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2) 이상한 애

그는 고양이로소이다 17편

by사랑의 생존자

“5월인데, 중간에 가서 적응하는 데 문제없겠니?”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하루를 보며 아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미숙의 사무실 근처로 이사를 오면서 하루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전학을 가게 됐다.


하루는 대답 대신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별문제 없다는 뜻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프리랜서 사진사인 아빠를 따라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한 번씩 전학을 다녀본 터라 낯선 학교에 적응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빠의 걱정스러운 표정이 좀처럼 풀리지 않자 하루가 덧붙였다.


“민우 아시죠?”

“민우라면 이민우? 초등학교 때부터 너랑 같이 운동하러 다니던 친구?”

“네. 걔도 그 학교 다녀요.”

“아, 그래?”


그제야 아빠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하루가 현관문을 열려던 순간 뒤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어! 잠깐만!”


막 출근 준비를 마친 미숙이 구두 뒤축을 급하게 구겨 신으며 다가왔다.


“전학 첫날인데 내가 데려다줄게.”


하루는 차 키를 손가락에 건 채 서 있는 미숙을 한 번 바라보다 별말 없이 따라나섰다. 학교까지는 차로 십여 분 남짓, 차 안에는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만 낮게 맴돌았다. 교문 앞에 차가 멈추자 하루가 문을 열었다.


“잘 다녀와.”


막 내리려던 하루가 미숙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기요. 전학 서류요.”


하루는 아직 미숙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저기요’라고 불렀고, 미숙은 한 번도 그 호칭을 지적하지 않았다.


“아, 맞다. 여기.”


미숙이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더니 씩 웃었다.


“쫄지 말고. 파이팅, 차하루.”


하루는 말없이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차에서 내렸다. 문이 닫히자 차가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교문 안쪽으로 몇 걸음 걷던 하루가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미숙의 차는 이미 교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전학 첫날 해주는 말이 쫄지 말라니. 유치했다. 뭐, 그래도 나름의 응원인가. 하여튼 이상한 사람이다. 하루가 작게 피식 웃으며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교무실로 들어서자 삼십 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사람 좋은 얼굴로 하루를 맞았다.


“네가 전학 온 차하루구나. 내가 네 담임이야.”


그러다 하루의 얼굴을 한 번 훑어본 남자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근데… 너 엄청 잘생겼구나. 우리 반 애들 난리 나겠는데?”


담임이 장난스럽게 뭐라고 더 덧붙이려던 순간 옆에서 누군가 급하게 그를 불렀다.


“박 선생님! 이것 좀 빨리 봐주세요!”

“아, 잠깐만요.”


담임은 티백이 든 종이컵에 따뜻한 물을 따라 하루의 손에 쥐여주었다.


“저쪽 상담실 앞에서 잠깐 기다려줄래? 이거 마시면서.”


하루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 상담실 앞 소파에 앉았다. 지이잉.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민우였다.


[왔냐?]


이어 곧바로 메시지가 하나 더 들어왔다.


[벌써 잘생긴 전학생 왔다고 여자애들 난리 남.]


하루는 액정을 내려다보다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굳이 답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휴대폰을 그대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테이블 위에는 담임에게 받은 종이컵이 놓여 있었다. 물 위에 뜬 보리차 티백이 천천히 가라앉는 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희미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맞은편 상담실 문이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열려 있었다. 아, 여기 상담실이라고 했지.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 같아 하루는 얼른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냈다.


“이제 좀 진정됐니?”

“네, 샘. 놀라셨죠? 엄마가 돌아가시고 이렇게 울어본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 말이 유독 또렷하게 들려 이어폰을 꽂으려던 하루의 손이 멈췄다. 문틈 너머로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당연하지. 가족 같은 고양이가 갑자기 그렇게 됐는데.”

“근데 샘… 사실 저 처음부터 땡이를 좋아한 건 아니었어요.”

“그랬어?”

“네. 아빠가 엄마 대신 데려온 것 같아서요. 네가 뭔데 엄마 자리를 대신해? 약간 그런 느낌이었어요.”


여학생이 제 말이 우스운지 작게 웃었다.


“근데 실은 무서웠던 것 같아요.”

“뭐가?”

“또 소중한 게 생기는 게요. 엄마도 그렇게 좋아했는데 결국 떠났잖아요.”


잠시 말이 끊겼다.


