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닫지 못하는 죄
크리스천으로서 고백하자면, 나는 죄인이다.
많은 죄 중에 귀를 닫지 못하는 죄가 있달까.
별나보이지만 나는 생활 소음에 약하다.
초3 여아 : (냉장고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린다.) 탕.
(방문 닫는 소리가 들린다.) 탁.
초6 남아 : (의자 끄는 소리가 들린다.) 끼익.
그리고 가족 중 누군가는 하루 종일 무언가를 떨어뜨린다.(주로 딸)
그러고선 '악!!! 아씨...! '한다.
신기한 건 가족 중 나말고는 아무도 신경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속으로 외친다.
'주여...'
태어나서 처음으로 초등학생 2명과 방문을 닫지 않고(감시해야 해서) 생활하는 게
나에게는 쉽지 않다.
사실 남들은 평범하게 살고 있는데 내가 유독 크게 듣는 것이 문제다.
수험생활 하느라 도서관이나 독서실을 다닐 때도 공부하는 조용한 곳인데 굳이 이어 플러그를 끼거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었다.
세상에는 눈을 감으면 안 보이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귀는 닫을 수가 없다.
차라리 생활 소음이 깔려 있는 카페는 괜찮다.
사람들이 떠들고, 커피 머신이 돌아가고,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나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그런데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집에서는 다르다.
냉장고 문이 닫히고, 방문이 열리고 닫히고,
누군가 거실을 지나가는 인기척이 들릴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생각해 보면 소음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소리보다 '침범'에 예민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맞다. 코로나 때도 '거리두기' 덕분에 얼마나 마음이 편안했는지 모른다.
줄을 설 때도,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모두가 서로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그 거리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나는 소음을 통해 타인이 내 경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참나.
그렇게 사람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면서
정작 모르는 사람은 또 그렇게 가린다.
낯선 사람은 반경 2미터 밖에 있었으면 좋겠는 성격.
생각해 보면 조금 변태적이다.
냉장고 문 닫는 소리에 괴로워하는 대신,
어떤 노래에서는 비트만 듣고도 감동해서 내적 스탠딩 오베이션을 한다.
첫 5초만 들어도 돈 냄새가 나는 사운드가 있다.
비트에서 느껴지는 부유함이랄까.(사실 거의 SM아이돌 타이틀곡)
설명은 못 하겠는데 분명히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좋은 소리를 귀에 이어폰으로 꽂아넣는다.(그냥 틀어놓으면 또 이상하게 시끄러워서 싫다.)
음악이든, 오디오북이든, 성경 낭독이든.
내게는 일종의 소음 제거 장치다.
귀를 닫을 수 없는 대신, 더 좋은 소리로 채워 넣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창문을 닫고,
어떤 사람은 이어폰을 꽂는다.
그러다 귀가 피로해지면 이어폰을 빼고 계속 무언가를 읽는다.
독서도 비슷하다.
나는 바카라을 읽는 것이 아니라, 좋은 생각을 틀어놓고 살고 싶은 것 같다.
머릿속에 아무것도 재생되지 않을 때는 생활만 있다.
하지만 좋은 바카라 한 권, 좋은 문장 하나가 들어오면
세상이 다시 연결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연결들이 나를 몰입하게 한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집중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약간 산만함)
연결이 시작될 때 비로소 몰입하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