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가족 여행
바람이 머물고 간 자리
간단히 아침을 먹고 오전 열 시가 다 되어 삼양라운드힐로 길을 나선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다며 역시 또 사위 서 서방이 운전대를 잡는다.
가는 길에 남편이 문득 우리 펜션 ‘숲속의 요정’에 들러 보고 가자고 했다. 모두 동의해 잠시 그곳에 들렀다.
분양받은 지 아니 소유하게 된 지 어느덧 20여 년이 흘렀다. 노후대바카라으로 마련해 두자며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아직도 정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남아 있는 공간이다.
한때는 분명 우리의 미래를 위해 마련한 곳이다. 잘 가꾸어 놓으면 노후에 작은 힘이 되어줄 것이라 철저히 믿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그곳은 너무도 낡고 쓸쓸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한참 동안 우리 집을, 현관에 표시된 분양 동과 호를 바라보았다.
세월은 사람만 늙게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우리가 한때 품었던 꿈도 세월 속에서 빛이 바래고 손때 묻은 것들도 어느 순간 낡은 풍경이 되어버렸다.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안쓰럽고 착잡한 마음을 뒤로한 채 다시 차에 올랐다.
휴게소에 들러 커피와 간단한 간식을 샀다. 대관령으로 이어지는 길은 꼬불꼬불 굽이가 많았다.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는 동안 운전대를 잡은 서 서방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산길을 따라 차창 밖의 풍경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달라진다.
산이 높아지고 하늘이 가까워진다. 구름은 산등성이를 스치고 초록빛 능선이 눈앞으로 길게 이어진다.
말수가 자연스럽게 줄었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할 것 같다가도 입을 여는 순간 눈앞의 풍경을 놓칠 것 같아 침묵을 택했다.
그렇게 우리는 삼양목장에 도착했다.
하늘과 맞닿은 초원. 목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넓은 초원이었다.
해발 700여 미터.
산 위에 올라서니 하늘이 흡사 팔을 뻗으면 닿을 듯 유난히 가까웠다. 구름은 손에 잡힐 듯 낮게 흐르고 초원의 풀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한꺼번에 몸을 눕혔다가 다시 일어섰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투어버스에 올랐다. 딸이 선택한 라운드 코스를 따라 한 시간 가까이 목장을 둘러보았다.
버스가 천천히 산길을 오를수록 풍경은 더욱 넓어졌다. 약 600만 평에 이르는 목장은 한눈에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광활했다.
곳곳에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었다. 하얀 풍차가 푸른 초원 위에서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바람은 보이지 않으나 풍차의 움직임으로 바람, 그 존재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세월도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는 것. 어느 순간 돌아보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은 것.
이 아름다운 초원 역시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은 아니라고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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