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밀리로 갈 때 나는 가지 않는 이유

자극적인 제목 주의 - 별 내용 없음

by마봉

요새 온라인카지노에 밀리로 간다는(정확히 말하면 밀리에도 글을 올린다는) 글들이 종종 보인다. 더 많은 독자를 만나고 싶은 온라인카지노 작가들에게 세컨하우스를 만들라며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밀리는 꽤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왜냐면 온라인카지노는 작가들의 플랫폼이라 독자 = 작가, 즉 작가들끼리 서로 읽어주는 공간인데 비해 밀리는, 물론 밀리의 서재 전자바카라 구독자들이 밀리로드의 자유연재물들을 얼마나 읽어 줄지는 의문스럽지만, 어쨌든 작가가 아닌 진짜 독자들도 이미 확보되어 있는 플랫폼이니까.


리디에도 디리토(Dirito)라는 자유연재 플랫폼이 있다. 밀리의 서재 ↔ 밀리로드와 비슷한 관계인데 이쪽은 웹소설(장르물, 로맨스, 로판, BL) 쪽 색이 강해서 온라인카지노 작가들이 가고 싶어 할 만한 곳은 아니다. 게다가 리디는 밀리처럼 "다른 플랫폼에 올린 글 URL만 올려도 됩니다!"라는, 복붙조차 필요 없으니 몸만 오세요! 같은 노골적인 타 플랫폼 IP 끌어들이기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미 2010년대부터 웹소설 서비스를 키우기 시작한 리디는 이미 로판과 BL 부문에서는 충분히 자리를 잡은 상태인 반면 밀리는 2025년에야 웹소설 서비스를 시작했으니 리디보다 전자바카라 구독자 수도 더 많은 밀리로서는 한발 늦은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번에 얘기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이다. 내가 밀리에 가지 않는 이유, 그리고 이러한 흐름을 제대로 탈 경우, 온라인카지노의 운명.


내가 밀리에 가지 않는 이유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니까 흘려들어도 된다. 결코 밀리 안 좋으니까 가지 마세요,라는 글이 아니다. 그저 내가 밀리의 서재에 투고했던 경험을 공유하는 것뿐이다.


작년에 나는 내 장편 소설을 완결하고 나서 세 군데에 투고를 했다. 그중 하나가 밀리의 서재였다. 밀리 말고 다른 두 출판사는 이름만 들으면 아는 큰 출판사였고 솔직히 초짜가 뭘 믿고 그런 데다 투고를 했는지 나도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지만 - 아무튼 두 출판사는 각각 3주, 그리고 한 달 후에 정중한 메일과 함께 거절을 밝혔다. 밀리는, 내가 대단한 기대를 하고 투고를 한 것은 아니지만, 단 하루 만에 거절 메일이 왔다. 그런데 그 거절 메일이 참 웃겼다.


왜 웃긴가 하면, 나중에 다른 소설을 단행본 전문 출판사(위의 두 출판사들에 비하면 정말 이름도 없는 작은 출판사)들에 투고해 보았지만 그런 출판사들조차도 거절 메일에는 정해진 템플릿이 있었다. 출판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충은 이런 투다.

작가님의 소중한 원고를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부 검토를 진행한 결과, 아쉽게도 이번에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귀한 작품을 보내주신 데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다시 인연을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회신은 일반 회사에서의 입사 지원자들에게 보내는 불합격 통보나, 혹은 입찰에 참여하였으나 선정되지 못한 회사에 보내는 안내 메일도 마찬가지다. 다 비슷비슷한 투로, "너의 지원/입찰에 감사하며, 신중히 검토했지만 함께하지 못해서 안타깝고, 앞으로도 좋은 인연/관계를 맺기를 바란다"라는 내용이다. 설령 그 지원자/입찰사가 진짜 도저히 자격조건조차 안 되는 형편없는 인물/회사일지라도 성의 있게 답장한다. 그리고 체계적인 회사일수록 그런 메일은 이미 정해진 템플릿이 있다. 채용 담당자나 입찰 담당자가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왜냐면 그 회사의 이미지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밀리의 서재에서 투고한 바로 다음날 날아온 회신은 대충 이런 식이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판타지는 투고를 받고 있지 않습니다. 저희 내부적으로 판타지 투고 검토 담당자도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판타지가 투고 대상이 아니라면 투고 이메일 안내 페이지에 투고 불가 장르를 마땅히 기재해 놓았어야 한다. 설령 원래는 장르 안 가리고 다 받았었는데 아주 타이밍 안 좋게 어제오늘 판타지가 투고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그런데 시간이 없어서 미처 공지를 못했다고 좋게 좋게 생각해 봐도 저 회신 문구가 너무 허술하다. 체계가 있는 회사라면 절대 저런 엊그제 들어온 신입이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는 것 같은 회신을 하지 않는다. 밀리 내부적으로 판타지 검토 담당자가 없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그건 자기들 내부 문제지. 만약 진짜로 판타지가 투고 대상이 아니어서 거절하는 거였다면 적어도 이런 회신이어야 했다.

