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결혼식을 무사히 치르고 남편과 비행기에 오르자 메리지 블루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후련함과 설렘을 안고 지상낙원 하와이에 도착했다. 결혼식을 마친 지 24시간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혼부부였다. 그간의 힘든 기억은 두고, 좋은 기억만 챙겨 왔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손발이 잘 맞았다. 그동안은 결혼 준비가 버거워 내가 예민했던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와이는 커피도 맛있고 햄버거도 맛있고, 물도 맛있었다. 바람과 햇볕, 노을까지 모든 것이 황홀했다. 우리는 발이 닿는 곳마다 즐거웠고, 한층 여유로워진 만큼 서로에게도 너그러웠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들뜸에는 결혼 준비의 긴장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도 섞여 있었다. 그런데 막상 자유 앞에 서자 마음은 오히려 움찔거렸다. 갓난아이가 갑작스러운 자극에 팔다리를 벌렸다가 다시 품 안으로 끌어당기는 모로반사처럼, 나도 자유를 향해 손을 뻗으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붙잡고 싶어 했다. 결혼식을 막 마친 나는 아직 팔다리를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모르는 유부 신생아였다. 혼자 살던 자취방을 비워냈어도 나는 여전히 분리와 연결에 서툴렀다.
그래서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다시 밖으로 나갔다. 산바카라도 하고, 음식을 먹고, 수영도 했다. 무언가 하나를 마치면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또 밖으로 나갔다. 첫날 저녁에만 숙소를 세 번이나 들락거렸다. 그런데도 좀처럼 편안해지지 않았다. 문득, 이건 아닌 것 같았다.
흔히 억텐이라 하던가. 나는 억텐 속에서 간신히 한마디 꺼냈다.
"나 진짜 오늘 너무너무 행복하거든? 근데 뭔가..."
내가 메리지 블루를 인정하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날의 기분을 설명하기는 더욱 쉽지 않았다. 요점도 없이 '뭔가가 뭔가'라는 서두만 한참을 늘여놓고 있는데, 말없이 듣던 남편이 입을 열었다.
"혹시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인가?"
잠깐 이야기해 보니 남편도 나와 거의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오마이갓. 우리가 같은 '억텐' 속에 있었다니. 서로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처음으로 마음이 조금 놓였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제대로 해보자며 함께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드디어 정말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똑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을까?"
나는 연신 신기하다고 종알거리며 숙소에 들어왔다. 벌써 반쯤 마음이 편해졌는지 잠자리에 들기 전 이를 닦으려고 욕실로 향했다. 그런데 칫솔을 집어 든 채 누구도 양치를 시작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대로 대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서로의 감정이 일치한 그 반가운 공감 속에 조금 더 머물고 싶었다. 나는 칫솔을 내려놓고 욕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두렵다고 말했다. 남편도 두렵다고 말했다.
남편 역시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하루 종일 웃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연애의 시작부터 결혼까지, 나는 이 관계에서 꽤 무모한 긍정회로를 돌리는 쪽이었다. 남편이 신중하게 망설일 때면 나는 대장부처럼 손을 내밀었다. 문제가 생겨도 별것 아니라며 훌훌 털고 다시 나아가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나약한 모습이 나답지 않게 느껴졌고, 이런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내 안의 여러 마음을 알아차리고, 두려움을 마침내 입 밖으로 꺼내자 참았던 울음도 함께 터졌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겨우 다음 말을 꺼냈다.
"정말...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약한 말을 꺼냈을 때, 내 손을 덥석 잡은 건 그였다.
"괜찮아. 내가 잘해볼게. 정말로 잘해볼게."
그 순간 우리 둘 다 불안정했다. 하지만 찰랑이는 불안 속에 먼저 손을 집어넣어 나를 끌어준 사람은 내가 아닌 남편이었다. 내 삶에서는 모호한 순간마다 정신을 꽉 부여잡고, 눈을 질끈 감고 용기를 내는 일이 오로지 내 몫이었다. 확실하지 않은 순간에 '괜찮다'는 말을 들은 것도 어쩌면 처음이었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과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저 담대한 나로서만 존재하려 해 왔다. 처음으로 씩씩함을 내려놓자 두 손이 가벼워졌다. 허공에서 다시 한번 움찔거린 두 손을 남편이 제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두어 시간을 마음을 쏟아내고 나서야 두려움의 모양이 조금 보였다. 단순히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만은 아니었다. 부모의 자녀로만 살아왔던 자리에서 한 걸음 나와, '우리' 안의 새로운 나로 잘 살아갈 수 있을지가 두려웠다. 내 안의 결핍을 마주하는 일이 아플까 봐, 다시 못 본 척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사실 두 시간 동안 오간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침묵과 눈물, 기다림과 용기가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래. 이렇게 분리되는구나.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두어 시간을 울고 한껏 후련해진 나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우리 이제 진짜 신혼여행 시작이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 유난스러운 첫 연결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