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고양이로소이다 6편
하루의 뒤를 따라 급식실로 들어설 때만 해도 다온은 어색함에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하지만 급식실 문을 여는 순간, 코끝을 훅 치고 들어온 얼큰한 육개장 냄새에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잡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생각보다 훨씬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숟가락을 들었다. 뜨끈한 국물을 한입 떠먹고, 밥까지 말아 정신없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한참 그릇을 비워내던 다온의 숟가락이 문득 멈췄다.
…그러고 보니.
나 지금 차하루랑 밥 먹고 있었지.
다온은 숟가락을 문 채 슬쩍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에는 하루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밥을 먹고 있었다.
“하하. 우리 학교 급식 진짜 잘 나오는 것 같아. 그치?”
뒤늦게 멋쩍어진 다온이 괜히 말을 붙였다. 아우, 강다온. 배고프다고 아주 정신을 놓았구나. 다온은 제 머리를 한번 긁적이다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묘하게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다. 일부러 구석진 자리에 앉았는데도 여기저기에서 시선이 쏟아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다온이 아니라, 맞은편에 앉은 차하루에게. 시끌벅적한 급식실 소음 사이로 작은 목소리들이 간간이 귓가에 걸렸다.
“뭐야, 차하루가 급식실에 온 거 나 처음 봐.”
“그러게. 쟤 원래 점심 안 먹잖아? 웬일이래?”
“오늘 진짜 계 탔다. 이렇게 가까이서 얼굴을 보네.”
다온은 눈동자만 슬쩍 굴려 맞은편을 바라봤다. 하루는 주변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듯 조용히 밥을 먹고 있었다. 저 정도면 자기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 리 없는데도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남이 보든 말든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엄청난 마이페이스군.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번에는 밥 먹는 모습 자체가 눈에 들어왔다. 음식을 씹을 때 입안이 보이는 일도 없었고, 수저가 그릇에 부딪치는 소리도 거의 나지 않았다. 반찬 하나를 집는 동작까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다온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하루의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깔끔하다는 말로는 조금 부족한데. 뭐랄까…우아하달까? 얜 밥 예쁘게 먹는 학원이라도 다닌 걸까.
“왜?”
“응?”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다온의 어깨가 움찔했다.
“계속 나 보길래.”
“아, 아니. 내가 널 언제 봤다고.”
“봤는데?”
“네 뒤에 벽 보고 있었거든?”
다온은 태연한 척 하루의 뒤쪽을 가리켰다.
“저기 낙서 있잖아, 낙서! 생사람 잡지 마.”
하루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공교롭게도 정말 벽 한구석에 볼펜으로 끄적인 조그마한 낙서 하나가 남아 있었다.
“흐음. 그래.”
믿는 건지, 속아주는 척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반응이었다. 하루는 더 추궁하지 않고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다온은 민망함에 괜히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육개장을 한 숟갈 뜨려는데 문득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아까 그렇게 허겁지겁 먹었는데, 설마 입가에 고추기름 묻은 거 아니겠지? 갑자기 입 주변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다온은 하루가 밥그릇으로 시선을 내린 틈을 타 손등으로 입가를 슬쩍 훔쳤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돌렸다.
“근데 너 젓가락질 진짜 잘한다.”
하루가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살짝 들어 보였다.
“이거?”
“응. 되게 깔끔하게 먹어.”
“엄마한테 혼나가면서 배웠지.”
“진짜?”
“응. 밥 먹을 때 소리만 내도 엄청 뭐라 했거든.”
“그 정도로?”
“그런 거에 되게 예민했어. 직업병 같은 거지.”
“직업병?”
“엄마가 호텔리어였거든.”
“오.”
다온의 눈이 동그래졌다.
“멋지다.”
하루는 별것 아니라는 듯 다시 반찬을 집었다.
“에티켓 같은 걸 엄청 강조했어. 행동 하나하나가 결국 그 사람의 인상이 된다고.”
“어쩐지.”
다온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제야 차하루에게서 풍겨 나오던 그 단정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넌 진짜 모든 행동이 되게 깔끔하거든. 그렇다고 막 긴장해서 각 잡고 있는 느낌도 아니고… 그냥 몸에 에티켓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달까?”
