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이 살던 집에 말 그대로 숟가락 하나만 들고 들어가 눌러앉았다. 대신 나름의 혼수를 준비했다. 가구를 고르는 대신 예비부부 워크숍에 다니며 부부에게 필요한 대화법을 배웠다. 그때 배운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부부의 반복되는 갈등을 각자의 ‘미해결된 상처’로 인한 ‘무의식적 힘겨루기’로 보는 이마고 이론이었다.
연애시절부터, 남편과 가까워질수록 나의 어린 시절이 따라왔다. 남편이 별 뜻 없이 건넨 말 한마디에 갑자기 서운해질 때, 그 서운함 속에는 대개 오래전 채워지지 않은 마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사소한 일에 고집을 부릴 때에도, 어린 시절 내 마음을 이해받지 못했던 기억이 그 고집 뒤에 숨어 있었다.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방식 안에도 부모님께 사랑받았던 방식과, 사랑받고 싶었지만 받지 못했다고 느낀 순간들이 함께 들어 있었다.
사실 나는 여전히 아빠의 표정에서 내 행동의 정답을 찾고, 엄마가 내 선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봐 눈치를 살핀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부모님이 걱정하고 불안할 것 같으면 말하는 것을 멈췄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걱정할 만한 이야기도 비교적 잘 꺼내는 편이다. 내가 건넨 걱정을 별일 아닌 듯 의연하게 받아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이 내 걱정거리를 큰일처럼 받아들이는 순간, 과거의 내가 튀어나와 지금의 내 입을 틀어막는다.
이처럼 내가 미처 해결하지 못한 과거의 상처는 결혼했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른인 내가 남편과 싸우고 있는데, 어느 순간에는 어린 시절의 내가 대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로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사랑의 방식이 상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요구가 되었다. 나는 안전해지고 싶을수록 남편에게 내가 아는 방식으로 사랑해 달라고 요구했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우리 관계까지 잘못된 것처럼 불안했다.
어쩌면 싸움은 오래전 해결되지 않은 상처를 다시 꺼내, 이번에야말로 해결해 보려는 서툰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로가 내민 상처를 알아보지 못할 때, 우리는 또 한 번 그 상처가 생긴 어린 시절에 머무른다. 우리가 부딪칠 때마다 그 안에 어떤 상처가 숨어 있었는지, 그 상처가 만든 방식을 왜 사랑이라고 믿었는지는 아직 나도 다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각자의 집에서 가져온 보이지 않는 혼수를 하나씩 꺼내보는 연습을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