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EXO를 좋아하다 BTS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byLayla Lee

창문 밖으로 SBS 등촌동 공개홀을 목이 빠져라 쳐다보던 시기가 있었다.


<SBS 인기가요> 녹화가 있는 일요일이면 방송국 앞에는 팬들이 모여들었다.

평일에는 심야 음악 프로그램 공개방송도 있었다.

아마 김정은의 초콜릿이었던 것 같다.

인기가요 방청은 팬클럽 회원이 아니면 사실상 어려웠다.

그래서 그 공개방송이라도 방청권을 신청해 당첨되면 가끔 보러 가곤 했다.


내가 서울에서 살던 곳은 SBS 등촌동 공개홀 맞은편에 위치한 제주도 향토학사였다.

제주 출신 학생들의 서울권 대학 통학을 위해 도청에서 제공하는 기숙사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곳이다.

서울 한복판 초역세권 건물에 기숙사비는 당시 한 달에 10만 원 정도였다.

당시 대학가 근처 자취방 월세가 50만 원 안팎이었던 걸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가격이다.

시간만 맞추면 아침과 저녁 급식도 먹을 수 있었다.

아침 10시 전까지는 온수도 나왔다.(그래서 아침잠이 많은 나는 오후 수업이 있는 날과 방학엔 항상 찬물로 씻을 수밖에 없었다.)

길만 건너면 무려 내가 살던 제주도에는 없는 홈플러스도 있었다.

강서구에서 학교가 위치한 동대문구까지 가는 일 정도는 기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따로 있었다.

당시 나는 EXO를 좋아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SBS 공개홀 앞으로 언젠가는 세훈이나 찬열이가 지나갈 것만 같았다.

길 건너 홈플러스에 음료수를 사러 올 수도 있고, 근처 허준공원을 지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바람이 망상이 된 경우다. 사실 로드 매니저도 안 다닐 동선인데.)

실제로 허준공원에서는 가끔 아이돌들 팬미팅(그냥 팬들한테 공개방송 와줘서 감사 인사)이 열리기도 했다.

나중에 BTS가 방탄소년단이던 시절 그곳에서 팬미팅을 했던 사진을 보고 나의 어두운 선구안을 탓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순진한 상상이지만, 당시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물론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가능성은 있었다.

적어도 제주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가능성이었다.



사실 EXO는 데뷔할 때부터 눈여겨봤다.

저게 도대체 뭔가 싶어서.

무슨 아이돌 데뷔곡 무대 도입부에 '생명의 나무'라고 이름 붙인 대형 안무가 나온다.

당시에는 개신교 신앙도 없었지만,

'이쯤 되면 성경도 알아야 아이돌을 이해할 수 있는 건가?' 싶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영어 성경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니 참 웃긴 일이다.

아얘 그룹 이름도 EXODUS(출애굽기)를 떼어놓고는 볼 수가 없다.

역시 유영진 프로듀서는 꾸준하다. 천상지희 가사에 아담의 갈비뼈부터 도대체 4세대 걸그룹(aespa) 가사에 '광야'를 넣을 생각은 어떻게 한 걸까. 정말 아멘이다.

H.O.T. 시절부터 이런 세계관을 밀었다면,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성경 공부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로부터 10년 뒤 내 플레이리스트는 BTS로 채워져 있었다.

그 10년 사이에 나는 태어나서 처음 와보는 경상도로 이사 와서(결혼으로 인해)

유부녀로 살기 시작하고 첫 아이를 낳고

학교도 온라인 게임도 안 가고 살던 최초의 시기였다.

10년 전의 나는 전생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가장 자유로웠지만, 동시에 가장 나를 잃었던 시기였다.




EXO를 좋아할 때는 동경했다.

그래서 창문 밖에서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BTS를 좋아할 때는 공감했다.

그래서 창문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느낌이었다.



인간은 동경보다 동일시에 더 깊이 빠진다.


사람은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한다.

그래서 어떤 노래는 유행으로 끝나고,

어떤 노래는 인생의 한 시기를 설명하는 언어가 된다.



BTS가 특별했던 것은 세계관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그 세계관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던 당시의 내가 BTS의 헤르만 헤세 '데미안'세계관이나 '학교' '청춘' '방황'을 보고 멋있다거나 같은 경험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니까.

물론 완전히 무관한 것도 아닐 것이다.

중학교 때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데(문학적으로 어려워서) 확실히 그 특유의 감정선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건 내 것이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 내가 있었다.

그리고 BTS의 음악에서도 비슷한 결의 무언가를 발견했다.



결국 사람은 세계관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 세계관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될 때 감동한다.

EXO를 좋아할 때 나는 동경했고,

BTS를 좋아할 때 나는 공감했다.

그리고 공감은 언제나 동경보다 깊다.




아마 그래서 나는 지금도 사람의 감정과 욕망, 선택과 후회를 들여다보는 이야기에 끌린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일은 결국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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