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죽어서도 부모

전문상담사 잇슈

by잇슈


상담장면에서는 흔히 꿈을 치료의 매개체로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험은 조금 다른 영역인데.

그날 하루 내게 별다른 일은 없었다. 단지 평소처럼 일하고 귀가해서 저녁을 먹고 씻고 잠에 들었을 뿐.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평범한 하루의 끝. 그저 약간 특별한 꿈을 꾼 날.

그러니까 이번 편은 상담사의 꿈 이야기이다.


마치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여느 한 장면처럼. 큰 직사각형의 거실 같은 공간에서 나는 서 있었다.

그 장소의 정 중앙에는 누군가 잘 가꿔놓은 듯한 식물들이 자라 있었는데. 그 모습은 어찌 보면 작은 정원을 꾸며놓은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만큼 싱그러운 공기가 흐르는 듯한. 꿈속의 장소가 그러했다.


그런데 뭔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 그 방향을 향해 돌아보니.

거기에는 현실에서 나의 내담자인 여성이 자신의 아버지와 다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에도 자기 아버지와 잦은 논쟁을 벌이는 그녀였지만. 그 장면은 유독 답답한 듯 힘겨워 보이기까지 했는데. 얼핏 들리는 아버지 측의 대사는 너희 엄마 납골당은 절대 옮길 수 없다는 말이었고. 그에 답답한 듯 여성은 계속해서 자신의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하는 듯 보였다.


그게 모두 꿈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득 여성의 어머니가 한두 달 전, 암으로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렀던 게 떠올랐다. 그래서 가만히 그들의 논쟁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순간적으로 나의 좌측을 바라보니.

돌아가시기 전 뵈었던 여성의 어머니가 내 옆에 나란히 서 있는 것이었다.


순간 나를 향해 밀려 들어온 그녀의 마음.

떠나기 싫다. 그곳에 그대로 있고 싶다.

그리고 뒤이어 계속해서 이어지던 그녀의 진심의 소리들. 괜히 내가 뭉클해지던.


결국 이제 막 동이 틀 것 같은 시각. 그 시간에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나의 꿈 일기에 그 꿈의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왠지 잊어버리면 안 될 듯한 직감에.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귀한 그것처럼. 내가 꿈에서 보았던 장면 하나하나를 최대한 상세히 기록해 보았다.

바로 이틀 후가 그 내담자의 상담날이었기에. 이걸 어떻게 전하면 좋을까 잠시 고민하기도 하다가.


내가 실은 꿈을 꿨는데…


여성과의 상담이 끝난 후 잠시 여성을 붙든 한 마디.

네 선생님, 하며 잠시 내 말을 기다려 주는 여성의 눈을 천천히 살피며.

꿈에서 본 장면을 차분히 설명해 주었더니. 놀라움에 점차 커지는 눈동자와 살짝 올라가는 눈썹.


선생님. 그렇지 않아도 이모한테 연락이 왔었어요.

저희 엄마 납골당을 외할머니 납골당 옆으로 옮기면 어떠냐고.

근데 아빠가 그걸 너무 싫어하셔서…


그로 인해 아버지와 이모 사이에 끼어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는 여성의 말.

여성과 다른 형제들은 어머니의 납골당이 외할머니 옆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며. 무엇보다 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아버지의 의견보다는 이모의 의견이 낫지 않을까 했다는 설명을 덧붙이기에.


근데 이건 그냥. 내가 어머니 옆에서 느낀 건데. 아마도 꿈이니까 확실하지 않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정말 떠나기 싫다고 그러셨어요. 아이들 곁에, 가족 옆에 있고 싶으시다고.

딴 것보다 자신의 아이들 가까이에서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고 싶으시다고… 그렇게 그분의 마음이 들리던데.


아… 라며 짧게 여성의 입에서 뱉어진 탄식. 두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듯 보였지만.

삼켜내려는 듯 입술에 꾹 힘을 주는 표정. 또 이어지는 살짝의 미소까지.

이내 감사하다며 무언가 결심한 듯 상담실을 나서는 여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는 엄마니까요.


그 언젠가 나를 찾아와 자신의 아이 상담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던 그 여성의 어머니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상담실을 울리는 듯한 환청. 자신은 엄마니까, 어머님이라고 불러달라던 그 여성의 어머니.

부모는 죽어서도 부모라는 말.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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