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고양이로소이다 7편
“이게 다 뭐야!?”
아침 등교 시간, 학생들로 북적이던 신발장 앞에 도경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지나가던 아이들 몇몇이 놀란 표정으로 흘끗 돌아보았고, 그 옆에서 다온은 멍한 얼굴로 제 신발장 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겨진 휴지. 누가 마시다 던져 넣은 듯 찌그러진 우유갑. 그리고 운동화 바로 옆에는 깨진 계란 하나가 노른자를 터뜨린 채 질척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반쯤 열린 신발장 안이 엉망이었다.
“90년대 아침 드라마도 아니고, 요즘 세상에 대체 누가 이딴 짓을….”
도경이 기가 막힌 듯 허리에 손을 얹었다.
“차하루 걔가 무슨 아이돌이라도 되면 말을 안 해! 밥 한 번 같이 먹었다고 이 지경을 만들어 놔?”
신발장 안을 다시 본 도경의 목소리가 한층 날카로워졌다.
“진짜 미친 거 아냐. 아, 진짜. 이걸 어떻게 치워.”
도경이 가방에 있던 휴지를 잔뜩 뽑아 들고 신발장 안으로 손을 뻗으려던 참이었다. 다온이 안쪽에 처박혀 있던 우유갑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우유갑 아래 깔려 있던 구깃구깃한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종이 위에는,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삐뚤투뚤한 글씨가 박혀 있었다.
‘나대지 마. 못생긴 게.’
도경의 손이 허공에서 딱 멈췄다. 조금 전까지 쏟아내던 말도 함께 끊겼다.
“…야. 잠깐만.”
도경은 들고 있던 휴지를 내려놓았다. 먼저 다온의 얼굴을 한번 살피더니 곧바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 사진부터 찍자.”
찰칵, 찰칵. 엉망이 된 신발장부터 바닥에 떨어진 쪽지까지 몇 장을 연달아 찍었다.
“그리고 이것도 버리지 말고. CCTV 확인해 보자. 누가 했는지 잡히면 바로 선생님한테 얘기하고.”
아까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낮아진 목소리가 더 단호했다.
“이건 장난 아니야. 학폭으로 넘겨도 할 말 없어.”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다온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신발장 앞에 쪼그려 앉은 채 바닥에 떨어진 쪽지만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도경이 슬그머니 다온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야.”
아무런 반응이 없자, 도경이 다온의 어깨를 토닥토닥 건드렸다.
“괜찮아. 강다온, 괜히 쫄지 마. 내가 있잖아.”
그제야 다온이 고개를 들었다. 도경을 한번 보고. 다시 쪽지를 보고. 한동안 잠자코 있더니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근데 이거 진짜 드라마 같다.”
“뭐?”
“이런 거 원래 드라마나 영화 보면 예쁜 주인공들이 당하는 거 아니야? 막 미드에 학교 퀸카 같은 애들.”
다온은 쪽지를 집어 손가락 사이에 슬쩍 끼워 넣었다. 그러더니 제법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왠지 나, 진짜 퀸카된 기분.”
배시시 웃는 다온의 오른쪽 뺨에 보조개가 쏙 들어갔다. 도경은 황당하다는 눈으로 그런 다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걱정했던 시간이 조금 아까워졌다. 도경은 천천히 손바닥으로 제 이마를 짚었다.
“강다온. 너 지금 진짜 그럴 때가 아니—”
“신발장 앞에서 둘이 아침부터 뭐 하냐?”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김수미였다. 수미는 둘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다가, 신발장 안의 참혹한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건 좀 심한데.”
“그러니까.”
도경이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증거 사진은 다 찍어놨어. 당장 CCTV부터 확인할 거고.”
수미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발장 안을 조금 더 자세히 살피던 수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와, 근데 누가 이렇게 구시대적인 발상을….”
수미는 고개를 들어 복도 천장 구석을 한 번 쓱 둘러보았다.
“근데 여기, 딱 보니까 CCTV 사각지대 같은데.”
도경도 덩달아 천장 쪽을 올려다보았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이런 짓을 하면서 CCTV 위치 정도도 확인하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카톡이나 문자 대신 굳이 손으로 쓴 쪽지를 넣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충동적으로 벌인 장난 같지는 않았다. 잠시 신발장을 바라보던 수미가 다온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근데 이거, 범인 한 명 잡는다고 깔끔하게 끝날 것 같지는 않은데.”
“뭐가?”
수미가 팔짱을 끼며 턱짓으로 엉망이 된 신발장을 가리켰다.
“지금 온 학교에 너랑 차하루 썸 탄다는 소문 파다하게 돌고 있는 거 알지?”
“썸?”
다온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그게 무슨….”
수미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야, 차하루 말이야. 걔는 그냥 인기 좀 많은 애가 아니야. 우리 학교에서는 거의 아이돌급이라고.”
수미의 시선이 신발장 아래로 떨어졌다. 터진 계란이 운동화 옆으로 끈적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좋아하는 애가 많다는 건, 그중에 저런 이상한 짓하는 애들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고.”
수미가 다시 다온을 바라봤다.
“범인을 잡는다고 쳐도, 너희 둘이 썸 탄다는 소문이 계속 돌면 비슷한 일이 또 없으리란 보장은 없잖아. 이런 짓까지는 아니더라도 네 학교 생활이 꽤 피곤해질걸?”
도경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천천히 내렸다.
“…듣고 보니 그러네.”
