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말투가 지닌 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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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잇슈


나의 어머니가 기억하는 나의 아기 때 떼쓰기 모습은 매미였다.

유독 시댁에만 가면 그렇게 어머니 다리를 붙잡고 매미처럼 앵앵 울었단다.

그러면 시댁 설거지나 집안일 등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 일화를 들은 나의 상담사는 말했다.


"그러면 딸한테 고마워했어야지. 딸 덕분에 시댁 일 안 해도 됐는데."


그리고 그 반응에 나는 힘 없이 혹은 기운 없이 상담사에게 웃어 보였던 것 같다.

내 어머니는 그런 나 때문에 힘들어 죽을 뻔했다며 매번 창피했다고 말했었으니까.

너 때문에 엄마가 시댁에만 가면 얼마나 창피했는 줄 아냐고. 상담사로부터 다른 답변을 들을 때까지 그 비난 속에 갇혀 살아야 했다. 엄마를 창피하게 만든 딸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이외에도 어머니의 그런 반응과 비슷한 일화들은 꽤 있었다.


나는 날 때부터 몸이 약했는데,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태아 때부터 뱃속에서 받은 영양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기 때 고열로 인해 고막이 터졌다가 재생된 적도 있었고, 어지간한 전염병이란 병은 꼭 걸렸다.

발목이 약해서 조금만 뛰어도 금방 접질렸는데. 양쪽 발목을 동시에 접질려서 어머니가 내내 등에 업고 한의원에 다닌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딸을 성가시다고 느꼈던 듯했다.

어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나에 대해 했던 가장 큰 자랑은 이것이었으니까.


"내 딸은 유치원 때부터 병원에 혼자 다녔어."


내가 어렸을 적에는 필름 사진기가 있었고, 그 필름을 담는 필름통이 있었다.

어느 날부터 어머니는 나에게 그 필름통을 주며 파격적인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네가 혼자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엄마가 여기에 500원씩 넣어줄게.'

'병원에서 아프다고 소리 지르지 않으면, 엄마가 여기에 500원 넣어줄게.'


그 유혹은 퍽이나 달콤했고, 또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아이에게는 상당히 그럴싸해 보였다.

평소보다 더 다정하고 상냥한 어머니의 말투가 그 유혹을 더욱 매혹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으니까.


그로 인해, 유치원 때부터 혼자 치과도 소아과도 다닐 수 있게 됐다. 위잉 하는 치과기기 소리나 모두가 벌벌대는 주사 바늘 앞에서도 전혀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짤랑, 소리 내며 작은 통에 쌓이는 동전들의 모양새를 보며 뿌듯함을 느꼈던 듯도 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독적이었던 건 역시 어머니의 칭찬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뽐내기 시작했고.

나는 그녀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된 것 같은 마음에 내가 잘하고 있구나 믿었으니까.


그렇게 세월이 흐른 뒤.

결국 나는 어디서건 힘들 때 힘들다 말 못 하고, 아플 때 아프다 말 못 하고, 옆 사람에게 도와달라 그 한마디도 못하는 어른으로 성장해 있었다. 길에서 누군가 내게 부딪혀, 그 부위가 멍이 들 정도로 세게 때리고 갔다고 해도. 그 순간 그 통증을 느끼면서도 악 소리 한 번 내지르지 못하는 아둔한 사람. 그게 나였다.


지나치리 만큼 오랜 시간을 어머니가 만든 착한 아이의 틀 속에 낑겨 살아왔었다.

그리고 그 일화를 들은 나의 상담사는 이렇게 반응했다.


"그게 아동학대잖아! 그냥 저가 편하려고 애를 돈으로 꼬시고 이용한 거잖아!"


버럭 화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 내 무의식에 있던 공포를 알아봐 준 건.

나도 모르게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을까 봐 무서워서 애써 강한 척 씩씩한 척했었다는 걸.


어머니의 다정한 말투에 속아 장님처럼 살고 있던 나를.

분노로 꽉 찬 거친 말투가 오히려 빛으로 끄집어 내준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그렇게 상담이 끝나고 돌아오던 길에 몇 번을 멈춰 서서 엉엉 울었는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가던 그 길에. 조금 가다가 울고. 또 조금 더 가다가 무너져서 울고.


어쩌면 그 어린 시절, 혼자 병원에 가려다가 도저히 못 가겠어서.

몇 번이고 주저앉아 울며, 엄마를 부르짖어야 했던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또 그렇게 힘겨운 걸음을 떼며, 간신히 집에 돌아온 날이 있었다.


그러니까 어떤 다정한 말투는 분명한 독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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