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게

그는 고양이로소이다 15편

by사랑의 생존자


“며칠 전에 치호네 어머니 학교 오셨던 건 알고 있지?”


쉬는 시간, 담임 선생님이 다온을 따로 불러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모를 리가 없었다. 소각장 사건 다음 날, 양치호네 엄마가 학교를 찾아와 교무실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러댔다. 덕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미 전교에 소문이 쫙 퍼진 뒤였다.


“치호네 어머니가 다온이네 부모님을 한번 뵙고 싶어 하셔. 어른들끼리 이야기할 부분이 있다고 해서….”


말끝을 흐리며 담임은 다온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아버님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

“네, 선생님.”

“그래. 그럼 이틀 뒤 방과 후에 오시는 걸로 말씀드리면 될 것 같아.”


다온은 별다른 내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자, 담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양치호의 어머니는 제 아들이 일방적인 피해자라 주장하며 학교폭력 신고는 물론 형사 고소까지 운운하는 중이었다. 상대가 학생이든 교사든 아들 일이라면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라 교사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한 모양이었다.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픈지 담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저…선생님.”


다온의 목소리에 담임이 고개를 들었다.


“응?”

“혹시 8반 차하루 부모님도 오시나요?”

“응. 듣기로는 하루네 어머니가 오신다고 하시더라.”

“…어머니요?”


다온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분명 차하루는 엄마가….


“왜 그러니?”

“아, 아니에요.”


의아하게 바라보는 담임의 시선에 다온은 뒤늦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한 발 물러섰다.


“그럼 가볼게요, 선생님.”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돌아서는 다온을 걱정스레 보며 담임 선생님은 다시 한 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가 온다니… 대체….”


조용한 점심시간의 동아리실. 다온은 바카라상 위에 얼굴을 묻은 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분명 차하루는 열두 살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학교에 온다니. 그럼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건가? 아니. 그것도 이상했다. 대체 그런 걸 왜 거짓말해. 지금까지 봐온 차하루는 그런 일로 거짓말을 할 사람도 아니었다.


“아… 모르겠다.”


다온은 한쪽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탄산수 한 캔을 꺼내 뚜껑을 땄다. 치이익. 청량한 소리가 조용한 동아리실에 퍼졌다. 다온은 차가운 탄산수를 연달아 두 모금 들이켰다.


그래, 혼자 백날 고민해서 뭐 하나. 답이 안 나오면 당사자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는 일이었다. 남은 탄산수를 꿀꺽꿀꺽 들이켜던 그때, 드르륵. 동아리실 문이 열렸다. 다온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켁!”


갑작스러운 당사자의 등장에 다온은 그대로 사레가 들렸다.


“콜록! 콜록,콜록!”


다온이 가슴을 두드리며 연신 기침을 해대자, 느긋하게 들어오던 하루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망설임 없이 다온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괜찮아?”

“응, 응. 괜찮아. 콜록.”


하루의 커다란 손이 다온의 등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그렇게 한참을 기침하고서야 겨우 숨이 돌아왔다. 다온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등으로 쓱 닦았다. 하루는 여전히 바로 옆에서 다온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응. 괜찮아. 정말로.”


다온이 하루를 보며 작게 웃었다. 그때도 그랬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제일 먼저 괜찮냐고 물어봤지.


이제 괜찮아.


그 말을 듣자마자 그렇게 안심이 됐었는데. 하루가 아직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자 다온은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아, 미안. 딴생각하다가 네가 갑자기 들어오니까 놀랐나 봐.”


하루는 별말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뒷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손수건이었다. 반듯하게 접힌 깨끗한 천에서 은은한 섬유유연제 향이 났다. 차하루에게서 종종 나던 향이었다. 다온은 손수건으로 입가에 묻은 탄산수를 닦았다.


“고마워. 근데 무슨 남자 고등학생이 손수건을 갖고 다녀?”

“난 갖고 다녀.”

“왜?”


하루가 잠깐 생각했다.


“…환경 보호 차원이랄까.”

“환경 보호?”


하루는 꽤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온은 잠시 그 얼굴을 바라보다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가끔 보면 엉뚱한 구석이 있다니까.”