제목: 원고 투고에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소중한 원고를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쉽게도 현재 저희 출판사에서는 판타지 장르에 대한 일반 투고를 진행하고 있지 않아 이번 원고는 검토 대상에 포함하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투고 안내 과정에서 해당 사항을 충분히 안내해 드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귀한 시간을 들여 보내주신 원고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좋은 작품 활동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0개쯤 되는 출판사에 벌크 이메일을 보내서 한방에 투고하는 대범한 작가가 아니라면 모두 투고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잘 알 것이다. 출판 기획서의 단어와 문구를 고치고 또 고치며, 오타는 없는지 원고는 제대로 첨부되었는지 눈을 비비고 보고 또 보며 보냈을 것이다. 마치 취준생이 입사지원서와 자소서를 고치고 또 고치며 정성 들여 보내는 것과도 같다.


채용공고에는 분명히 지원자격 무관이라고 써놓고, 알고 보니 내가 나온 학과는 지원자격이 없다는 내용을 회신으로 받는다면 적어도 빈말이라도 정중하게 받는 게 감정이 덜 상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회신을 미리 정해진 템플릿으로 다듬어 주는 것이 제대로 된 회사의 인사팀에서 할 일이다. 그것이 수많은 회사들 중에서 우리 회사를 선택해 지원한 사람들의 시간과 수고에 대한 예의이다.


다시 말하면 밀리의 서재는 그런 템플릿도 없기 때문에 담당자가 즉석에서 저런 회신을 보냈다는 결론이 나온다(물론 내 개인적인 견해다). 다른 작가들은 제대로 된 이메일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 후로 밀리에 다시 투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경험은 한 번뿐이다. 하지만 그 한 번이 그 회사에 대한 인상을 결정한다. 인사 담당자가 "죄송하지만 저희는 ㅇㅇ학과 출신은 지원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저희 내부적으로 ㅇㅇ학과의 지원 자격을 검토하는 담당자도 없습니다"라고 회신을 보냈다면 입사 지원자가 그 회사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게 될 것인가? 아마 "아 여기 뭐야? 그럼 처음부터 공지를 했어야지"라고 언짢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밀리로드라는 자유연재 플랫폼에도 갈 생각이 없다. 거기에서 공모전도 많이 하고 상금도 있고 그냥 옮기기만 해도 뭘 주고(돈 안 드는 네이버 캐시든 진짜 돈이든) 어쩌고 한다고 할지라도, 온라인 게임생활 26년의 꼰대인 나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나도 어쩌다 면접에 들어가는데 정말 부모가 누군지 궁금할 정도로 태도며 온갖 것이 다 별로인 지원자라도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까지 왔을지 생각하면 정말 경청하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지원자가 설령 채용이 안 되더라도 우리 회사에 대한 인상만은 좋게 가져가길 바란다.


당연한 말이지만 밀리로 가신 작가님들이 거기에서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나고 거기서 상도 타고 출간의 기회로도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독자는 없고 작가들만 있는 온라인카지노에서 서로 라이킷 눌러주기만 하다가 밀리에 가서 출퇴근길, 등하굣길의 일반 독자들이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좋아요(인지 뭔지 그쪽 시스템은 모르지만)를 눌러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아마 가지 않을 것이다.

곤조가 넘치는 마봉 선비의 방. 원고, 노트북, 커피 그리고 벼루와 붓 등이 놓여 있고 마봉은 갓을 쓰고 있다.

마치 내가 온라인카지노에 의리를 지키느라 안 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전혀 아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서식하던 플랫폼이 망하는 것을 지켜본 마봉의 '라떼는 말이야'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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