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고양이로소이다 18편
“뭐야, 저 아저씨?”
“무슨 덩치가 저렇게 크냐.”
“조폭인가? 포스 장난 아닌데….”
쉬는 시간, 복도를 지나던 학생들이 거구의 남자를 흘끔거리며 소곤거렸다. 190센티미터를 훌쩍 넘어서는 커다란 키에 각이 잡힌 검은 양복, 거기에 눈가를 가린 선글라스까지. 옷 위로도 감춰지지 않는 단단한 체격과 얼굴 곳곳에 희미하게 남은 자잘한 흉터들 때문에 그저 걸어오기만 해도 위압감이 상당했다.
성철은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듯 큰 보폭으로 복도를 걸었다. 그가 창가 앞에 잠시 멈추자 근처에 있던 학생 몇 명이 슬그머니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빠!”
그 목소리에 성철의 얼굴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선글라스를 벗어 든 성철이 특유의 커다란 입매로 활짝 웃으며 다온을 돌아봤다.
“안 좋은 일로 학교까지 오게 해서 미안해. 바쁠 텐데….”
다온이 풀이 죽은 얼굴로 말하자 성철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무슨! 졸업식이나 입학식도 아닌 날에 딸 학교를 다 와보고. 아빠는 아주 설렌다.”
성철은 다온의 머리를 커다란 손으로 두어 번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무엇보다 우리 딸이 친구 도우려다가 생긴 일이잖아. 아빠는 오히려 칭찬해 주고 싶어.”
성철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
“아마 엄마도 자랑스러워했을 거다.”
“…그래도 미안해.”
다온이 고개를 숙였다. 성철은 대답 대신 딸의 머리를 다시 한번 토닥였다.
“잘 이야기하고 올 테니까 걱정 말고. 어서 교실 들어가 봐.”
“응. 아빠, 잘 이야기하고 와.”
학생부 상담실 앞에 선 성철이 씩 웃어 보였다. 다온은 몇 걸음 가다가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자꾸 뒤를 돌아보았고, 성철은 그런 딸을 안심시키려는 듯 보란 듯이 손을 크게 흔들어 주었다.
다온이 복도 끝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얼굴에서 웃음기가 천천히 걷혔다. 성철은 닫힌 상담실 문을 바라봤다. 대체 어떤 놈이 우리 딸을 건드렸나. 얼굴이나 한번 보자.
문을 열자 상담실 안에는 이미 먼저 와 있는 사람이 있었다. 큰 키에 세련된 숏컷을 한 사십 대 후반의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차하루 엄마입니다.”
차가운 인상과 달리 목소리는 쾌활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190이 넘는 거구의 성철을 보고 한 번쯤 주춤했을 법한데, 미숙은 별다른 기색 없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차하루라면 우리 딸을 도와줬다는 그 녀석이군. 성철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가 살짝 웃자 오른쪽 볼에 깊은 보조개가 패였다. 엄마를 빼닮은 다온에게서 성철을 닮은 몇 안 되는 부분 중 하나였다.
“강다온 아빠입니다. 댁의 아드님이 저희 딸을 도와줬다고 들었습니다. 뭐라고 감사 인사를 해야 할지.”
댁의 아드님. 미숙의 눈에 잠깐 낯선 기색이 스쳤다. 아직 어색하지만, 이상하게 듣기 좋았다. 별것도 아닌 말에 괜스레 미숙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그때 상담실 문이 열리며 학생부 교사가 들어왔다.
“아, 하루 어머님. 다온 아버님. 먼저 오셨네요.”
교사의 뒤에는 오십대 초반 쯤 되어 보이는 또 다른 여성이 함께 서 있었다.
“이쪽은 양치호 학생 어머님이십니다.”
아담한 체구에 둥근 이목구비였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흐트러짐 없는 옷차림에 손에 든 가방까지 한눈에도 꽤 신경 써 갖춘 모습이었다. 성철과 미숙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치호의 어머니는 성철을 보는 순간 잠깐 주춤했지만,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숙을 한 번 훑어보고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은 잠시 자리를 비켜 주셨으면 좋겠네요.”
앉자마자 그녀가 쏘아붙이듯 말했다.
“일단 저희 셋이서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교사가 난처한 기색으로 성철과 미숙을 번갈아 바라봤다. 미숙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성철도 뒤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문이 닫히자 치호의 어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제가 두 분을 뵙자고 한 건 저희 아들이 입은 정신적, 신체적 피해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예요.”
예상치 못한 발언에 성철의 표정이 굳었다.
“피해?”
“저희 치호가 차하루군 때문에 전치 2주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정신적인 충격도 상당하고요. 며칠 동안 학교에 나오지도 못했으니 학업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그녀는 손끝으로 바카라상을 천천히 두드렸다.
