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하루 영입 대작전(2)

그는 고양이로소이다 3편

by사랑의 생존자


십 분 뒤, 도경은 다온에게 거의 끌려가다시피 8반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 짜증 나. 안 한다고 했지?”

“가서 딱 한 번만 말해줘.”


다온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도경 옆을 졸졸 따라갔다.


“'차하루, 우리 동아리 들어올래?' 하고 방긋 한 번만 웃어주면 게임 끝이라니까!”

“말 같은 소리를 해라.”

“그럼 안 웃어도 돼! 그냥 들어오라고만 해줘. 쓸데없이 예쁜 네 얼굴 덕 좀 한 번만 보자. 응?”


다온이 간절한 눈빛으로 도경의 옆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나 땡이 한 번만 더 쓰다듬어보자. 제발…….”

“아, 씨. 진짜!”


평소에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며 잘 웃고 다니는 애가, 한 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도경은 예전부터 다온의 저런 표정에 약했다. 아휴, 내 팔자야.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얼굴로 바라보는 다온을 한참 째려보던 도경은 결국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딱 한 번이다.”


다온의 얼굴이 순식간에 화색을 띠며 곧장 도경의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사랑해, 친구야!”

“대신 웃는 건 절대 안 해.”

“응, 안 웃어도 사랑해!”

“저리 꺼져.”


8반 앞에 도착한 다온은 잔뜩 인상을 쓴 도경을 뒤에 세워두고 창문 너머를 빼꼼 들여다보았다. 1분단 창가 맨 뒷자리. 바카라상 위로 익숙한 뒤통수가 파묻혀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푸른빛 도는 검은 머리카락 위로 얇고 반짝이게 내려앉아 있었다.


찾았다.

다온은 숨을 작게 들이마셨다.


“도경아, 저기야.”


손가락으로 하루를 가리키자 도경이 코웃음을 쳤다.


“네가 말 안 해도 여기 있는 애들이 이미 다 알려주고 있거든?”

“응?”


도경이 눈짓으로 복도를 가리켰다. 그제야 다온은 8반 교실 앞이 유난히 여자애들로 북적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다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친구와 수다를 떠는 척하고 있었지만, 시선 끝은 하나같이 창가 맨 뒷자리의 차하루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엎드려 자느라 뒤통수밖에 안 보이는데 잘생긴 거 실화냐?”

“아무도 못 사귀고 저렇게 혼자 늙어서 영원히 우리의 기쁨이 되길.”

“아멘.”


애정인지 저주인지 모를 대화에 다온은 잠시 여자애들을 바라봤다. 인기많은 것도 쉬운 일은 아니구나.


“근데 쟤는 쉬는 시간 내내 저렇게 잠만 자냐?”


도경이 짝다리를 짚은 채 하루를 바라보았다. 마침 엎드려 있던 하루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 일어났다! 가자!”


다온이 기다렸다는 듯 도경의 손목을 덥석 붙잡자 도경이 제 손목을 내려다봤다가 다온을 한번 흘겨봤다.


“놔. 알아서 갈 테니까.”


다온이 얼른 손을 놓자, 도경은 한숨을 크게 쉬고 교실 문으로 향했다. 드르륵. 도경이 거침없이 문을 열어젖히자 교실 안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시끌벅적하던 남학생 몇 명이 입을 다물었고, 복도에 서 있던 여자애들의 눈길도 자연스럽게 도경을 따라 움직였다. 다온은 도경의 등 뒤로 슬쩍 몸을 숨겼다.


“어, 서도경이다.”

“쟤가 8반엔 웬일이래?”


도경은 주변의 웅성거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창가 맨 뒷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다온은 키 큰 도경을 방패 삼아 바짝 따라붙었다. 하루의 자리와 가까워질수록 손바닥에 조금씩 땀이 배었다. 마침내 맨 뒷자리 앞에 멈춰 선 도경이 입을 열었다.


“야. 봉사부 들어올래?”


다짜고짜 용건부터 꺼낸 도경의 뒤에서 다온은 축축해진 손바닥을 교복 치마에 슬쩍 문질렀다. 하루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다.


“…싫은데.”


잠이 덜 깬 듯 낮은 목소리였지만 대답은 짧고 단호했다. 도경의 미간이 바로 구겨졌다.


“야, 강다온. 싫댄다. 네가 말해.”

“어?”


다온이 반응할 틈도 없이 도경이 어깨를 잡아 앞으로 밀었다. 뒤에 숨어 있던 다온이 그대로 하루 앞에 드러났다. 하루의 시선이 다온에게 멈추더니 반쯤 감겨 있던 눈이 아주 조금 커졌다.


엉겁결에 하루와 눈을 맞추게 된 다온은 그제야 그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했다. 부스스하게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과 아직 잠기운이 서려 있는 눈. 길게 내려앉은 속눈썹 아래로 눈빛은 무심했고, 반듯한 콧날과 다문 입술까지 선명하게 보일 만큼 가까웠다.


와. 얘 진짜 잘생겼잖아?