범인을 찾는 건 찾는 거고. 우선 당장 타오르고 있는 소문의 불씨부터 꺼뜨리는 게 급선무였다. 그때 다온이 심각해진 두 사람 사이로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저기, 얘들아.”
둘의 시선이 동시에 다온에게 꽂혔다.
“근데 나, 차하루랑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닌데?”
“둘이 급식실에서 같이 밥 먹었다며?”
“…그건 그냥 어쩌다 딱 한 번 같이 먹은 건데?”
수미와 도경이 잠깐 서로를 봤다.
“그게 문제야.”
“그게 제일 문제거든.”
정확하게 겹친 목소리에 다온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둘을 번갈아 봤다. 수미가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맨날 점심 거르고 농구만 하던 차하루가 갑자기 너랑 단둘이 급식실에 나타나서 밥을 먹었잖아.”
도경도 기다렸다는 듯 말을 얹었다.
“거기다 평소에 여자애들한테 말도 안 섞는 철벽이 너랑 마주 보고 하하호호 웃기까지 했다면서?”
“…걘 그냥 잘 웃는 애던데?”
이번에는 둘 다 말이 없었다. 도경은 입을 반쯤 벌린 채 다온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얘 진짜.”
하. 저 답답이랑 무슨 이야기를 하겠어. 도경은 입술을 깨물며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둘이 먹어서 소문이 난 거라면… 그래, 둘이서만 먹은 게 아니게 판을 다시 짜면 되는 거잖아! 문득 도경의 움직임이 멈췄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갑자기 손뼉을 딱 쳤다.
“동아리 행사였다고 하자!”
“행사?”
도경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신입 부원 환영 겸, 릴레이 일대일 점심 식사 행사!”
“우리 동아리에 그런 행사가 있었어?”
다온이 처음 듣는다는 얼굴로 묻자, 도경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다온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렸다.
“다온아.”
“응?”
“지금부터 생긴 거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미가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다시 생각해라. 누가 그딴 허술한 변명을 믿냐?”
“믿게 만들면 되지.”
도경은 오히려 자신만만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첫 번째 순서가 신입 부원 강다온이랑 차하루였던 거고….”
도경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계산했다.
“오늘 순서는 나랑 차하루야. 그리고 우리 둘은 오늘 점심시간에 아주 화기애애하게 웃으면서 밥을 먹을 거다.”
말을 마친 도경은 이미 계획이 완벽하게 끝났다는 얼굴이었다. 수미의 입에서 짧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진심이냐?”
“완전.”
도경은 곧장 수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니까 너, 학교에 소문 좀 깔아라. 걔네 썸 타는 거 아니고 봉사부 공식 행사였다고.”
“내가 왜?”
수미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도경이 그런 수미의 어깨를 붙잡고 재빠르게 속삭였다.
“마라탕 쏠게.”
수미가 어림없다는 눈으로 도경을 바라봤다. 도경은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한숨처럼 덧붙였다.
“…두 번.”
수미가 말없이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도경의 입술이 꾹 다물렸다.
“세 번. 진짜 더 이상은 안 돼.”
“콜. 번복 없음.”
수미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아, 이번 달 내 용돈…. 그래도 이런 일에는 김수미만 한 애가 없지. 도경은 눈물을 머금고 그 손을 맞잡았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수미가 가방끈을 어깨에 고쳐 맸다.
“내가 적당히 소문 깔아볼게.”
그러고는 교실 쪽으로 몇 걸음 옮기다가 문득 멈춰 섰다.
“아, 그리고 너.”
몸을 반쯤 돌린 수미가 다온을 바라봤다.
“응?”
“당분간 차하루랑 너무 티 나게 붙어 다니지 마.”
수미의 손끝이 엉망이 된 신발장을 가리켰다.
“진짜 선악과의 저주 제대로 받고 싶지 않으면.”
터진 계란은 여전히 운동화 옆으로 끈적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말을 끝으로 수미는 손을 한번 흔들고 교실 쪽으로 잰걸음을 옮겼다. 다온은 멀어지는 수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근데 도경아.”
“왜.”
“우리 동아리, 어차피 셋밖에 없잖아.”
도경의 손길이 멈칫했다. 다온은 손가락을 하나씩 펴 보이며 차근차근 따졌다.
“나, 너, 차하루. 셋이 돌아가면서 일대일로 밥 먹는 게 무슨 거창한 행사야? 너무 구색이 안 맞지 않아?”
“아~ 그거?”
도경은 별걱정을 다 한다는 듯 손을 휘휘 저어버렸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한 명 더 있잖아.”
“누구?”
“지금 코빼기도 안 비추는 우리 동아리 회장님.”
다온의 머릿속에 곧바로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재하 선배?”
유재하. 재작년에 봉사부를 만든 창립자이자 현재 회장이었다. 고3이 된 뒤로는 입시 때문에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지만, 워낙 붙임성이 좋아 후배들과도 격 없이 지냈다. 다온 역시 재하를 꽤 편하게 따르는 편이었다.
“근데 선배가 올까?”
다온이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고3이라 요즘 수시 준비 때문에 엄청 바쁠 텐데.”
도경은 대답 대신 휴대폰 자판을 빠르게 두드렸다. 잠시 후 엄지손가락이 전송 버튼을 눌렀다.
“무조건 올 거야.”
“어떻게 알아?”
도경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번졌다.
“엄청 좋아하거든. 이런 거.”
“이런 거?”
도경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남의 치정”
다온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도경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