왕도둑 호첸플로츠, 영화 오만과 편견 관련 글들은 다 이글루스에 올렸던 글을 퍼왔거나 다듬어 올린 글들이다.

그때 그 난민이 온라인카지노에 와서 물을 흐리는 중

그럼 이글루스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이글루스 난민'들은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이미 여긴 끝난 것 같다고 느끼고 여기저기로 살 길을 찾아 흩어졌다. 아마 온라인카지노에도 꽤 있을지 모른다. 기본적으로 긴 글을 쓰던 사람들이라 인스타나 X에서 마음 잡고 살기 어려운 족속들이기 때문이다. 덕후 대신 갬성이 판친다는 것만 빼면, 지저분한 배너 없이 깨끗한 UI며 이웃(서로 구독) 문화 등 그 시절 이글루스랑 그나마 제일 닮은 데가 온라인카지노인 것 같다.


내가 이 얘기를 하필이면 밀리 간다는 글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하는 이런 흉흉한 시점에 하냐면 아무래도 기시감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온라인카지노는 망해도 삼 년은 먹고 산다는 부잣집... 아니 대기업 계열사이고, PC 버전하고 기능 차이는 좀 있긴 하지만 모바일 앱도 안정적이고, 매해 온라인카지노북 출판 프로젝트도 성황리에 열고 온라인카지노를 통한 출간 작가들도 월매나 많은데 무슨 걱정이람?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날 주위를 돌아보니 올라오는 글도 점점 줄어들고, 구독하던 작가님들은 밀리인지 발리인지로 하나둘씩 이사 간다고 하고, 댓글 쓰기 할 때 엔터 한 번에 줄 바꾸기 두 번 먹는 사소한 오류를 몇 달이 지나도 안 고쳐주고, 어쩐지 들어올 때마다 내 두피마냥 조금씩 휑하다...? 싶은 느낌이 든다면...


그때는 내가 위에 장황하게 늘어놨던 이야기들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물론, 나는 난민 생활 두 번 겪고 싶진 않다. 입만 열면 온라인카지노 욕하는 나이지만 결국 여기는 내 집이라 떠나기도 싫고, 무엇보다도 또 어딘가에 가서 다시 집을 짓고 짐 풀어 정리하고 하는 게 이젠 너무 귀찮다. 그래서 새로운 나의 집이 오래 살아남아 주기를 바란다. 어차피 난 당분간은 다른 데 갈 생각 없으니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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