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하루 영입 대작전(1)

그는 고양이로소이다 2편

by사랑의 생존자

“그러니까 정리하면.”


도경은 팔짱을 낀 채 다온을 빤히 바라봤다.


“알지도 못하는 남자애 뒤통수를 몰래 만지다가 들켜서 냅다 튀었다는 거네.”

“…몰래 만진 게 아니라, 땡이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니까 걔가 땡이를 알겠냐고.”

“아, 나도 실수한 거 안다고.”


바카라상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 웅얼거리는 다온을 보며 도경이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갑자기 다온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근데, 도경아.”

“뭐.”

“한 번만 더 만져보고 싶다고 하면 나 진짜 변태 같아?”


도경이 대답하지 않고,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자 다온의 어깨가 슬그머니 움츠러들었다. 십 년을 붙어 다닌 서도경이 저런 표정을 지을 때는 대체로 둘 중 하나였다. 어이가 없거나. 한심하거나. 그리고 대부분은 둘 다였다. 다온이 다시 바카라상 위로 고개를 푹 박았다.


“어떻게 걔랑 친해져서… 딱 한 번만 더 만질 순 없을까.”


도경이 혀를 찼다. 대체 뭘 자꾸 만진다는 건지. 얘는 자기가 지금 얼마나 수상한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을까.


“하여튼. 걔 이름이 뭐라고? 명찰 봤다며.”

“아, 하루. 차하루! 꼭 강아지 이름 같아서 놀랐—”

“뭐?”


도경의 목소리가 동아리실 안에 울렸다.


“차하루? 8반 차하루?”


다온이 의아한 얼굴로 도경을 봤다.


“너 걔 알아?”

“모르는 네가 이상한 거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다온의 얼굴에 도경은 미간을 꾹 눌렀다. 하긴. 강다온은 원래 학교 소문에 유난히 둔한 편이었다.


차하루.

작년 봄에 전학 온 첫날부터 학교를 떠들썩하게 한 녀석이었다. 8반에 엄청 잘생긴 애가 왔다는 둥, 키가 몇이냐느니, 연예인 준비생 아니냐느니. 선배들까지 괜히 교실 앞을 기웃거렸다. 하도 난리라 도경도 호기심에 구경을 간 적이 있었다. 확실히 멀끔하게 생기긴 했지만 도경 취향은 아니었다. 그 뒤로는 관심을 껐는데도 차하루라는 이름만큼은 원치 않아도 매일같이 귀에 박히곤 했다.


하필 건드려도 그런 유명한 애를. 아우, 강다온. 도경은 관자놀이를 두어 번 문지르고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8반 차하루. 정보 좀.]


수신자는 옆 반 김수미. 잘생긴 남학생들에 관한 정보라면 디스패치보다 빠른 자칭 타칭 미남 컬렉터였다. 지이잉. 진동이 울리며 답장이 거의 바로 왔다.


[우리 학교 선악과잖아.]


도경의 눈썹이 삐딱하게 올라갔다. 선악과? 뭔 소리야. 답장을 치려던 순간, 메시지가 연달아 쏟아졌다.


[작년에 전학 왔을 때 난리도 아니었지.]

[근데 금방 잠잠해짐. 왜냐?]

[차하루가 완전 철벽이라.]

[고백한 인기녀들 다 차임.]

[아예 여자애들이랑 말을 안 섞음.]

[쉬는 시간엔 보통 자거나 남자애들이랑 농구.]


도경이 코웃음을 쳤다. 처음 봤을 때부터 딱히 슬롯성이 넘쳐 보이는 얼굴은 아니긴 했다. 휴대폰 화면에는 여전히 ‘입력 중……’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잘생겼지.]

[키 크지.]

[운동 잘하지.]

[심지어 공부도 꽤 함.]

[그리고 가끔 웃는데 그게 또 미쳤다지.]

[결론. 차하루 = 우리 학교 선악과.]

[아무도 못 가짐. 보기만 해야 하는 공공재.]

[ㅎㅎ]


도경은 마지막 ㅎㅎ를 한참 내려다보다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휴대폰 너머에서 실실 웃고 있을 김수미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남자에게 통 관심도 없던 강다온이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상대가 하필이면 차하루라니. 시작부터 상대가 너무 셌다. 도경은 휴대폰과 다온을 번갈아 바라보다 말없이 화면을 내밀었다.


“뭐야?”


다온은 휴대폰을 받아 위에서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읽으면 읽을수록 입꼬리가 아래로 처졌다.


“우리 땡이… 아니, 차하루가 선악과라고?”

“그렇다는데.”

“여자랑은 아예 말을 안 섞는다고?”

“그렇다네.”


다온은 울상이 되어 휴대폰을 내려놓고 도경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진심으로 사과하면 받아주지 않을까?”

“사과하고 나서?”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해야지.”

