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픈, 연결하고 분리한다

by복하

하이픈(hyphen).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고, 하나의 단어가 줄 끝에서 나뉠 때 그 연결이 다음 줄까지 이어짐을 나타내는 구두점이다.


연결하고 분리한다. 결혼과 참 많이 닮아 있다.


결혼하기 전에는 사랑이 두 사람을 하나로 만드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마음이 잘 맞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서로의 생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그러니 가까워질수록 차이는 줄어들고, 마침내 '너와 나'보다 '우리'가 커지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결혼해 보니 연결되기 위해서는 먼저 분리되어야 했다.


나는 내가 자란 가족에게서 조금씩 떨어져 나와야 했고, 남편도 남편이 살아온 가족으로부터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딸과 아들로만 살아왔던 자리에서 한 걸음 나오는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 가져온 삶의 방식과 말투, 칭찬과 상처를 한 아름씩 들고 만나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물론 결혼했다고 곧바로 분리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나는 여전히 분리 중이다. 결혼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유난히 큰소리쳤던 말이 있다.


"나 메리지 블루 같은 거 없는 것 같은데? 조금 정신없어도 평온하고 즐거워."


첫 온라인 게임 때문에 타지에서 혼자 살아본 경험만으로 나의 독립이 충분히 완성된 줄로만 알았다. 연애 기간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고 설렜다. 크고 작은 싸움이 있었어도 메리지 블루라는 게 도통 어떤 건지 공감할 수 없었다.


결혼식이 있기 불과 2~3주 전쯤부터 알 수 없는 기분이 올라왔다. 이걸 슬픔이라고 해야 하나 불안이라고 해야 하나. 정말이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 느낀 오묘한 감정들을 라벨링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나의 힌트는 부모님을 볼 때 이 감정이 커지는 것이었다. 이미 나는 어른이고, 내 돈벌이도 하는 독립적인 사람인데. 결혼이 가까워지자 이제는 정말 부모님에게서 분리된다는 사실이 뒤늦게 각인됐다. KTX도 있고 스마트폰도 있는데 나는 왜 분리된다는 압박을 느꼈을까? 아니 슬픔을 느꼈을까. 불안정한 마음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만 갔고 내 상태는 '블루' 그 자체가 됐다. 큰 걱정도 별것 아니듯 무던하게 넘기고 조금 막막해도 힘부터 내보려는 씩씩한 나는 불과 며칠 사이에 개복치가 되어버렸다.


결혼식 일주일 전, 신혼집에 들어가기 위해 나의 조그마한 원룸을 정리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아빠는 자꾸만 서울까지 올라와서 이사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혼자 먹던 그릇과 혼자 쓰던 침대 등 '혼자'인 나와 지낸 물건들은 어차피 다 버려야 했기에 코딱지만 한 짐을 옮기러 애써 고생하겠다는 아빠의 제안을 자꾸 거절했다. 아빠는 자꾸만 말했다.


"그래도, 마지막이잖아"


아, 생각해 보니 결혼을 하겠다고 지금의 남편을 처음 소개한 이후로, 아빠가 생각보다 자주 꺼내던 말이었다. 예전에 화장실 등이 나갔을 때도 그랬다. 집주인에게 부탁하면 될 일을, 아빠는 고작 전등 하나 때문에 서울까지 왔다. 왜 기어이 왔느냐고 물으니 그때도 '마지막' 비스무리한 말을 했던 것 같다. 그 후 자취방의 LED 등이 나갔을 때 꼬박 한 달을 작은 스탠드 하나로 버텼던 적이 있었다. 미련한 딸내미가 드디어 남자친구의 도움으로 전등을 갈았다는 말을 전했을 때, 아빠의 얼굴에는 안도와 서운함이 함께 비쳤다.


일이 있어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한 날, 아빠의 이름 아래 적힌 내 이름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그제야 받아들였다.


'아 나 메리지 블루 온 것 같은데?'


이런 종류의 메리지 블루가 있을 수도 있구나 깨달았다. 이사를 하면서 물건을 버리는 일을 도저히 아빠랑 같이 할 자신이 없었다. 부모님과 치르는 나의 분리식을 그렇게 초라하고 잔인하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기어이 서울로 올라와야겠다는 아빠를 거절하고 혼자 해내기로 결심했다. 일종의 회피였던 것 같다. 곧이어 무기력이 찾아왔다. 아빠를 거절하고 나니, 혼자 해내겠다는 결심과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손도 대지 못한 짐을 대신 정리해 준 사람은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이었다. 또 다른 오묘한 순간이었다. 분리된 나는 힘없이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동시에 힘을 얻었다. 그는 고작 이사를 도와준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나에게 남편은 연결 그 자체이면서, 동시에 내가 분리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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