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그는 고양이로소이다 12편

by사랑의 생존자


화단 근처 소각장에 도착한 다온은 들고 있던 봉투를 안으로 툭 던져 넣었다. 손바닥에 묻은 흙을 탁탁 털고 손목시계를 흘끗 내려다봤다. 십 분쯤 남았네. 서두르면 점심은 먹을 수 있겠는데….


급식실로 가기 위해 몸을 돌리려던 그때였다. 소각장 담벼락 뒤편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다온이 벽 너머로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남학생 몇 명이 한데 모여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낄낄대고 있었다.


“이게 진짜 되네? 존나 웃기네, 이거.”

“야, 이거 합성 아니지?”

“합성은 무슨. 찐이라니까? 나 주짓수 다니는 거 알지?”


다온은 미간을 찌푸렸다. 뭔지는 몰라도 무슨 냄새나는 소각장 뒤까지 와서 저걸 보고 있대. 한눈에 봐도 괜히 엮이면 피곤할 타입들이었다. 다온이 작게 고개를 저으며 돌아서려는데, 휴대폰을 쥔 남학생이 화면을 쿡쿡 가리키며 열을 올렸다.


“이게 ‘힐훅’이라는 건데, 무릎을 억지로 비틀어서 꺾는 기술이거든. 어제 길 가다가 취해서 비틀거리는 노친네 하나 있길래 장난 좀 쳐봤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폰 스피커에서 짧은 비명에 이어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 씨. 여기. 여기 소리.”

“뭐야. 이거 무릎 돌아가는 소리야?”


남학생들이 다시 낄낄거렸다. 다온은 밥 먹으러 가려던 것도 잊은 채 그 자리에 굳었다. 뭐야. 저것들, 진짜 제정신 아니잖아.


“아, 그건 됐고. 지금부터 내가 더 재밌는 거 보여줄게.”


휴대폰을 든 남학생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박준영 이 새끼는 오기로 해놓고 왜 이렇게 늦어?”

“박준영? 그 찐따 새끼? 걔는 왜?”

“초크 한 번 걸어보려고.”

“뭐?”

“진짜 기절하나 안 하나 보게.”


다온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표정이 싹 사라졌다. 초크?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뭔지는 몰랐다. 그래도 위험한 느낌만큼은 확실했다. 다온은 벽 뒤로 몸을 조금 더 숨긴 채 휴대폰을 꺼냈다. 검색창에 ‘주짓수 초크’를 입력했다.


[경동맥을 압박해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 의식을 잃을 수 있으며, 자칫하면 뇌 손상이나 치명적인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


화면을 내리던 손가락이 멈췄다. 이걸 사람한테 한다고? 고작 재미로?


“야, 그거 잘못하면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니냐?”


옆에 있던 녀석 하나가 웃으며 물었다.


“살살하면 되지. 설마 진짜 뒤지겠냐?”

“미친 새끼.”


낄낄거리는 소리가 인적 없는 소각장 뒤편에 낮게 맴돌았다. 다온은 벽에 몸을 붙인 채 휴대폰을 들고 있는 남학생의 가슴팍을 바라봤다. 거리가 있어 명찰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자 세 글자가 겨우 눈에 들어왔다.


양치호. 다온은 입안으로 그 이름을 한 번 되뇌었다. 생긴 것도 이름도 완전 양아치네. 처음에는 그냥 쓰레기인 줄 알았더니….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였다. 다온은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근데 이 새끼 왜 이렇게 안 와? 점심시간 다 끝나가는데.”

“야, 저기 온다, 저기!”

“아, 존나 재밌겠다. 내가 확실하게 찍어놓을게.”


무리 중 한 명이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다온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들이 바라보는 쪽을 따라갔다. 소각장 끝에서 작고 마른 체구에 안경을 쓴 남학생 하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걸어오는 내내 주변을 불안하게 살피는 기색이 역력했다.

“박준영! 빨리 안 튀어와?!”


양치호의 고함에 준영이 화들짝 놀라더니 걸음이 급격히 빨라졌다. 거의 뛰다시피 다가오면서도 고개는 바닥으로 푹 꺾여 있었다. 다온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진짜 하려는 거야. 선생님한테 알리러 갈까. 아니, 그사이에 저 애한테 무슨 짓이라도 하면? 그때 가서 막기엔 늦는다. 다온은 곧바로 도경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긴급. 소각장으로 학생부 샘 모시고 와줘.]


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일단 선생님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했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다온은 주먹을 한 번 꽉 쥐었다가 폈다. 짧게 숨을 들이마신 뒤, 벽에서 몸을 떼어냈다. 그리고 남학생들을 향해 성큼 걸어 나갔다.


“야! 거기!”






“강다온 아직도 못 만났어?”