도경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머리 좀 쓰다듬게 해줄래?'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

“…역시 그건 좀 이상한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진짜.”


도경이 검지로 다온의 이마를 꾹 밀어냈다. 다온의 고개가 힘없이 뒤로 훌쩍 넘어갔다.


“아, 아파라…….”


도경은 손을 거두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편의점 변태로 낙인찍히기 전에 뜯어말리는 게 친구 된 도리였다. 그런데도 평소 같으면 진작 자르고도 남았을 황당한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있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땡이가 다온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열 살에 엄마를 잃은 뒤, 다온이 매일 품에 안고 잠들었던 고양이.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었지만, 외로운 시간을 오래 곁에서 지켜준 가족. 그게 땡이였다. 도경은 말없이 바카라상 위를 손가락으로 두어 번 두드렸다.


“너무 급하게 굴지 말고 일단 친해져 봐. 머리를 만지든 말든 그건 그다음 문제고.”

“어떻게 친해져? 여자애들이랑 말도 안 한다며.”

“자주 마주쳐야지. 사람은 계속 보다 보면 없던 정도 든다잖아.”


순간 다온의 눈이 반짝였다.


“우연인 척 매일 8반 앞에 찾아갈까?”

“차하루한테 그런 식으로 들이댄 애들이 한둘이었겠냐. 다 장렬하게 전사했으니까 선악과가 됐겠지.”

“난 흑심 같은 건 진짜 없는데!”


다온이 억울하다는 듯 두 손을 마구 내저었다.


“그냥 딱 머리만 몇 번 더 만져보면 되는데…”


그러니까 그게 흑심 중의 흑심이라고, 친구야. 도경은 더 이상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다 잠시 뒤, 무언가 퍼뜩 떠오른 듯 천천히 눈을 떴다.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라고 하면 어때?”

“동아리?”

“여기 들어오면 매일 얼굴 볼 수 있잖아.”


다온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하게 밝아졌다.


“진짜 좋은 생각이다! 역시 서도경!”


기세 좋게 외치던 다온의 시선이 문득 동아리실 내부를 훑었다. 바카라장 위에는 언제부터 놓여 있었는지 모를 목장갑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구석에는 낡은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밝아졌던 표정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근데 차하루가 봉사부에 들어올까?”


도경은 대답 대신 어깨만 으쓱했다. 봉사부. 이름만 들으면 제법 그럴듯하지만, 실상은 학교 공식 공노비부에 가까웠다. 잡초 뽑기, 쓰레기 줍기, 교내 구석구석 청소하기.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귀찮은 일은 전부 봉사부 몫이었다. 다온과 도경이 들어온 뒤로 신입 부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보통은 제정신이라면 이런 동아리에 안 오지.”


도경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도 너 아니었으면 절대 안 들어왔어.”

“그래도 동아리실이 따로 있다는 건 장점 아니야?”

“…퍽이나.”


1층 구석의 낡고 빈 교실. 습하고 오래된 먼지 냄새가 났고, 한여름에도 묘하게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곳. 다온과 도경에게야 익숙하고 나름 소중한 공간이었지만, 새 부원을 낚기 위한 유인바카라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다온은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물며 고민에 빠졌다. 봉사부의 장점이 또 뭐가 있을까? 잡초를 뽑으며 자연 친화적인 삶을 배울 수 있다? 쓰레기를 주우며 지구 환경을 지킬 수 있다? 남들은 모르는 학교 구석의 먼지를 마음껏 모을 수…


“하….”


누가 오겠냐고, 여길! 다온은 앞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애초에 자신이 봉사부에 들어온 것도 돌아가신 엄마가 남긴 영상 속 한마디 때문이었다.


'다온아,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경험을 꼭 해보렴.'


엄마의 그 한마디를 따라 들어왔고, 싫다는 도경까지 끌어들였다. 서도경 하나 꼬시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때 다온의 손이 멈췄다. 잠깐. 여기에는 서도경이 있잖아.


다온의 시선이 천천히 옆으로 향했다. 도경은 의자에 삐딱하게 기대 앉아 가느다란 다리를 길게 꼬고 있었다. 대충 묶어 넘긴 머리카락에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었지만, 이목구비가 워낙 화려해 교실 어디에 있어도 단번에 눈에 띄는 미인이었다. 적어도 다온이 아는 남자애 중 도경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은 애는 드물었다.


실제로 악명 높은 봉사부에도 한때 남학생들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대부분 도경에게 혹해서 온 애들이었다. 물론 저 지랄 맞은…… 아니, 도경 말대로 표현하자면 주관이 뚜렷한 성격 덕분에 전부 오래 버티진 못했지만. 다온은 가만히 도경을 바라보다 천천히 두 손을 모았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아름다우신 도경님이여.”


도경의 눈썹이 꿈틀했다.


“……뭐야. 무섭게. 저리 가.”

“나 좀 도와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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