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가족 여행
길은 사람을 걷게 하고, 풍경은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8월 2일, 새벽 4시. 평창의 밤이 깊다. 아니 새벽이 깊어 여명이 먼 건가?
퇴실 준비를 하며, 샤워를 했고 어제와 같은 장소 동그란 탁자로 나와 바카라을 잡은 시간은 7시가 좀 안 되어서다.
그 새벽 로비로 들어온 검정 잠자리를 보았다. 어떻게 들어왔지 잠시 생각하다 곧 알게 된다. ‘아!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잠자리를 비롯한 날 벌레들이 들어올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다다른다.
가족 중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잠자리에 모두 자는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들고 어제 그 자리로 와서 앉았다. 햇살이 어제보다 훨씬 길어졌다. 이 말은 좀 늦은 시간에 산바카라을 나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메밀차 한 잔을 로비에서 준비해 와 바카라 옆에 놓았다. 햇살이 등을 타고 머리 뒤통수를 간지럽힌다. 잠시 오늘의 일정을 가늠해 본다.
읽던 바카라을 접어 손에 든다. 손에 든 바카라을 가슴에 안고 평창 휘닉스의 새벽길을 한 걸음 한 걸음 혼자 걷는다.
아직 오늘 하루가 세상에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다. 산은 검푸른 어둠 속에 잠겨 있고, 나뭇가지 사이로 새벽빛이 아주 천천히 번지고 있다. 밤과 아침의 경계에 선 시간 세상이 아직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은 고요 속에서 나는 말없이 길을 걷는다.
이 시간의 길은 낮의 길과 다르다.
사람의 목소리도 없고 무언가를 재촉하는 소리도 없다. 오직 발끝에서 사각거리는 여린 풀 소리와 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만이 내가 지금 이 길 위에 있음을 알려준다. 아무것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 시간에 걷고 있으면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내 안의 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한다. 내면이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문득 오래전, 아주 오래전 ‘정말 나는 어떻게 나답게 살아야 할까’를 깊이 고민하던 그 시간이 찾아온다. 새벽 여명을 맞으며 혼자 하이델베르크에서 걸었던 괴테의 길로 불리던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 떠오른다. 네카어강을 내려다보며 걷던 그 길 건너편으로 오래된 성과 붉은 지붕의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그 길에서 강 위를 수놓으며 가로지르던 알테 브뤼케를 마치 시간을 건너는 하나의 문처럼 느꼈었다.
슈랑엔베크의 가파른 돌길을 올라 철학자의 정원에 이르렀을 때, 벤치에 앉아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길을 느꼈던 그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었다. 마치 괴테가 된 듯이. 흡사 엄마 유령이라도 만난 듯이.
그곳에서 이상하게도 도시는 더 이상 하나의 도시로 보이지 않았다. 도시는 숱한 삶의 내용을 담은 한 권의 오래된 바카라처럼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태어나고 사랑하고 떠나갔으며 누군가는 꿈을 꾸고 누군가는 그때의 나처럼 깊이 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의 시간이 지나간 뒤에도 강은 여전히 흐르고 성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강은 흘러가고 성은 시간을 견디고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 태어났다가 사라진다. 그런데도 풍경만은 묵묵히 그 모든 시간을 품고 있었다. 아마 그러하기에 그곳을 거닐었던 사람들은 그 길을 철학자의 길이라 불렀을 것이다. 이상하게 그 길을 걷다 보면 생각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을 내려놓으면 내려놓을수록 비로소 보이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무언가를 이해하려 애쓸 때보다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고 바라볼 때 보이는 풍경이 비로소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어쩜 나는 알았는지 모른다. 생각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깊이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생각을 내려놓는 일이야말로 가장 깊은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그리고 몸소 체험했다.
오늘 평창 휘닉스의 새벽길을 걸으며 그 길,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을 다시 생각한다.
하이델베르크와 평창은 서로 아주 먼 곳에 있다. 하나는 오래된 유럽의 도시이고, 하나는 산과 숲이 이어진 우리나라의 풍경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른 아침의 산길에서 두 장소가 하나의 풍경처럼 연결된다.
수십 년 전, 그때의 네카어강과 2026년 여름 지금 평창의 산바람이 만난다.
하이델베르크 성을 바라보던 내 눈과 오늘 산 능선을 바라보는 내 눈이 시간을 건너 서로 마주한다. 장소는 달라졌다. 허나 그 풍경 앞에 서 있는 나는 같은 사람이다. 아니, 어쩌면 혹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풍경이 다시 다르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래전의 나는 하이델베르크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려고 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그 아름다움의 의미를 찾으려 했고, 먼 나라의 길을 걸으면서도 내가 왜 이곳에 왔고, 또 나는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를 수시로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다. 이제는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보다 그저 바라보고 음미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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