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1
입이 근질근질했다. 말할까 말까의 문제는 아니다. 언제 말해야 가장 자연스럽고, 효과가 좋을지 타이밍을 봤다. 보좌관은 명함을 뒤집어 보며 말했다.
“그래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 기자님.”
지금이다.
“보좌관님. 사실 저 당원입니다. 고양시당에 있습니다.”
보좌관의 얼굴이 밝아졌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어이구, 그래요?”
보좌관은 바카라상 너머로 몸을 일으켜 두 손으로 태민의 손을 잡고 천천히 흔들었다.
“반가워요. 우리 더 자주 봅시다.”
태민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입꼬리에 힘을 줬다.
“말씀드릴까 말까 했습니다.”
“뭘 망설여요. 식구끼리.”
식구. 태민은 그 단어가 어색했지만 입꼬리의 힘을 조금 더 유지했다. 보좌관은 의원실 문밖까지 따라 나왔다.
“필요한 자료 있으면 연락해요. 농해수위 쪽은 내가 웬만한 건 다 보니까.”
“네.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유통 담당이면 식품 쪽도 많이 보겠네요?”
“네. 농식품부, 식약처 쪽도 같이 봅니다.”
“좋네. 요즘 먹는 게 정치예요.”
태민은 순간 보좌관을 다시 봤다.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먼저 들은 기분이었다. 정확히는 자기가 어렴풋이 원했던 생각이 누군가의 언어로 표현되며 구체화된 것이다. 보좌관과 인사를 나누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다가 의원실 쪽을 돌아봤다. 보좌관은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뒤 명함을 꺼냈다.
슬롯진보당 국회의원 강정우 의원실
보좌관 김성재
명함 뒷면에는 보좌관이 급하게 써준 휴대전화 번호가 있었다. 앞면에 인쇄된 번호와 다른 번호였다. 태민은 그 숫자를 한동안 바라봤다. 개인번호. 태민은 휴대전화에 저장했다.
김성재 보좌관_강정우 농해수위.
잠깐 생각하다, 이름 앞에 별표 하나를 붙였다.
*김성재 보좌관_강정우_농해수위
저장 버튼을 눌렀다. 국회의사당 건물 밖으로 나오자 바람이 셌다. 양손을 점퍼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회사 기자증이 손에 잡혔다. 처음 기자증을 받았을 때가 문득 떠올랐다. 그때는 퇴근할 때까지 기자증을 목에 걸고 다녔다. 회사 로고 아래에 자기 사진과 이름이 찍혀 있었다. 이태민 기자. 신기하고 설렜다. 기자증을 괜히 보고 또 봤었다.
언론사 시험을 준비할 때 스터디원 여섯 명 가운데 태민만 서울 소재 명문대 출신이 아니었다. 스터디 첫날 서로의 학교를 말할 때 태민은 자기 차례가 오기 전부터 목이 말랐다.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태민도 무표정하게 학교 이름을 말했다.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이상하게 그게 더 싫었다. 스터디는 매주 두 번씩 신촌의 한 카페에서 모였다. 주제를 정하고 토론을 한 후 논술을 쓰고 서로의 글을 평가했다. 어느 날은 능력주의가 공정한 슬롯를 만드는 가를 주제로 토론했다. 한 스터디원이 대학입시만큼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는 경쟁이라고 말했다. 태민은 반박했다. 출발선이 다른 경쟁에서 결과만으로 능력을 판단할 수는 없다고 했다. 얼마 전 읽은 바카라의 내용을 인용하며 교육과 계층 이동에 관해 한참 이야기했다.
“태민 씨. 지금 말한 내용과 관련한 바카라 좀 추천해 줄 수 있어요?”
연세대를 나온 스터디원이 물었다.
태민은 대수롭지 않게 바카라 제목 몇 개를 말했다.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시험을 위해 외운 지식이 아니었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혼자 찾아 읽은 바카라들이었다.
서울일보 최종 합격자 명단에 자기 이름을 봤을 때 가장 먼저 스터디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의 합격을 축하하는 자리에서도 스터디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누군가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고, 누군가는 축하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렇게 태민은 시간이 조금 지나고서야 편한 미소를 지었다.
태민의 그런 미소는 기자생활을 시작하고 오래가지 못했다. 수습기간이 끝나고 첫 부서 발령이 나던 날이었다. 편집국장이 태민과 동기들을 세워놓고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