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듣는 노래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다르다.(적어도 나는)
내가 감탄하며 최고로 치는 노래는 바로
오마이걸의 <비밀정원>이다.
조금 웃기지만,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눈물이 글썽 맺힌다.
처음에는 사운드에 감탄했다.
'와, 이번에 어떻게든 띄우려고 칼 갈고 나왔네.'
그 정도로 곡이 좋았다.
그런데 몇 번을 반복해서 듣다 보니 이번에는 가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운드가 좋은 곡은 마치 첫눈에 반하는 외모 같다.
그렇게 사운드에 끌려 노래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내면에 해당하는 가사를 듣게 된다.
그리고 좋은 가사는 그 곡을 여러 번 듣게 만든다.
처음에는 사운드가 좋아서 한 번에 꽂혔던 노래도,
가사가 평면적이면 금세 질린다.
외모는 눈길을 끌지만,
결국 사람을 오래 붙잡는 것은 내면인 것처럼.
노래도 비슷하다.
사운드가 나를 데려오고,
가사가 나를 머물게 한다.
이런 면에서 이 곡은 작사와 작곡 모두 어느 한절 대충 만든 부분이 없이 라인 바이 라인 영혼까지 끌어다 쓴 느낌이었다.
그냥 좋은 곡이 아니라, 누군가 오랜 시간 공들여 설계한 작품을 보는 기분이랄까.
멜로디 하나, 코드 진행 하나 곡 분위기는 소중하고 아름다운데
자세히 들을수록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하나의 세계를 설계해 놓고 만든 작품 같았다.
사실 대부분의 대중가요는 1절과 후렴에서 이미 승부가 난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킬링 포인트도,
제목이 되는 한 줄도,
대개는 그 안에 들어 있다.
그런데 비밀 정원은 2절 첫 소절에서
"너무 단순해 그 사람들은 말야."
이 한 줄이 나오면서 노래의 세계가 확 넓어진다.
나도 모르게 이 가사에 멈추게 됐다.
언제 말할지를 더 오래 고민한 사람의 글처럼.
1절에서는 비밀이 있다는 사실만 보여주고,
후렴에서는 그 이름만 알려준다.
2절에서는 왜 비밀인지 설명한다.
그리고 디브릿지와 파이널 코러스에 와서야,
마치 트레져 체스트를 열어 보이듯 조심스럽게 정체를 드러낸다.
꿈.
가능성.
그리고 너의 비밀정원.
벤티 사이즈 커피도 2분 안에 원샷하는 사람인 내가 듣기에
이 노래의 절제는 거의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저렇게 가사의 메인 키워드를 혹여나 깨질까봐 아주 소중히 빌드업하며 다루다가
디브릿지랑 파이널 코러스에서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내가 갖지 못한 태도를 바로 이 노래의 서사가 가지고 있었다.
나는 머릿속에 무언가 떠오르면 일단 꺼내놓고 보는 사람이다.
비유하자면 양은냄비에 가깝다.
금방 끓고,
금방 쏟아낸다.
다른 사람들은 이 가사를 쓴 서지음 작사가의 키치한 표현들에 감탄한다.
러블리즈 <아츄>의 재치와,
엑소<으르렁>의 강렬함 같은 것들.
그리고 사람들은 보통 강렬한 후렴이나 킬링 파트를 먼저 기억한다.
그런데 <비밀정원>은 다 듣고 나서야 보이는 정교함이 있다.
아마 그래서 나는 이 노래에 감탄하는 것 같다.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능력 자체가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보여줄지 설계하는 능력.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순간까지 그것을 아껴둘 수 있는 능력.
<비밀정원>을 설계도 들여다보듯 분석하다가 알게 됐다.
내가 감탄한 건 나한테 없는,
끝까지 아껴둘 줄 아는 태도였다는 것을.
좋은 작사는 하고 싶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가장 효과적인 순간까지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마 내가 좋아했던 건 멜로디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끝까지 아껴두고,
조심스럽게 건네는 태도.
그 태도가 노래를 통해 내게 닿았는지도 모른다.
"아, 중요한 건 이렇게 다루는 거구나."
그래서 나는 걸그룹 노래를 듣다가 눈물이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