수미의 물음에 도경은 대답 대신 고개를 내저었다. 손에 쥔 휴대폰 화면만 의미 없이 껐다 켰다 했다. 방송부 활동 때문에 늘 늦게 끝나는 건 도경 쪽이었다. 점심시간이면 보통 다온이 먼저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고,어디 다른 데를 가더라도 연락 한 번 없이 사라진 적은 거의 없었다.


교실에도 없고, 동아리실에도 없고. 강다온이 밥을 거르는 애는 아닌데. 대체 어디 간 거야. 배 아파서 화장실이라도 갔나. 도경이 복도 쪽으로 고개를 내밀어 양옆을 훑었다.


지이잉.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별생각 없이 화면을 확인하던 도경의 손이 멈췄다.


[긴급. 소각장으로 학생부 샘 모시고 와줘.]

“뭐야? 뭔데 갑자기 심각해져?”


수미가 옆에서 화면을 들여다봤다.


“…강다온이 학생부 샘 데리고 소각장으로 오래.”

“소각장? 거길 왜?”


도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화면에 뜬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읽었다. 긴급. 다온이 저런 말을 아무 이유 없이 붙일 애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수미가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들었다.


“나 아까 양치호네 무리 소각장 쪽으로 가는 거 봤는데?”


도경이 홱 돌아봤다.


“뭐? 누구?”


양치호. 이름만 들어도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작년에 도경에게 고백했다가 차인 뒤로도 몇 달이나 귀찮게 따라다니던 놈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질색이었지만 도경이 양치호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약한 애를 골라 괴롭히는 걸 놀이처럼 여기는 인간이었다.

“야, 걔네 요즘도 애들 건드리고 다닌다던데… 다온이 거기 혼자 있는 거 아니겠지?”


수미가 도경의 교복 소매 끝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기며 목소리를 낮췄다. 도경은 곧바로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 채 오 분도 남지 않았다. 학생부 선생님을 찾아 소각장까지 데려가려면 시간이 걸린다.


도경은 짧게 욕설을 삼켰다. 아, 강다온. 또 어디서 오지랖을 부리고 있는 거야. 어릴 때부터 그랬다. 누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면 무서워하면서도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도경은 긴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넘겼다.

“김수미! 너 일단 무조건 학생부 선생님 찾아서 소각장으로 와. 최대한 빨리!”

“뭐? 너 거기 혼자 가려고? 알잖아. 양치호 걔네 진짜 질 안 좋아….”

“그건….”


대답하려던 도경의 시선이 운동장 한쪽에 멈췄다. 농구 골대 아래에서 여유롭게 공을 튕기고 있는 차하루가 보였다. 도경은 하루를 빠르게 위아래로 훑었다. 차하루, 저거 허우대 하나는 확실하지.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게다가 요 며칠 하는 꼴을 보면 적어도 강다온 일이라면 모른 척할 것 같지는 않았다. 도경은 곧장 방향을 틀었다.


“덩치 큰 놈 하나 데려갈 테니까 걱정 말고 학생부 샘부터 찾아!”

“뭐? 야, 서도경!”


도경은 소리치는 수미를 뒤로한 채 운동장을 질주했다.




“야! 차하루!”


운동장을 가로지른 목소리에 슛을 던지려던 하루가 동작을 멈췄다. 들고 있던 농구공이 바닥에 퉁, 하고 떨어졌다. 하루는 한 번 튀어 오른 공을 한 손으로 받아들며 고개를 돌렸다.


“뭐야? 쟤 서도경 아니냐?”


옆에 있던 민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둘의 앞까지 달려온 도경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곧장 하루의 팔을 잡았다.


“야. 나랑 좀 가자.”

“어딜.”

“설명할 시간 없어. 빨리.”


도경이 다짜고짜 팔을 잡아끌자 하루가 짧게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인데.”

“강다온.”


하루의 시선이 곧장 도경에게 향했다.


“지금 위험하다고. 빨리—”

“어디로 가야 해?”


생각보다 빠른 반응에 도경이 잠깐 눈을 깜빡였다.


“저기. 소각장.”


도경이 손을 들어 방향을 가리켰다. 하루는 더 묻지 않고, 농구공을 민우에게 던지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운동화 밑창이 바닥을 거칠게 긁었다. 다음 순간, 하루는 이미 소각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야! 차하루! 어디 가는데! 이제 곧 종 친다고!”


도경도 뒤따라 뛰려다 소리치는 민우를 돌아봤다. 차하루만큼 덩치가 컸다. …한 명보다는 두 명이 낫겠지. 도경은 민우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


“너도 와.”

“어? 어딜?”

“설명은 뛰면서 할게!”

“뭔 설명을— 야!”


도경은 영문도 모르는 민우를 끌고 달렸다. 하루는 벌써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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