말하다 보니 문득 하나가 더 떠올랐다.
“아, 그리고 너 그거 알아?”
“뭐?”
다온이 비밀이라도 알려주듯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너 발소리도 거의 안 내고 걸어 다녀.”
“발소리?”
“응. 진짜 조용하게 걸어.”
꼭 고양이처럼.
입안에서 맴돈 뒷말은 살포시 삼켰다.
다온은 잠시 생각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첫인상이란 게 은근 오래 가잖아. 사람 기억할 때 그런 게 제일 먼저 떠오르기도 하고.”
그러고는 하루를 향해 엄지를 척 세웠다.
“너희 어머니 진짜 멋지시다.”
다온이 활짝 웃자, 오른쪽 뺨에 깊은 보조개가 패였다. 하루는 그런 다온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 조금 뒤, 그도 웃었다.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던 평소의 웃음과는 달랐다. 가지런한 치아가 드러나고, 깊은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다온은 순간 하루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늘 무심하던 표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저렇게 웃고 있으니 꼭 어린애 같았다. 생각보다 잘 웃네. 아니면…. 내가 운이 좋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하루가 불쑥 물었다.
“너 생일 언제야?”
“내 생일? 갑자기 왜?”
“다음 영상은 언제 보나 해서.”
“아.”
다온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8월.”
“며칠?”
“1일! 얼른 왔으면 좋겠어. 일 년 중에 내가 제일 기다리는 날이거든.”
“8월 1일….”
하루가 기억해두려는 듯 날짜를 작게 되뇌었다. 그러고는 후식으로 나온 사과 한 조각을 베어 물었다. 다온은 그런 하루를 바라보다 문득 생각난 듯 눈을 크게 떴다.
“아, 맞다.”
“뭐?”
“저번에 하려던 얘기.”
“저번에?”
“도경이 들어와서 못 했던 거. 나 진짜 궁금한데.”
“아… 그거.”
하루가 사과를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조금 전까지와 달리 제법 진지한 얼굴로 다온을 바라봤다.
“너 괜찮으면….”
다온이 기다렸다는 듯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응.”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하루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다음에 말할게.”
다온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잠시 뒤, 급식실 한쪽에 다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 너 진짜! 너 또 그러지!”
하루는 푹 고개를 숙였다.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어깨가 작게 들썩이고 있었다. 다온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야. 너 웃어?”
“큭….”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결국 참지 못한 하루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미안.”
말은 미안하다면서도 목소리에는 웃음이 잔뜩 묻어 있었다.
“너 반응이 재밌어서.”
잠시 뒤 다시 고개를 든 하루의 눈가가 살짝 젖어 있었다. 다온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휴지 한 장을 뽑아 건넸다.
“너 진짜… 좀 얄미운 성격인 거 알고 있지?”
하루는 휴지를 받아 들며 다온을 힐끗 봤다.
“너는 궁금한 건 절대 못 참는 성격이고?”
“…야!”
다온이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자 하루의 입꼬리가 또 올라갔다. 수미가 분명 차하루 시크하다고 했는데.
사실은— 얘, 웃음이 좀 헤픈 거 아니야?
“야! 차하루, 여기서 뭐 해!”
그때,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급식실을 울렸다. 다온과 하루가 동시에 입구 쪽을 바라봤다. 하루의 오랜 친구이자 같은 농구부인 민우가 서 있었다. 190센티미터가 넘는 큰 체격을 날렵하게 움직이며 성큼성큼 다가오던 민우는 하루 맞은편의 다온을 발견하고 걸음을 조금 늦췄다.
“어?”
곧 다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했다.
“너는 그때…학교 공노비.”
잠시 생각하던 민우가 얼른 말을 정정했다.
“아니, 봉사부 들어오라고 했던 애 맞지?”
“…하하.”
다온은 멋쩍게 웃으며 가까이 다가온 민우를 올려다봤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차하루는 친구라는 애도 키가 무슨 전봇대만 하네. 민우는 다온과 하루를 번갈아 보더니 특유의 시원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대뜸 손을 내밀었다.
“안녕? 나는 차하루랑 나름 절친인 이민우라고 해.”
“아, 응. 안녕!”