“학교에서 학폭 절차를 어떻게 진행하든 그건 별개고, 저희는 개인적으로 법적 조치를 취할 생각입니다. 이미 대형 로펌 변호사에게도 알아보고 있는 중이고요.”
그러고는 이번에는 성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다온 양도 마찬가지예요. 듣기로는 친구를 괴롭힐 생각도 없었던 우리 치호를 가해자로 몰았다던데.”
성철의 굵은 목덜미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뭐 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려는 순간, 미숙이 가볍게 손을 들었다.
“다온 아버님.”
성철이 못마땅한 얼굴로 미숙을 돌아봤다. 미숙은 가방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그의 앞에 내밀었다.
“저한테 맡겨 주시죠.”
성철이 명함을 내려다봤다.
강앤정 법률사무소.
김미숙.
파트너 변호사.
성철의 시선이 명함에서 미숙의 얼굴로 옮겨갔다. 잠시 뒤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나보다는 확실히 낫겠지.
“그럼 잠깐 나가 있겠습니다.”
성철이 자리를 뜨자 치호 어머니가 미숙을 가늠하듯 눈을 가늘게 떴다. 미숙은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얘기가 통하는 사람끼리 하는 게 빠를 것 같아서요.”
“…무슨 뜻이죠?”
“우선 치호군이 다쳤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유감입니다.”
‘유감’이라는 단어에 치호 어머니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유감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사과라….”
미숙이 작게 실소를 흘렸다.
“저도 학교 측 CCTV랑 사건 당시 학생들 진술을 미리 다 확인해 봤는데요.”
치호의 어머니가 입을 다물었다.
“하루가 먼저 공격한 장면은 어디에도 없더군요. 오히려 치호군이나 다른 학생들의 폭력을 막고 제지하는 쪽에 가까웠죠.”
미숙은 잠시 말을 멈추고 치호의 어머니를 바라봤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오히려 치호군이 하루의 얼굴을 주먹으로 먼저 가격했습니다.”
“그건….”
“입술이 터질 정도로요.”
미숙은 여전히 입가에 연한 미소를 띤 채였다.
“원하신다면 마음대로 진행하세요.”
“뭘 말입니까?”
“학교폭력 신고든, 민사든, 형사든.”
미숙이 가방에서 명함을 한 장 더 꺼내 테이블 위로 밀었다.
“저도 대응하면 되니까요.”
치호의 어머니는 한동안 명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바카라상을 두드리던 손가락도 어느새 멈춰 있었다. 미숙이 싱긋 웃었다.
“제가 주로 하는 건 M&A라 민형사 사건이 주력은 아닙니다만.”
잠시 말을 멈춘 미숙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래도 이 바닥에서 일한 지 20년은 좀 넘어서요.”
“….”
“그리고 제가.”
미숙이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싸워야 할 때는 꽤 열심히 싸우는 편입니다.”
웃는 낯으로 하는 말인데도 묘하게 서늘했다. 치호의 어머니가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러니까 말씀하신 법적 조치, 원하시면 진행하세요.”
미숙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대신 시작하시면 저희도 끝까지 갈 겁니다.”
치호 어머니의 턱선이 팽팽하게 굳었다.
“그리고 하나 더.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치호군이 하루와 다온 양에게 사과하도록 해주세요.”
“내가 왜…!”
치호 어머니가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 아들이 가해자인 걸로 학교폭력 신고 넣을 겁니다!”
미숙은 별다른 동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하시면 하세요. 저희도 하겠습니다.”
“뭐라고요?”
“하루 건, 다온 양 건. 그리고 준영 학생 건까지.”
미숙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준영 학생 보호자 쪽에도 이미 확인했습니다. 필요하다면 법적 절차에 협조하시겠다고 하더군요.”
치호 어머니의 얼굴이 굳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세 건을 각각 별개 사안으로 검토하게 될 수도 있겠네요.”
더 이상 치호 어머니의 입에서는 반박이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미숙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
“아이고.”
조금 난처하다는 듯 웃었다.
“벌써 8분이나 썼네요.”
“…뭐요?”
“제가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10분을 넘기지 않는 게 원칙이라.”
미숙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문 앞까지 간 그녀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아, 맞다.”
미숙이 돌아봤다.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빛에서는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아드님한테 꼭 전해주세요.”
“….”
“우리 하루든 다온 양이든, 한 번만 더 건드리면.”
잠깐의 틈을 두고 미숙이 말을 이었다.
“그때는 저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진흙탕 싸움 제대로 해드릴게요.”
그러고는 다시 씩 웃었다.
“그럼 이만.”
문이 닫히고, 또각또각 복도를 울리는 하이힐 소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치호의 어머니는 한동안 닫힌 문만 노려봤다. 그러다 테이블 위에 놓인 명함을 집어 들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며 얇은 종이가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