다온이 넋을 놓고 바라보는 동안 하루도 말없이 다온의 얼굴을 살폈다. 잠시 뒤 하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어… 어?”

“저번에 편의점에서….”


하루의 말이 거기서 끊겼다. 다온의 등이 뻣뻣하게 굳었다.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채 하루를 바라봤다.


기억하고 있구나. 당장이라도 교실 밖으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온은 주먹을 꽉 쥐었다. 아냐, 쫄지 말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어, 맞아! 그 편의점 변태가 바로 나야!”


말을 내뱉은 순간 다온은 제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여기서 변태라는 단어가 왜 나오는 건데! 게다가 목소리까지 필요 이상으로 우렁찼다. 주변에서 누군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다온은 황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아니, 그러니까 변태는 아니고. 그때 많이 놀랐지? 저기, 그때는 내가 벌… 벌레를 떼주려고….”


말을 이을수록 점점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아닌데. 필요한 말은 따로 있었는데. 다온은 숨을 한번 삼키고 눈을 질끈 감았다.


“우, 우리 동아리에 네가 꼭 들어왔으면 해서!”


하루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다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한쪽 눈썹만 살짝 올라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다온은 손끝을 꼼지락거리며 되는대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 봉사부는 전용 동아리실도 있거든? 한여름에도 되게 서늘하고… 잠도 진짜 잘 와! 부원도 별로 없어서 언제든 자러— 아니, 쉬러 올 수도 있고!”


말을 마칠수록 다온의 고개가 점점 내려갔다. 변태 선언에, 벌레 핑계에, 이제는 '수면 영업'까지. 옆에 서 있던 도경이 작게 혀를 찼다.


딩동댕동. 마침 쉬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의자가 밀리고 교과서를 꺼내는 소리가 이어지며 교실은 다시 분주해졌다. 몇몇 학생은 여전히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하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다온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한 다온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저기…미안. 했던 말은 그냥 잊어줘.”


망했군.

완전히 망했다.


“…가자, 도경아.”


다온은 도경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돌아섰다.




두 사람이 교실을 벗어나자, 옆자리에 턱을 괴고 앉아 있던 민혁이 하루를 흘끗 바라보았다.


“역시 철벽 차하루. 미인계도 단칼에 쳐내는군.”


하루는 대꾸하지 않았다. 시선은 여전히 닫힌 교실 문틀에 고정되어 있었다. 민혁이 장난스럽게 하루의 어깨를 툭 쳤다.


“근데 아까 걔는 뭐냐? 동아리실에 자러 오라니, 영업 방식이 신선한데.”


그래도 대답이 없자, 민혁은 혼자 피식 웃으며 의자를 뒤로 젖혔다.


“야, 너 봉사부 안 들어가길 잘했어. 서도경 얼굴에 홀리면 안 된다. 거기 완전 학교 공노비부잖아. 들어가 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


드르륵. 하루가 갑자기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민혁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야, 어디 가? 종 쳤어!”

“잠깐.”

“종 쳤다니까 뭘 잠깐이야!”


하루는 대답 대신 손만 한 번 들어 보이고는 교실 밖으로 성큼성큼 나갔다. 민혁은 닫힌 문과 하루의 빈자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왜 저래, 진짜?”




복도로 나오자마자 도경이 다온을 향해 돌아섰다.


“아오, 강다온! 너 때문에 늦었잖아! 나 다음 시간 체육이라고.”

“미안, 미안! 얼른 가!”

“하여튼 나 먼저 간다!”


도경이 계단을 향해 냅다 뛰어가자 혼자 남은 다온은 터덜터덜 반대편 복도를 걸었다. 변태에 수면 영업, 거기다 수업 지각까지. 오늘은 완전히 망했다. 다온은 앞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그나저나 다음 시간이 무슨 수업이었더라. 어차피 지각인데… 굳이 뛰어갈 필요가 있나? 계단 앞에 다다르자 다온의 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바로 그때, 뒤편에서 발소리가 빠르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다온이 미처 돌아보기도 전에 손목이 덥석 잡혔다.


“앗.”


갑작스러운 힘에 몸이 살짝 뒤로 끌렸다. 놀라 돌아보자 한 계단 위에 차하루가 서 있었다. 뛰어왔는지 어깨가 천천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빨라.”

“차…하루?”


하루는 자신이 잡고 있던 다온의 손목을 한번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천천히 손을 놓았다.


“아, 미안.”


다온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올려다보자 하루가 짧게 말했다.


“들게.”

“뭐?”

“봉사부.”


다온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뭐?”

“들어간다고.”

“진짜?”


하루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간다.”

“어? 잠깐만. 진짜로?”

하루는 대꾸 없이 그대로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다온은 수업에 늦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계단 중간에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뭐지?”


제 손목을 한번 문질러본 다온은 하루가 사라진 계단 위를 다시 올려다봤다. 방금 전까지 잡혀 있던 손목이 이상하게 간질거렸다.






작가의 이전글차하루 영입 대작전(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