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적 잠금 상태

byAX Engineer Lukas

뇌는 결핍을 감지했을 때 작동한다 2024년 기준 "쉬었음" 청년은 44만 명을 넘었다.

지금은 70만이라고 했던 것 같다.


취업을 포기한 것도 아니고, 구직활동을 중단한 것도 아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쉬고 있는 청년들. 전문가들은 이들에게 다양한 진단을 내린다. 도전 정신 결여. 과잉보호. 심리적 무기력. 다 맞는 말일 수 있다.


근데 원인을 거꾸로 읽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먼저 기기 얘기를 하자.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10번 연속으로 틀리면 기기가 잠긴다. 화면은 켜진다. 배터리도 있다. 하드웨어가 고장난 게 아니다. 그냥 잠겨있는 것이다.


잠금과 고장은 겉에서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상태인데, 고장난 기기는 분해해서 수리해야 한다. 잠긴 기기는 올바른 코드를 입력하면 된다. 나는 쉬었음 청년들을 볼 때마다 고장난 기기보다 잠긴 기기가 더 정확한 비유라고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잠긴 이유가 비밀번호를 너무 많이 틀려서가 아니라는 것, 인간의 뇌는 문제가 생겼을 때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배고프면 먹는다. 위험하면 도망친다. 외로우면 연결을 찾는다. 즉, 결핍이 행동을 만든다. 수십만 년 동안 검증된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만약 결핍이 없다면?


밥이 항상 차려져 있고, 갈등이 생기면 부모가 대신 해결해주고, 진로가 막히면 길을 놔준다면. 뇌는 문제를 감지하지 못한다. 감지하지 못하면 출발 신호가 나오지 않는다. 출발 신호가 없으면 인간은 멈춰있는다.

이것이 인지적 잠금 상태다.


게으른 게 아니다. 의지가 없는 게 아니다. 출발 신호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은 여기서 시작된다


아이를 사랑할수록,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미리 채워줄수록, 아이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줄어든다. 자기 힘으로 뭔가를 만들어본 적 없는 뇌는 근육이 없다. 근육이 없으면 무거운 걸 들기 전에 이미 그냥 내려놓는다.


최근 SNS에서 떠돌았던 오또케 오또케 영상만 봐도..뭐..그렇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러고 있다.


비슷한 일이 역사에도 있었다.


로마 공화정 말기, 귀족 자제들이 갑자기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노예 경제가 절정에 달하면서 모든 노동, 모든 문제 해결이 노예의 몫이 됐다. 귀족이 직접 손 쓸 일이 사라졌다. 처음엔 여유처럼 보였다. 나중에는 아무것도 못 하는 세대가 됐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로마 쇠락의 내부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한다.

강제된 풍요가 만들어낸 역설이다.


금융문맹과 쉬었음 청년, 같은 뿌리

먼저 확실히 해두고 싶다. 이 글은 쉬었음 청년을 불쌍한 피해자로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한 세대 위를 떠올렸다.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금융문맹. 주식, 채권, 부동산 투자. 아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다수는 저축만 했다. 은행에 넣어두면 된다고 배웠고, 그것만 알았다. 이자율도 좋았을 때니까. 자산이 어떻게 더 빠르게 불어나는지, 왜 인플레이션이 삶을 갉아먹는지 모르는 채로 수십 년을 살았다.


우리는 흔히 그 세대를 이해한다. "먹고 살기 바빠서." "그때는 정보가 없었어." 맞는 말이다. 당시에는 정보가 개인에게 흘러가기 어려운 구조였다. 맞다. 그런데 쉬었음 청년이 사는 지금은 다르다.


정보가 넘친다. 유튜브를 켜면 재테크 강의가 흘러넘치고, 검색 한 번이면 취업 로드맵, 창업 사례, 투자 전략이 나온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정보가 많을수록 결정을 더 미룬다.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표면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문제처럼 보이고 있다. 하나는 정보가 없어서, 다른 하나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근데 나는 본질이 같다고 생각한다. 바로 호기심이 없다는 것.


더 알고 싶다는 충동. 이게 맞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는 욕구. 틀려도 좋으니 한번 해보겠다는 감각. 금융문맹 세대에게도, 쉬었음 청년에게도, 이 호기심의 불꽃이 꺼져 있다.


금융문맹 어른들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쉬었음 청년들은? 모든 정보가 열려있는 환경에서도, 찾지 않는다.


두 세대의 공통점은 하나다. 정답지를 기다린다는 것.

누군가 정리해준 것. 검증된 것. 많이 선택한 것. 직접 의심해보고, 직접 틀려보고, 직접 다시 시도해보는 과정 없이 정답을 찾으려 한다. 그 정답지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금융문맹 세대에게 정답지는 "은행 저축"이었다. 쉬었음 청년에게 정답지는 아직 없다. 그래서 멈춰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

이 얘기가 부모를 탓하는 얘기로 들릴 수 있다. 그렇지 않다.

구조가 바뀌었다는 얘기다.


30년 전엔 대부분의 가정이 결핍을 안고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뭔가를 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근육을 만들었다. 지금은 다르다.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는 결핍이 구조적으로 차단된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예방된다.


아이의 인지적 근육이 만들어질 여지 자체가 줄어든다. 그걸 사랑으로 포장한다. 절대 사랑이 많아진 게 아니다. 결핍을 경험할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쉬었음 청년에게 "더 노력해라"고 말하는 건 잠긴 폰에 대고 "제발 켜져라"고 하는 것과 같다.

필요한 건 올바른 잠금 해제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결핍.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 도와주는 사람 없이 직접 부딪히는 경험. 실패했을 때 대신 처리해주지 않는 환경.


이 얘기를 쓰면서 솔직히 불편하다. 나도 한때는 그랬었으니까.

나도 그렇고 당사자들에게 너무 가혹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어서. 근데 더 불편한 건 아무도 이 구조를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인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거나, 정바카라 탓으로 돌리거나, 경기 탓으로 돌린다. 전부 맞는 말이다. 근데 뭔가 빠져 있다.


인지적 잠금 상태에 빠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결핍의 경험이다. 작은 거라도 좋으니,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실패하고, 스스로 일어나는 사이클. 그 사이클을 한 번 돌아본 뇌는 다르다.


출발 신호가 생긴다. 만약 주변에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주변 환경을 한번 보면 빠르게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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