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고양이로소이다 13편
“야! 거기!”
다온이 호기롭게 외치자 목소리가 소각장 뒤편에 쩌렁쩌렁 울렸다. 박준영에게 쏠려 있던 시선이 일제히 다온에게 향했다. 일단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근데 이제 어떡하지.
남학생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자신에게 꽂히는 순간, 다온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뭐야, 쟤는. 딱 그렇게 말하는 눈빛이었다. 아, 미치겠네. 다온은 땀이 밴 손바닥을 몰래 치마 옆에 문질렀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최대한 끌어올리며 한 손을 들었다.
“안… 안녕? 뭐 재밌는 거 보나 봐. 같이 보자.”
잠깐 정적이 흘렀다. 이내 조롱 어린 실소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야, 뭐래?”
“뭘 같이 보재.”
“저기, 이쁜아. 얼른 교실로 들어가세요. 선생님한테 혼나기 전에.”
“하, 하하….”
다온은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그리고 녀석들이 저희끼리 낄낄거리며 방심한 사이, 슬쩍 틈을 살피며 준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굳어 있던 준영의 곁에 다다르자, 다온이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도망가.”
준영이 당황한 얼굴로 다온을 돌아봤다. 다온이 여전히 양치호 무리를 향해 억지웃음을 띤 채 다시 낮게 말했다.
“양치호가 너한테 위험한 짓 하려고 해. 지금 뛰어.”
준영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상황을 전부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양치호’와 ‘위험하다’는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바로 그 순간, 딩동댕동.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준영이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얼른.”
다온이 짧게 덧붙이자, 준영은 돌아볼 겨를도 없이 몸을 돌렸다.
“야! 뭐야, 박준영 저 새끼 어디 가!”
남학생 하나가 뒤늦게 몇 걸음 쫓아갔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준영은 전력으로 달려 건물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
“야, 치호야. 쟤가 박준영한테 뭐라고 하니까 바로 튀었는데?”
양치호는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채, 턱을 까딱해 다온을 가리켰다.
“뭐야. 넌?”
다온은 바싹 마른 침을 한 번 삼켰다. 덜덜 떨리는 무릎에 하얗게 힘을 주었다.
“그…너희 얘기 다 들었는데.”
말을 뱉자 생각했던 것보다 목소리가 볼품없이 떨렸다. 다온은 애써 가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그런 위험한 걸 친구한테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뭐래, 저 찐따년이….”
무리 중 서 있던 남학생 하나가 성큼 앞으로 나서려 하자, 양치호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됐어.”
그러고는 직접 다온 쪽으로 걸어왔다. 한 걸음, 두 걸음. 거리가 좁혀질수록 매캐하고 옅은 담배 냄새가 짙게 피어올랐다.
다온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팔꿈치가 거친 소각장 담벼락에 길게 쓸렸다. 따끔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확인할 정신 따위는 없었다. 양치호가 바로 코앞에 멈춰 섰다. 다온이 고개를 채 들기도 전에, 억센 손이 불쑥 뻗어 나왔다.
“… !”
턱이 붙잡힌 다온의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양치호의 시선이 다온의 얼굴을 훑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가까이서 보니까 꽤 예쁘장하네.”
살갗 위로 징그러운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불쾌감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다온은 곧바로 양치호의 손등을 탁 소리가 나게 쳐냈다.
“뭐, 뭐 하는 거야!”
양치호는 쳐내진 손등을 한 번 내려다보더니, 피식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너 때문에 박준영 놓쳤잖아.”
“그…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양치호가 다시 한 걸음 바짝 다가왔다.
“네가 바카라임져야지.”
다온의 입에서 어이없는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무서워서 바들바들 떨리는 와중에도 기가 찼다.
“내가 왜?”
“걔 대신 네가 좀 놀아주면 되겠네.”
주변에서 낮은 웃음이 터졌다. 하나둘 다가온 남학생들이 어느새 다온의 사방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다온이 빠져나갈 구멍을 찾듯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이거, 진짜 위험하다. 다온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었다.
“소, 소리 지를 거야.”
“질러봐.”
양치호가 비꼬듯 웃었다.
