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고양이로소이다 1편
만져보고 싶다.
진짜 딱 한 번만.
다온은 편의점 파라솔 아래에서 20분째 맞은편 남학생의 뒤통수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테이블에 엎드려 잠든 남학생의 머리카락을.
남학생은 꼼짝도 하지 않고,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다. 햇빛을 받은 검푸른 머리카락만이 바람을 따라 조금씩 흔들렸다. 숨이 막힐 만큼 익숙한 색이었다. 다온은 저도 모르게 오른손을 꽉 쥐었다. 손끝이 자꾸 근질거렸다.
20분전까지만 했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토요일이었다. 다온은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편한 추리닝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학교 앞 편의점에서 얼음컵 하나와 파인애플 탄산수를 사 마시는 것. 다온의 토요일 오전은 늘 그렇게 시작됐다. 목을 타고 차가운 탄산이 내려갈 때면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도 스르르 풀렸다. 그제야 제대로 주말이 시작된 것 같았다.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좋아하는 파인애플 탄산수를 근처에서는 이 편의점에서만 판다는 것 정도였다. 덕분에 주말에도 학교 앞까지 걸어와야 했지만, 교복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발걸음은 가벼웠다. 따뜻한 오월의 바람이 뺨을 스쳤다. 가로수 잎이 사각거리며 흔들렸고, 파라솔 끝에 걸린 햇빛도 바람을 따라 조금씩 움직였다.
아, 좋다.
작게 웃는 다온의 오른뺨에 보조개가 살짝 패였다. 탄산수를 사서 편의점 밖으로 나오는데, 파라솔 테이블 위에 놓인 캔 하나가 보였다. 자신이 방금 사 온 것과 똑같은 파인애플 탄산수였다. 캔을 집어 살짝 흔들자, 안에 반쯤 남은 탄산수가 작게 출렁였다.
“이 맛있는 걸 아깝게…”
다온이 중얼거리던 순간, 털썩. 누군가 맞은편 의자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 커다란 검은 백팩이 의자 다리 옆으로 툭 쓰러졌고, 남학생은 가방을 바로 세울 생각도 없이 그대로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다온은 손에 들고 있던 캔을 내려놓으며 눈을 깜빡였다. 잠시 뒤 느리고 일정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설마 잠든 건가.
앉은 지 몇 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저 정도면 자면서 온 거 아니야?
다온은 입을 조금 벌린 채 남학생을 바라봤다. 그러다 시선이 천천히 남학생의 뒷머리로 옮겨갔다. 새까만 머리칼은 햇빛이 닿은 부분만 은은하게 푸른빛을 띠었다. 결을 따라 흩어진 잔머리가 봄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다온은 그 머리카락을 한참 멍하니 바라봤다.
“…땡이?”
땡이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아빠가 데려온 고양이였다. 검은 털이 유난히 예쁜 녀석이었다. 실내에서는 새까맣게 보이다가도 햇빛 아래만 서면 털 사이로 푸른빛이 돌았다.
그런데 작년 봄, 아무런 준비도 할 틈 없이 갑작스럽게 다온의 곁을 떠났다. 심장병이었다. 별다른 증상도 없었던 탓에 아픈 줄조차 몰랐다. 땡이가 너무 그리운 날이면 사진을 보다가 그대로 잠든 적도 많았다. 혹시 꿈에라도 와주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한 번도 나타나주지 않았다. 왜 한 번쯤 와주지 않느냐고, 이미 없는 녀석을 원망한 날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었다.
정확히는,
땡이의 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검은 머리카락이.
다온은 홀린 사람처럼 남학생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손끝이 자꾸 움찔거렸다.
만져보고싶다.
안 돼.
진짜 딱 한 번만.
미쳤어?
남의 머리를 왜 만져. 오른손이 슬며시 올라가려 하자 왼손이 얼른 손목을 붙잡았다. 간신히 남은 이성이었다.
다온은 조심스럽게 남학생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혹시라도 깨울까 봐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지 않도록 손으로 살짝 들어 옮겼다. 남학생은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일정한 숨소리를 확인하고서야 다온의 어깨에서도 조금씩 힘이 빠졌다.
다온의 시선이 머리카락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구겨진 흰 셔츠와 검은 교복 바지, 의자 아래까지 길게 뻗은 다리. 엎드린 자세인데도 키가 꽤 커 보였다. 그러고보니 같은 학교 교복이었다. 의자 옆으로 쓰러져 있던 검은 백팩의 이름표가 바람에 한 번 뒤집혔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초록색 테두리, 같은 2학년이구나. 다온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름표를 읽었다.
차…하루.
하루라니. 무슨 강아지 이름 같네.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자 다온의 오른뺨에 보조개가 다시 얕게 패였다. 이름까지 알고 나니 잠든 뒤통수가 괜히 더 말랑해 보였다. 다온은 다시 남학생의 머리를 바라봤다.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저렇게 자는데 살짝 건드린다고 깨겠어.
그러다 깨면?
음…벌레.
그래. 벌레 붙어서 떼어줬다고 하면 되지.
근데 이거 범죄 아니야?
다온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무릎 위의 손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몰라.
딱 한 번만.
다온은 작게 숨을 삼켰다.
마침내 손끝이 천천히 남학생의 머리 위로 향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사라락.
손끝이 머리카락 끝을 스쳤다.
다온의 눈이 동그래졌다.
황급히 손을 거두고 제 손끝을 내려다봤다.
똑같아.
부드러운 결 사이로 짧은 머리카락 끝이 손끝을 까슬하게 간질이는 느낌. 햇볕 아래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난 땡이를 쓰다듬을 때의 그 감촉까지 너무 닮아 있었다.
문득 목 안쪽이 뜨거워지고, 눈앞의 검은 머리카락이 조금씩 흐려졌다. 다온은 입술을 꾹 깨문채, 잠든 남학생을 한참 바라봤다. 그러다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다시 손을 뻗었다.
사라락.
손끝이 검은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땡이야.”
툭.
그리운 이름을 뱉자 눈물 한 방울이 편의점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거의 동시에 남학생의 머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다온의 손이 허공에서 그대로 굳었다.
…어?
팔에 묻혀 있던 얼굴이 천천히 들렸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아직 잠이 덜 깬 눈이 드러났다.
낮게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넌?”
# 덧1.
안녕하세요, 다들 건강하시지요?
갑자기 들고온, 난생 처음 써보는 소설입니다. 올해가 가기전에, 유치뽕짝하이틴로맨스 소설을 꼭 하나 써보고 싶었는데, 방구석 여포로 야금 야금 쓰니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일단 온라인카지노에 올려버리기로 했습니다. 목표는 일단 '완결'입니다! (불끈)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하면서도 평생 읽은 소설이 몇십권 될까한 작금의 한계,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혹은 소설을 더 많이 읽어야지라는 당연한 상식도 뒤로하고, 만화바카라 만큼은 남들에게 지지 않을만큼 읽었다고 자부하는 관계로 '소설 같은 소설'이 아닌 '만화바카라 같은 소설'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누가 읽을까 싶은 소설이지만, 그냥 제가 읽으려고 썼습니다. 한분이라도 만약 흥미롭게 읽어주신다면 그것만큼 큰 영광은 없을 듯 합니다!
# 덧2.
우연히 떠도는 이 사진을 보고, 구상한 소설입니다. 하루와 다온은 선업튀를 잊지 못한 아줌마의 미련이랄까요... 변우석과 김혜윤, 멜로 드라마 하나 다시 해주면 안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