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잡이인 척하는 왼손잡이

손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왼손이지롱

byLayla Lee


나는 왼손잡이가 아니다. 심지어 왼손을 정말 못쓴다.


그런데 내가 슬롯에서 왼손잡이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돌이켜보면 나는 가까운 주변으로부터 줄곧 ‘별나다’는 핀잔을 들어왔다.(예민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쓰이는듯하다.)

왜 그렇게 보냐는(관점이. 아닌가? 눈빛 말하는 건데 내가 못 알아들은 걸지도) 이야기도 듣는다.

보통 이런 사람이면 굉장히 창의적이거나 유니크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나는 슬롯적 규칙을 충실히 이행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이다.

기행을 일삼거나 세상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화려한 예술가들의 캐릭터와는 이질감마저 느낀다.

20대 때 이태원 해밀턴 호텔 앞을 지나가면 누가 봐도 개성 강한 모델이나 예술가들 옆을 스치기만 해도 너무 멋쩍다고 느낄 정도로.

그래서 내 자신을 '일반인 속에 숨어 있는 슬롯 부적응자'라고 느끼며 살아왔다.


그런데 작사야 말로, '사람들'사이에서 살다가 그 안에서 의미를 잡아내야 한다는 걸 느낀다.


완전히 밖으로 튕겨 나간 예술가는 대중의 보편적인 마음을 울리지 못하고, 완벽하게 동화된 일반인은 뻔한 글밖에 쓰지 못한다. 가장 대중적인 바다 한가운데에 깊숙이 잠수해 있으면서, 홀로 산소호흡기를 물고 다른 농도의 공기를 마시는 것.


나는 남들과 같이 조용조용히 살다가 남들이 보는 방향을 약간 비스듬히 본다.

처음엔 몰랐다. 다들 나같은 줄 알았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이미지 게임을 하는데- 남들이 모두 예스라고 할 때 넌 아니오라고 할 거 같다는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랬던 적이 있다. 정작 내 이름이나, 반에서 생각나는 애 떠올리라고 하면 말 못하면서.



그렇게 나는 오른손잡이 세상에서 손을 쓰지만 그게 왼손인, 사람처럼 살았다.

오른손잡이처럼 겉으로는 똑같이 손을 쓰고 있지만 손이 가는 방향이 조금 다르다.

그리고 일단 오른손잡이들이 나를 좀 거슬려한다.

자기랑 다를바 없어보이는데 엇 왼손이네, 하고 다르니 눈엣 가시였다가

자기 오른손이 투박해 보이거나 못쓰는날 내 왼손에 공격을 할때가 있었다.

다만 난 오른손에 아무런 권위나 가치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타격을 1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묘하게 재미 있었다.

'엇, 그 어떤 깊이도 관심도 안느껴지는데

항상 오른손잡이임을 입으로 자랑하더니

실은 저 오른손 본인도 맘에 들지 않았던거네?'

하는 셀프 인증이라서 그 오른손잡이의 광기를 팝콘각으로 흥미롭게 관람했다.

나는 오른손잡이들과 똑같은 세상의 도구를 쥐고 살아가지만, 그것을 쥐어짜는 손은 다른 쪽이다.


하지만 대중이 매일 겪는 평범한 이별, 평범한 사랑, 평범한 일상의 정서를 공유하면서도, 시점만큼은 왼손잡이처럼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삐뚤어져 있는 것이다.

같은 걸 보는데 나만의 감각으로 나에게 보인다.



그냥 대중들 사이에 있는데 묘하게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

그래서 사람들이 옆에 있다가 한번 힐끔 보는 정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구경하고 있다.

모두가 사랑을 할 때 사랑을 하는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관찰한다.

모두가 슬퍼할 때 슬퍼하는 동시에 슬픔의 모양을 구경한다.


어쩌면 작사란 특별한 사람이 되는 기술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으로 남아 있으면서

조금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기술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사람들을 관찰한다.

카페에서, 횡단보도 앞에서. 대단한 영감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세상은 원래 충분히 흥미롭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고,

작사가는 그 장면을 조금 오래 바라볼 뿐이다.

아마 내가 쓰는 가사들도 결국 그런 것들이다.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지만

아무도 이름 붙이지 않았던 감정들.

다들 보고 있었지만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던 순간들.

가사 속 반전과 서사는 대단한 곳에서 오지 않는다.매일 걷는 그 평범한 거리, 당신이 숨 쉬듯 소비하는 그 당연한 관계들을, 내가 가진 ‘왼손잡이의 시선’이라는 렌즈로 툭 건드려 낯설게 바꾸어 놓을 뿐이다.



더불어, 나는 생각 자체보다 생각을 담는 그릇에 더 예민한 사람이다.

표현의 각도에 집착하는 편집증.

타고나질 못해서 더 집착하는 영역인 거 같다.

좋게 말하고 싶고 다정한 말만 하고, 듣고 싶은데 다소 부자연스럽다.

투박한 중년 아저씨가 내 속에 있어서.



작사가는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힌트를 남기는 사람에 가깝다.

듣는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발견하게 만드는 사람.

내가 설명하는 순간 그 노래는 내 것이 되어버리니까.

원래는 듣는 사람의 것이어야 하는데.


나는 그걸 주워 적는 사람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