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가족 여행
멀어지는 가마
급하게 주차장을 돌아 나오다 관람 종료 5분을 남겨두고 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 들어선다. 입구에서 우리를 본 안내원이 다가와 다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거듭거듭 알려준다.
순식간에 ‘우사인 볼트는 저리 가라’다. 온 가족이 하나가 되어 전시실을 향해 달린다.
후우.
평소에는 저마다의 속도로 걷던 사람들이 어찌 긴박한 순간에는 약속이나 한 듯 이토록 한마음이 되는지 그 모습을 뒤따르며 묘한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경이로움은 이내 안도가 된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월정사 초입에 자리하고 있다. 간신히 놓칠 뻔한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자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실의궤 등 조선시대의 기록유산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곳이란 안내문이 너무 늦은 시간에 왔다고 채근하듯 눈에 들어온다. 2023년 문을 연 이곳에 오대산 사고에 보관되었던 기록들이 어떤 인고의 시간을 견뎌왔으며, 어떤 길을 돌고 돌아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는지가 펼쳐져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왕, 472년의 역사를 기록한 바카라이다. 정치와 외교뿐 아니라 경제와 슬롯, 법률과 군사, 과학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실록은 한곳에만 보관하지 않았다. 여러 사고에 나누어 두었다. 이렇게 분상하는 이유는 전쟁이나 화재가 닥치더라도 기록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춘추관, 충주, 성주 사고의 실록이 소실되고 전주 사고본만 남았다고 전해준다. 그래 조선은 다시 전주 사고본을 바탕으로 실록을 간행했고 그 가운데 하나가 ‘오대산 사고’이다.
깊은 산속 사람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곳에 역사를 숨겨두듯 보관한다. 문득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왜 그렇게까지 역사를 지키려 했을까?
시간은 흘러가고 사람은 사라진다. 그러나 사라져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조선 사람들은 그것을 기록으로 붙잡아 두려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록도 닥쳐오는 수난을 피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문화유산이 흩어지고, 오대산 사고본 역시 먼 길을 떠났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 긴 시간 동안 누군가는 기록하고 또 누군가는 잃어버린 기록을 되찾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 오대산 사고는 단순한 기록 보관소가 아니다. 한 시대의 기억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마음과 사라진 것을 다시 찾아오려 했던 사람들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곳이다.
전시실에 성종실록, 중종실록, 선조실록, 효종실록 등이 놓여 있다. 한 장 한 장 바라보고 있으면 오래된 바카라이 아니라 바로 지나간 그 한 시대가 눈앞에 놓인 듯하다. 일부 실록에는 글자를 고치거나 삭제하고 덧붙이기 위해 남겨둔 흔적도 있다. 그 흔적이 이상하게 마음을 잡아당긴다. 완성된 역사보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더 정확하게 남기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의 손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의궤에는 왕실의 행사와 국가적인 사업을 글과 그림으로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했고, 누가 참여했으며, 어떤 물품을 사용했는지까지 세심하게 남겨두었다. 한 시대가 지나간 뒤에도 그 시대를 잊지 않도록. 기록물 그 앞에 서서 나는 조선왕조실록이 단순한 역사바카라이 아니었음을 새삼 전율하며 느낀다. 사람들이 살아온 시간이다. 사라질 시간을 붙잡아 놓은 기록이다. 472년 동안 역사를 기록하고 그것을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해 후대에 전하려 했던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그저 숙연해진다. 어쩌면 기록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잊지 말자고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와 다짐으로 기억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전시실을 걷다가 왕의 모습을 그린 어진(御眞)과 마주한다. 참으로 온화하다. 한참 정지된 듯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다.
그 순간, 단종의 가마가 눈에 들어온다.
후우.
이곳에서 왜 나는 또 그토록 애잔한 단종을 마주하게 되는 것일까. 가마 앞으로 다가간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조선시대의 왕실 가마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었다. 가마의 형태와 장식, 가마를 메는 사람의 수까지 신분에 따라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고 왕의 행차에는 깃발과 의장물, 군사와 신하들이 함께했다. 당시 가마는 왕권과 국가의 권위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놓인 것은 단종의 가마다. 왕의 가마이면서 어쩌면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유배길에 오른 어린 임금을 싣고 가던 가마다.
단종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고 폐위되었고 영월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끝내 궁궐로 돌아오지 못했다. 훗날 복위되어 장릉에 묻혔으나 길지 않았던 그의 삶에는 왕으로서의 시간과 유배된 어린 임금으로서의 시간이 깊은 상처처럼 겹쳐 있다.
나는 다시 가마를 지그시 바라본다.
저 어린 사람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자신이 살던 궁궐을,
자신을 품어주던 사람들을,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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