다온도 얼떨결에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의 손이 맞잡혔다. 하루의 시선이 그 손 위에 잠깐 머물더니, 한쪽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왜 왔어?”
“…너 지금 나한테 왜 왔냐고 한 거냐?”
민우가 그제야 다온의 손을 놓고 어이없다는 듯 하루를 돌아봤다.
“야, 내가 너를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점심 안 먹는 놈이 갑자기 왜 급식실에서 밥을 먹고 있냐?”
민우의 목소리가 또 한 번 커졌다.
“너 때문에 지금 농구 코트에서 애들이 시작도 못 하고 기다리고 있잖아!”
“아.”
하루가 짧게 탄성을 내뱉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점심 농구 약속이 이제야 떠오른 모양이었다.
“미안. 가자.”
하루는 급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우도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두어 걸음쯤 걸어 나가던 하루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다온은 여전히 숟가락을 손에 든 채 멍하니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가 뒤돌아 다온을 봤다.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밥 맛있게 먹어.”
…뭐야.
쟤는 또 왜 저렇게 웃어.
다온은 멍하니 하루를 바라봤다. 두 사람이 급식실 밖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한동안 출입구 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급식실을 벗어난 뒤에도 민우는 나란히 걷는 하루를 연신 곁눈질했다. 아까부터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참 보기 드문 광경이로다.”
“뭐가?”
“차하루, 너 말이야.”
민우가 손가락 하나를 접었다.
“봐봐. 갑자기 관심도 없던 봉사부에 들어갔지?”
두 번째 손가락도 접었다.
“지난주부터 점심시간마다 동아리실을 뻔질나게 드나들지를 않나?”
세 번째까지 접혔다.
“심지어 오늘은 생전 안 먹던 급식까지 먹었네. 그것도 여자애랑.”
하루는 별 관심 없다는 듯 대꾸 없이 계속 걸었다. 민우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하루의 옆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다 슬쩍 하루 쪽으로 바짝 붙었다.
“너 쟤 좋아하냐?”
하루의 걸음이 아주 잠깐 느려졌다. 곧 민우를 돌아본 하루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렇잖아.”
민우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네가 안 하던 짓 하는 게 죄다 강다온이랑 있을 때잖아.”
하루가 잠깐 생각했다.
“…그런가.”
민우의 눈이 번쩍였다.
“거봐! 내 말 맞다니까? 야, 너 뭐 있지!”
“됐고.”
하루가 민우의 어깨를 툭 밀었다.
“시간 얼마 안 남았어. 얼른 가자.”
그러고는 먼저 농구장 쪽으로 뛰어갔다.
“야! 말 돌리지 마!”
민우도 뒤따라 뛰었다. 몇 걸음 가던 민우가 문득 속도를 늦췄다. 방금 나온 급식실을 한번 돌아보고, 저만치 앞서가는 하루를 다시 봤다. 고개가 절로 기울었다.
“…진짜 이상한데.”
그러다 멀어지는 하루를 향해 다시 뛰었다.
“야, 같이 가!”
한편, 홀로 급식실에 남은 다온의 주변으로는 여전히 학생들의 작은 속닥거림이 오가고 있었다.
“쟤 누구야?”
“차하루랑 왜 둘이 밥 먹어?”
“처음 보는데.”
“…별로 예쁘지도 않네.”
누군가는 힐끔거렸고, 누군가는 식판을 든 채 대놓고 다온을 바라봤다. 따가울 정도의 시선과 묘한 질투가 뒤섞인 분위기에도 정작 다온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남은 육개장을 한 숟갈 떠먹다가 괜히 하루가 나간 쪽을 다시 바라봤다.
‘밥 맛있게 먹어.’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던지던 하루의 낮은 목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별것도 아닌 말인데. 이상하게 자꾸 생각났다. 그러다 문득 주머니 속 수첩이 떠올랐다. 다온은 얼른 수첩을 꺼내 펼쳤다. 펜 끝을 굴리며 잠시 고민하던 다온이 한 줄을 꾹꾹 눌러 적었다.
* 활짝 웃을 때 생각보다 아이 같음.
방금 적은 문장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조금 전 눈이 휘어지도록 웃던 하루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다온의 입가에도 어느새 작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