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이모

별명 닉네임 필명 대화명_혹은 변명

by대낮

누구나 이름이 여러 개다. 나는 토마토, 대낮, 지렁이이모 등을 썼다.

대낮보다 오래된 별명은 토마토다. 무난해 보이는 이 별명엔 사연이 있다.

누군가 토마토는 징그러워서 못 먹겠다고 쓴 글을 봤다. 다른 이가 댓글에 토마토 속이 페이즐리 문양 같고 세련돼 보인다고 썼다. 그 글을 보며 갑자기 혼자 토마토에 대한 생각을 계속했다. 토마토는 과일이냐 채소냐 하는 문제로 논쟁이 있었다. 식물학적으로는 과일, 영양학적, 법적(1893 미국 대법원 판결)으로는 채소다. 이거 애매한 녀석이다. 겉은 매끈한데, 속은 세상 복잡하다. 표면은 붉지만 씨앗은 정반대 색인 초록이 품고 있다. 윤이 나서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 즙이 흐를 정도로 속이 물컹하다. 누구는 그것이 싫고 누구는 그것이 좋다. 사실 싫어하는 사람은 토마토를 아주 싫어한다.

이 별명을 취할 때,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느 모로 보나 좀 어중간하고 주제 파악을 잘 못하고, 싫은 건 많으면서 나 싫다는 사람은 안중에 없고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이 별명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발음도 좋고 토마토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도 많으니 그냥 묻히기에도 좋은 이름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지은 별명이라고 딱 한 번 밝힌 적이 있다. 독서모임에서였다. 솔직이 최선의 방바카라이라는 생각으로 주절주절 말했는데, 말하고 나니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그래서 안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토마토는 그냥 세 글자짜리 단어이고 내 이름을 대신해 부를 말이라는 것 외에 달리 의미가 없었다. 생각의 과정은 그 순간의 내게만 의미가 있었을 뿐이다.


'지렁이이모'는 아이가 생태유치원에 다닐 무렵 지은 별칭이었다. 조카 이름이 지영이다. 지영이 이모, 지렁이이모 비슷하네 재밌네 하고 지은 건데.... 얼마 전 그 별칭으로 올린 온라인 게시물을 나와 같이 본 남편과 딸이 한 마디씩 했다. (참고로 이 정도 직설적 발언은 우리 사이엔 가볍다.)

"무슨 환경운동가인 척, 지렁이 애호가인 척이냐."

"지렁이를 좋아하지도 않는 엄마랑 어울리지 않아."

그랬나? 나 생태유치원 학부모로서 신경 쓴 건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땐 좀 그렇게 살고 싶었나 보다. 지렁이를 보고 놀라지 않을 자신도 없으면서 말이다.

이 대화 끝에 스스로 짓는 멋진 별명이 어쩌면 변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렁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지렁이 생각은 좀 하고 있다는 변명. 속으로 파고드는 글이 아니라 벌건 대낮에 누구와 대화해도 괜찮을, 그런 줏대 있고 바카라임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건 그렇지 못한 나에 대한 변명이다. 그렇지 못하지만 그러고 싶어 하지 않느냐고 둘러 말하는 것 같다. 토마토 역시, 지금 내가 어중간하고 애매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새로 있지만, 나 그런 걸 알고 있지 않느냐고 변명한 것일 수도.

지렁이이모는 이제 쓰지 않지만, 아직 대낮과 토마토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름에 담긴 의미를 버리면 그냥 두 글자 세 글자짜리 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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