“수업 시작했잖아. 여기서 악을 써 봐야 누가 듣겠냐?”
남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가까이서 뒤섞였다. 멀리서 지켜볼 때와는 전혀 달랐다. 무리에게 완전히 둘러싸이고 나니 몸이 굳어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도망가야 하는데.
박치기라도 하고 뛰어야 하는데.
머릿속에서는 몇 번이나 움직였지만 정작 다리는 바닥에 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때 양치호가 얼굴을 불쑥 가까이 들이밀었다.
“뭘 그렇게 겁을 먹고 그래.”
다온의 숨이 멎은 듯 쳐다보자,양치호가 낮게 웃었다.
“오빠랑 좀 놀아볼래?”
“저… 저리 가!”
더 생각할 틈도 없었다.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다온은 있는 힘껏 이마를 들이박았다.
‘퍽!’
“악!”
양치호가 코를 감싸 쥔 채 비틀비틀 뒤로 물러섰다. 주변을 채우던 저급한 웃음소리가 단번에 뚝 끊겼다. 다온 역시 얼얼한 이마를 감싸며 한 발 물러섰다. 눈앞이 순간 찡하게 울렸다. 으…아파. 생각보다 훨씬 아팠다.
양치호가 코를 쥐며 천천히 손을 내렸다. 손바닥에 붉은 피가 지저분하게 묻어 있었다.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이 다온을 향했다.
“씨발, 저년 잡아.”
양치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학생 둘이 곧장 다온에게 달려들었다.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다리가 무겁게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한 녀석의 손이 코앞까지 뻗어왔다. 다온은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퍽—!’
둔탁하고 묵직한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 어디에도 아무런 충격이 닿지 않았다. 다온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방금까지 자신을 향해 손을 뻗던 남학생이 몇 걸음 떨어진 흙바닥에 볼품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뭐야, 이게 지금 무슨….
다른 한 명이 욕설을 내뱉으며 다온쪽으로 달려들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다온 앞을 가로막았다. 뻗어오던 상대의 팔이 거칠게 쳐내졌다. 이어 어깨를 밀어내는 짧은 동작 하나에 남학생의 몸이 휘청했다. 달려오던 힘을 이기지 못한 녀석이 그대로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다.
‘쿵!’
모든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다온은 영문을 몰라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강다온.”
다온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차하루가 서있었다.
…쟤가 왜 여기 있어.
어떻게.
여길 어떻게 알고.
뛰어왔는지 앞머리는 제멋대로 흐트러져 있었고, 숨을 고를 때마다 어깨가 작게 오르내렸다. 하루는 바닥에 나뒹군 남학생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곧장 다온에게 걸어왔다.
“괜찮아?”
다온은 대답하지 못했다. 하루의 시선이 빠르게 다온의 얼굴과 어깨, 팔을 훑었다.
“어디 다친 데 있어?”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아… 아니.”
대답하고 나서야 자신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으려는데, 무릎에서 스르르 힘이 빠져나갔다. 지금까지 버티고 있던 긴장의 끈이 한순간에 툭 하고 끊어진 것 같았다.
“하….”
참고 있던 숨이 한꺼번에 새어 나왔다. 몸이 앞으로 기울자 하루가 곧바로 다온의 어깨를 받쳤다. 다온은 저도 모르게 하루의 교복 소매를 움켜쥐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시끄럽던 주변 소리가 이상할 만큼 멀어졌다.
“이제 괜찮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아. 왜 지금 눈물이 나. 안 울려고 입술까지 꽉 다물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다온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하루는 아무 말 없이 힘이 풀린 다온을 받쳤다. 그러다 시선이 다온의 팔꿈치에 멈췄다. 담벼락에 쓸려 살갗이 붉게 까져 있었다. 그 위로 작은 핏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가고 있었다.
다온을 받치고 있던 하루의 손에 천천히 힘이 들어갔다. 손등 위로 푸른 핏줄이 선명하게 돋았다.
이번 편은 어설픈 액션물같아서 쓰는데 은근히 재밌었습니다.
퍽, 슝, 팍....ㅎㅎ
한때 이연걸 팬으로써...신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