웃음을 터뜨린 다온의 오른쪽 볼에 보조개가 깊게 들어갔다. 하루의 시선이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 그러다 다온과 눈이 마주치자 슬쩍 시선을 피했다. 하루는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탄산수 한 캔을 꺼내 뚜껑을 땄다. 치이익. 맑은 소리가 조용한 동아리실에 한 번 더 울렸다. 하루가 막 캔을 입에 대려는 순간, 다온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차하루.”


하루가 손을 멈췄다.


“나 너한테 궁금한 게 있었는데.”


무슨 말이냐는 듯 하루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다온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니까, 저번에….”


바로 그 순간, 천장 스피커에서 짧은 잡음이 흘러나왔다. 곧이어 익숙하고 매끄러운 목소리가 동아리실 안을 채웠다.


[안녕하세요. 따뜻하기만 했던 봄바람이 이제는 꽤 후덥지근해졌죠?]


다온이 하려던 말을 멈추고 스피커를 올려다보았다.


“어, 도경이다.”


하루의 시선이 스피커 쪽으로 향했다.


[오늘 첫 번째 신청곡은 악동뮤지션의 노래네요. 요즘 아주 인기 있는 곡이죠. 바로 들어보시죠.]


곧 잔잔한 선율이 동아리실 안으로 흘러들었다. 다온도 하루도 자연스럽게 말을 멈췄다. 잠시 음악을 듣던 다온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 노래, 내가 진짜 좋아하는 곡인데.”


창밖을 바라보던 하루가 슬그머니 다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게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그 부분 있잖아.”


다온은 잠시 음악을 듣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나니까 뭐랄까… 가슴에 메워지지 않는 구멍이 하나 생긴 것 같더라고.”


하루는 아무 말 없이 다온을 바라봤다.


“가끔은 너무 보고 싶어서 정말 견딜 수가 없는 거야.”


다온의 손가락이 탄산수 캔 위를 천천히 쓸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 노래를 들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다온이 잠깐 숨을 골랐다.


“엄마랑 함께했던 시간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면, 돌아가시고 나서도 이렇게까지 슬프지는 않았겠지. 아, 나 엄마랑 정말 행복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상하게 위로가 되더라고.”


하루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다온은 제 손끝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래서 그런 생각도 했어. 누군가를 사랑하고 같이 행복하려면, 언젠가 따라올지도 모르는 슬픔까지 감당할 용기가 있어야 하는 거구나.”


잠깐 음악 소리만 두 사람 사이를 흘렀다.


“다음에 누군가를 많이 좋아하게 되면, 나중에 잃을까 봐 미리 겁내지는 않으려고.”


다온이 고개를 들었다.


“좋아할 때는 그냥 마음껏 좋아하려고. 용기있게!”


그러고는 조금 멋쩍어진 듯 웃었다. 하루는 다온이 말을 끝낼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헤헤. 내가 말이 많았지?”


다온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루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멋있다고 생각해.”

“응?”


다온의 손이 멈칫했다. 하루는 다온을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 말했다.


“난 진짜 네가 멋있다고 생각해.”


짧은 침묵 뒤에 덧붙였다.


“나도 너처럼 용기 있게 살고 싶어.”


그러고는 웃었다. 평소처럼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는 웃음이 아니었다. 눈매까지 느슨하게 내려앉은, 따뜻한 미소였다.


얘, 또 이렇게 웃네.


다온은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괜히 코끝이 찡해져 시선을 내렸다.


이상했다. 소각장에서도 그랬다. 괜찮냐고 묻던 낮은 목소리도. 가끔씩 보여주는 저 미소도. 차하루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눈물이 날 만큼. 그러다 하루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근데.”

“응?”

“아까 하려던 말 뭐야?”

“아!”


다온은 그제야 원래 하려던 질문을 떠올렸다. 잠시 우물쭈물하던 다온은 하루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이번에 학교에 너희 어머니가 오신다는 얘기를 들었거든. 근데….”


다온이 차마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자, 하루는 무슨 뜻인지 금세 알아들은 듯 짧게 숨을 내쉬었다.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러다 하루가 손에 든 탄산수 캔을 손끝으로 천천히 굴리며 입을 열었다.


“작년에 아빠가 재혼하셨어.”


다온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

“그러니까….”


하루가 잠시 말을 골랐다.


“새엄마랄까.”


짧은 침묵 뒤, 하루는 캔을 내려다본 채 덧붙였다.


“뭐,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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