“얘까지 엄청 좋아했다가 또 없어지면 어떡하지 싶어서요. 그래서 일부러 정을 안 주려고 했어요.”

“마음을 안 주려고 했구나.”

“네, 처음에는요. 근데… 그것도 좀 바보 같더라고요. 나중에 슬플까 봐 지금 좋아할 수 있는 걸 안 좋아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냥… 그런 것도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어떤 용기?”

“음…. 좋아할 때는 그냥 마음껏 좋아하는 용기?”


스스로 말하고도 조금 쑥스러운지 여학생이 웃었다.


“말해 놓고 보니까 좀 거창하네요.”

“아니. 선생님은 좋은 말 같은데?”

“그래요?”

“선생님이 전부터 생각했는데, 다온이는 참 용감해. 뭐랄까….”


잠시 말을 고르던 교사가 웃었다.


“장군감이랄까.”

“장군이요?”

“응. 전생에 장군이었을지도 몰라.”

“그거 칭찬이에요?”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함께 터졌다. 잠시 후 교사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래도 땡이가 엄마 빈자리를 조금은 채워줬겠네.”


이번에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요. 그건 좀 다른 것 같아요.”

“달라?”

“엄마 자리는 그대로거든요.”


잠깐의 틈을 두고 여학생이 덧붙였다.


“그냥 그 옆에 땡이 자리가 하나 더 생긴 거예요.”

“그럼 앞으로 또 다른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또 만들면 되죠!”


이번에는 망설임도 없었다.


“그렇게 계속 만들어도 돼?”

“왜요? 마음이 좁아서 자리세 받는 것도 아니잖아요.”

“역시 장군감이네.”


다시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엄마 자리는 그대로거든요.

그냥 그 옆에 땡이 자리가 하나 더 생긴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며칠째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미숙이 문득 떠올랐다. 하루는 손에 들고 있던 이어폰을 가만히 쥐었다.



“그래. 언제든 이야기할 곳이 필요하면 오고.”


곧이어 상담실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네, 샘. 감사합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새까만 머리에 하얀 피부, 단정한 교복 차림. 목소리만 들었을 때보다 훨씬 작은 여자애였다. 하루의 시선이 무심코 가슴께의 이름표로 향했다.


강다온.


조금 전 상담실 안에서 들었던 이름이었다.


“진짜 감사해요. 또 올게요!”


다온은 상담실 안을 향해 다시 인사하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러다 소파에 앉아 있던 하루의 무릎에 부딪쳤다. 찰랑. 손에 들고 있던 캔이 기울며 차가운 음료가 하루의 하얀 운동화 위로 쏟아졌다.


“으아, 미안!”


다온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젖은 운동화와 반쯤 남은 캔을 번갈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떡해. 신발 다 젖었잖아. 진짜 미안.”


하루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 끝자락에 튄 물기를 툭툭 털어냈다.


“괜찮아.”

“그래도….”


다온은 젖은 운동화를 내려다보며 입술만 달싹였다. 하루는 자신보다 훨씬 밑에 있는 다온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작은데. 장군이라니.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때 다온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가방 안을 급하게 뒤적였다.


“아, 잠깐만!”


잠시 후 캔 하나를 꺼내 하루에게 내밀었다.


“이걸로 사과가 되진 않겠지만, 이거 진짜 맛있거든. 마침 원 플러스 원이어서 하나 더 있어.”


파인애플맛 탄산수였다. 하루는 얼떨결에 그걸 받아들었다.


“진짜 미안.”


다온이 민망한 듯 배시시 웃자, 오른쪽 볼에 작은 보조개가 깊게 패었다. 하루의 시선이 잠시 그곳에 머물렀다. 때마침 수업 종이 울렸다.

“아, 어떡해. 늦었다.”


다온은 황급히 가방끈을 고쳐 메고 복도를 뛰어갔다. 그러다 몇 걸음 못 가 다시 뒤를 돌아봤다.


“저기, 진짜 미안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외치고는 복도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 하루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치이익. 하루가 다온이 건넨 탄산수 캔을 땄다. 목을 타고 내려간 탄산이 알싸하게 터지고 뒤이어 파인애플 향이 입안에 퍼졌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하루는 손에 든 캔을 한 번 내려다봤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머릿속이 한결 가벼워진 듯한 기분이었다. 이상한 애네.


“…강다온.”


하루는 그 이름을 조용히 한 번 되뇌고는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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